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기업 vs PEF' 분쟁만큼 눈칫밥도 늘어나는 로펌들
입력 24.05.09 07:00
SSG-FI 풋옵션 공방 등 기업-FI 분쟁 늘어날듯
오랜기간 관계 맺은 기업과의 관계 있지만
시장 침체에 '큰손' PEF와의 관계도 신경써야
  • 기업과 재무적투자자(FI) 간의 분쟁이 늘어나면서 법무법인(로펌)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로펌 입장에서는 오랜 관계를 맺어 온 기업을 도외시할 수 없지만 거래 기근이 이어지는 상황에선 꾸준히 거래를 발굴하고 수수료 씀씀이도 큰 사모펀드(PEF)의 눈치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신세계그룹의 이커머스 쓱닷컴(SSG)과 FI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BRV캐피탈 등은 풋옵션의 유효성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해당 이슈가 법적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만큼 FI나 이마트(쓱닷컴)도 각각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고 있다. FI 측은 김앤장과 태평양, 신세계그룹 측은 광장 측 도움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PEF들이 투자 회수에 애를 먹으면서 유사한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쓱닷컴 사례 이외에도 일부 글로벌 PEF들이 회수 지연 포트폴리오 회사를 상대로 공방 가능성을 대비하는 분위기가 전해진다. 이렇다보니 어느 한쪽을 대리해야 하는 로펌들은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로펌업계에서 PEF는 놓칠 수 없는 핵심고객이다. 딜 가뭄기에도 ‘본업’인 투자와 회수를 계속 해야 하니 시장 영향을 덜 받기도 하고, 인수 측 자문을 도우면 추후 회수 자문까지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인수 딜을 함께 진행하면서 다른 로펌보다 내용을 앞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 등 전략적투자자(SI) 거래 자문은 상대적으로 PEF 자문 거래보다 드문 편이다. 그나마도 대기업 거래는 수임료도 PEF 딜에 비해 높지 않다. 대기업 딜은 수임료도 ‘어떻게든 깎는’ 비용이라면, PEF 거래 자문료는 너그러운 편이다. 거래에 실패해도 많게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자문료를 깎지 않고 지급하기도 한다.

    굵직한 PEF와 관계를 터놓은 전담 변호사들은 각 로펌 내에서도 ‘에이스’로 꼽힌다. PEF 딜 특성상 연차에 상관없이 개인 변호사의 성향이나 독자 능력이 크게 좌우된다. 빠른 속도와 까다로운 요구를 소화해야 하는 터라 ‘같이 일하기 편한’ 이들과 지속적으로 거래하는 경향이 있다.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로펌들은 기본적으로 PE들과 탄탄한 관계를 맺자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PE와 대척점에 있는 건을 맡기 쉽지 않다”며 “PE업계는 업계 내 인력 이동도 많고 워낙 좁다보니 특정 PE와 이슈로 엮이면 PE업계 전반에서 로펌의 평판이 달라져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대형 로펌에서 PEF 자문을 담당하던 변호사들이 PEF 등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관계 유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로펌 출신’ 변호사들 덕에 각 로펌과 PEF 간 인연의 끈이 강해지기도 했지만, 내부에 법률 전문가를 두면서 오히려 외부 도움의 필요성이 줄어든 면도 있다.

    국내에서 글로벌 PEF 관계에서 압도적이란 평을 듣는 김앤장은 유독 유출 인력(?)이 많다. 지난해 권윤구 변호사(사법연수원 30기)가 지난해 한앤컴퍼니로 자리를 옮겼다. 김앤장 M&A프랙티스그룹에서 한앤컴퍼니를 비롯한 다수의 대형 PEF 운용사 딜을 전담했다.

    앞서 2020년에는 PEF를 전담했던 정연박 변호사(35기)가 VIG파트너스로 이직했다. 김앤장 재직 시절 VIG와 자주 합을 맞췄던 정 전무는 VIG에서 투자담당 임원으로 옮긴 뒤 포트폴리오 중 디쉐어와 프리드라이프를 담당하고 있다. 

    김앤장에서 기업자문 부문 파트너를 역임했던 김도영 변호사는 2022년 대체투자 및 벤처 스튜디오 NPX캐피탈에 시니어 파트너·최고법무책임자(CLO)로 합류했다. 이후 김 변호사는 김앤장으로 다시 복귀했는데, 김앤장 내부에서도 ‘언제든 돌아오라’는 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광장은 대기업 자문에서 강점이 있다보니 PE 담당 인력들이 상대적으로 고전(?)한다는 시선도 있다. 대표적으로 ‘화제의 재판’이었던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FI 간의 경영권 분쟁 건으로 PEF들과 등을 진 사례가 있다. 당시 김앤장이 FI인 어피너티 컨소시엄을 대리했고 광장이 신 회장 쪽을 대리했다. 이후 어피너티는 사실상 광장과 M&A 자문 등에서 거래 관계를 한동안 중단했다. 최근 들어서야 딜 자문 업무를 맡는 등 관계 회복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에어퍼스트 소수지분 매각에 나섰을 때 IMM PE는 김앤장에 법률 자문을 맡겼다. IMM PE는 에어퍼스트 인수 당시 광장의 도움을 받았으나, 드물게 회수 건에서 자문 로펌을 바꿨다. IMM PE는 어피너티, 베어링PEA 등과 함께 FI 측에 속해 있다.

    지난해 버거킹코리아(어피니티)는 투썸플레이스(칼라일그룹)로 자리를 옮긴 문영주 대표를 상대로 경업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어피너티와 칼라일 두 대형 PEF의 법적 공방에서 태평양이 어피니티 측 자문을 맡았는데, 이후 칼라일 측과 다소 소원한 분위기로 전해진다.

    율촌은 지난해 마무리된 브레인자산운용의 6600억원 규모의 SK팜테코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IPO) 건에서, 당초 인수 측 자문 업무를 맡았지만 거래 과정에서 광장으로 변경됐다. 결국 ‘돈이 되는’ 대형 PEF 거래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 전략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대형 PEF 중 ‘후임 세대’를 공략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기존관계가 돈독한 창업 세대 보다는, 자문사 선정 자율권이 많이 내려온 ‘넥스트’ 세대를 공략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종은 PEF의 M&A 업무를 맡아 온 정준혁 변호사가 2020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인력 보충에 나선 바 있다. 2022년 율촌에서 M&A 업무를 담당한 최충인 외국변호사를 영입했다. 다수의 글로벌 PEF와 관계를 맺어온 최 변호사는 글로벌 로펌 '심슨 대처 앤 바틀렛'과 김앤장을 거쳐 율촌에 2015년 영입됐다. 최 변호사는 칼라일, KKR 등과 네트워크가 강한데 최근 이들의 행보는 상대적으로 잠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