'삼성의 입' 자처하는 준법감시위원장
입력 24.04.29 07:00
취재노트
  • 최근 삼성그룹 내에서 카메라 앞에 가장 많이 서는 인물은 이재용 회장과 사장단이 아닌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장이다.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 오너가의 경영 복귀, 지배구조 개편, 삼성의 한경협 가입, 심지어 임원진들의 주 6일 출근까지도 이 위원장의 입을 통해 사안들의 평가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위원장의 발언은 계열사와 대상, 이슈 등 그 어느 것에도 국한하지 않는다.

    최근 이 위원장은 삼성 임원들의 주 6일 출근과 관련해 "국가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며 "삼성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위기"라고 했다.

    같은 날 현 삼성전자의 노조 쟁의 행위와 관련해선 "회사가 발전하는 과정 중 하나이다. 이 과정에서 노노간, 혹은 노사간 어떤 경우든지 인권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했고, 최근 이서현 삼성물산 복귀를 두고 "경험도 있고 전문성도 있으니 일선에서 책임 경영 구현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 위원장의 오너일가 언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삼성준법감시위원회 3기 첫 회의를 앞두고 "개인적으론 책임경영을 좀 더 강화하는 의미에서 이재용 회장이 적절한 시점에 등기이사로 복귀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앞서선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과 컨트롤타워 복원 등의 문제 해결에 준감위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도 밝혔다.

    2022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의 사면 여론이 확산하던 시절, 이 위원장은 "최고 경영진이 재판 때문에 제대로 경영할 수 없다는 것은 국민의 피해이다. 국민의 뜻에 따라 결단을 내려줬으면 하는 생각"이라며 사면을 촉구했다.

    삼성그룹에선 그 누구도 오너의 거취를 언급하기 쉽지 않다. 오너가 국정농단, 편법 경영권 승계 등의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사법부의 판단, 수많은 이해관계, 세간의 평가를 뒤로한 채 그들을 '비호(庇護)'하는 건 부담스럽다. 과거 이 회장이 구속수감됐을 당시 전문경영인이 눈물을 흘리던 '호소' 작전 수준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경영진들은 충심(忠心)으로 함구하는 게 불문율이다. 

    이 위원장의 최근 발언들 역시 충심의 발현일 것이다. 다만 그 대상이 삼성의 미래만을 향한 것인지는 모호하다.

    준법감시위원회는 2020년 2월 이재용 회장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의 권고로 인해 설치됐다. 태생이 재판부의 권고, 즉 이 회장의 양형에 반영하기 위한 목적 중 하나로 시작되면서 실효성과 진정성에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삼성그룹과 오너의 유일한 견제 기구로서 그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맞다. 

    사실 그 역할이 전부여야 했다. 리더십을 갖춘 오너, 전문가로 구성된 경영진, 외부인사로 채워진 감시기구, 어쩌면 이 긴장감 있는 트라이앵글이 삼성의 가장 이상적인 지배구조였다.

    삼성의 준감위는 어느덧 5년차를 맞았다. 이 조직을 통해 삼성을 향한 날카로운 지적과 평가를 들었던 적은 없다.

    위법 사안을 판단하기 위해 만든 기구가 삼성의 한경협 가입에 ‘반대’는 커녕, "(혹시라도 나중에) 정경유착 행위가 지속되면 즉시 탈퇴할 것 등을 검토한 후에 가입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권고한다"며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는가 하면, 그룹 내 그 어떤 조직보다 지배구조를 더 고민하고 컨트롤타워 부활에 고심하고 있다.

    최근의 준감위원장 행보를 보면 '감시자'에서 점점 '내부자'에 가까워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준감위원장의 자리가 그룹의 사안을 설명하고 평가하고 여론을 만드는 위치가 돼선 안된다. 그룹내 조직과 인사의 비위를 감시하고,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고 앞으로 재발하지 않도록 기틀을 만들어야 하는 중책이 있다. 오롯이 그 성과로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