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지자체 금고 '대전' 시작…보여주기식 경쟁 재점화?
입력 24.05.23 07:00
서울 이어 규모 2위 경기도, 하반기 시금고 은행 선정
부산ㆍ광주도 채비...광역지자체 금고 이후 2년간 '無'
시중은행들, 성과 압박에 금고유치 경쟁 과열 양상
'협력사업비' 두고 정치권 압박도...하반기 잇따라 입찰
  • 하반기 굵직한 지자체 금고 유치전을 두고 벌써부터 시중은행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해 은행 영업환경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외연을 확장하고 은행의 평판을 높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인 까닭이다. 특히 올해 경기도ㆍ부산시ㆍ광주시가 금고를 선정하고 나면, 향후 2년간은 광역 지자체 금고 입찰 기회 자체가 크게 줄어든다.

    경쟁이 치열해지며 '협력사업비'에 대한 부담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협력사업비란 은행이 지자체에 출연하는 찬조금으로, 금고 선정에 영향을 끼치는 핵심 변수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 '가시적 성과'에 목 마른 은행들이 금고 입찰을 포기할 순 없는 상황이란 분석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경기도는 올해 10월 약 40조원에 이르는 도기금을 운용할 금융기관 선정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1금고(일반회계)는 농협은행이, 2금고(특별회계)는 KB국민은행이 맡고 있는데 내년 3월말로 약정기간이 끝난다.

    당장 7월부터는 약 15조원의 기금을 운영하는 부산시도 금고 선정에 나설 예정이다. 7조원의 기금을 운영하는 광주시 역시 올해 하반기 시금고 선정을 앞두고 있다. 세 곳의 광역 지자체 금고 규모만 62조원에 이른다. 특히 경기도 금고의 경우 서울시 금고(약 40조원)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시군구 규모 금고 선정건까지 합치면 올해 말 금고 은행을 바꾸는 지자체만 66곳에 달한다. 지난해 39곳의 두 배에 가깝다. 게다가 이번에 주요 지자체가 금고 은행을 바꾸고 나면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 내년 중 금고 선정에 나서는 광역 지자체는 6조원 규모의 대전광역시 정도다. 다시 '큰 장'이 서려면 2026년 하반기까지 2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간 지자체 금고 시장의 절대 강자는 농협은행이었다. 농협은행은 전국 지자체 금고 약 950여곳 가운데 절반 이상인 550여곳을 맡아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역 농협을 기반으로 한 영업망이 잘 갖춰져있던 덕분이었다. 

    2020년 이후 국민은행은 시중은행들이 자금력을 앞세워 지자체 금고 시장에 뛰어들며 점차 경쟁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2022년 신한은행이 서울시에 약 2700억여원을 출연하고 시금고를 따낸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충남도 2금고는 하나은행이 2019년 국민은행에 빼앗겼다가, 지난해 되찾아오기도 했다.

    올해엔 은행들이 더욱 절박한 상황이 됐다는 평가다. 올들어 은행의 핵심 수익원인 이자 이익은 정부 규제에 고금리로 인한 부실화가 겹치며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 년 간 중점적으로 키워오던 비이자이익 부분은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 금융사고로 인해 당분간 침체가 불가피해졌다.

    이런 와중에 향후 4년간 안정적인 수수료 이익 창출이 가능한데다, 대규모 저원가성 예금을 확보할 수 있는 지자체 금고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라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은행들의 먹을거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금고유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며 "경쟁자의 영업 기반을 우리 것으로 가져오는 상황이 가지는 의미 역시 적지 않다"고 말했다. 

  •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해당 지자체에 어느만큼의 유형ㆍ무형적 기여를 할 수 있는지가 핵심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은 출연금이다. 지자체 금고 선정은 보통 하반기에 진행되지만, 벌써부터 은행간 출연금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7월 금고 선정을 앞둔 부산시의 경우 하나은행이 부산신용보증에 약 110억원 규모의 출연금을 내놓자, 국민은행도 곧바로 총 120억원의 출연금을 지원키로 했다. 경기도 역시 지난 3월 농협은행과 국민은행이 각각 200억원, 100억원을 경기신용보증에 출연했다.

    '상생금융'이 금융당국의 핵심 정책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해당 지자체에 대한 협력 프로그램 등 정성적인 요소 역시 주목받고 있다. 지자체들은 금고 은행 선정을 앞두고 금고 은행과 함께 지역 복지사업 및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착한은행 등 서민금융 기반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은행들도 자체적으로 지역 연고 스포츠단 등을 후원하려는 분위기다.

    정치권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주요 지자체 의회에서는 금고 은행의 협력사업비가 타 시도 대비 낮다는 점이 단골 소재로 언급된다. 지난해 광주시의회에서는 금고 은행인 광주은행의 출연금이 60억원에 그쳐 금고 규모의 0.08%에 불과하다는 게 이슈가 됐다. 같은 해 울산시에서는 협력사업비와 더불어 금고 은행 이름에 '울산'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오랜 기간 한 은행이 맡아왔던 금고의 경우 금고 선정자가 바뀌면 시스템 교체, 인수인계 등의 복잡한 절차가 수반된다. 이 비용 역시 금고로 선정된 은행이 부담하는 것이 관례다. 일례로 서울시 금고를 새로 맡은 신한은행의 경우 시스템 투자에만 추가로 수십억원을 부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다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현재 주요 시중은행 기관영업 부서들은 아직 금고 유치가 실보다 득이 많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유무형의 홍보 효과와 더불어, 최근 은행 영업의 핵심이 저원가성예금 비중인만큼 아직 마진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한 은행 기관영업 담당자는 "영업의 결과가 바로 나오기 때문에 지자체 금고 선정 여부는 임원들의 '자리 유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담당 부서 실무진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영업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에 금고 유치전을 두고 '은행판 총선'이라는 우스개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