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자제령'에 증권사 영업 골머리…"삼성·SK·롯데 이어 효성도"
입력 24.06.03 07:00
취재노트
삼성은 주6일제·SK는 격주 토요일 회의
롯데·이마트 법카 골프 자제령 사내 공지
영업 중요한 證커버리지, 골프 줄줄이 취소
신규 담당자 "영업 바운더리 줄었다" 푸념
  • 국내 대기업들 사이에서 '골프 자제령'이 확산하고 있다. 지침상으로는 회사 비용으로 치는 골프를 최소화하라는 주문이지만, 골프 자체를 줄이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기업과의 관계가 중요한 증권사 커버리지 부서 담당자들 사이에선 "영업 바운더리(범위)가 줄어들었다"는 푸념이 나온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골프장에선 삼성과 SK, 롯데 등 국내 주요 대기업 임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내 공지를 통해 골프를 자제하라는 방침이 내려왔거나, 주6일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주말에 골프를 치는 것이 사실상 힘들어졌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국내 재계 서열 1위 삼성은 지난 4월부터 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주6일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강제성이 없는 권고 형태지만, 현재 대부분의 임원들이 주말 중 하루를 선택해 출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 임원들의 주말 골프도 눈에 띄게 줄었다는 평가다.

    임원 이하 임직원들 역시 골프를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임직원들은 주말에 출근하지 않지만, 최근 어려워진 회사 환경과 임원들의 주말 출근 등을 고려해 자연스럽게 주말에 골프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정착된 것으로 전해진다.

    SK그룹은 최근 24년 만에 '토요 사장단 회의'를 부활시켜 격주 토요일마다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내 전략글로벌위원회가 주도하는 이 회의는 안건에 따라 장소와 참석자가 매번 달라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SK 임원진 역시 섣불리 주말 골프 약속을 잡는 것이 어려워졌단 평가다.

    롯데그룹 역시 지난 3월 계열사 임원들의 주중 골프를 금지하고, 주말을 포함한 해외 출장 일정을 잡는 것을 삼가달라는 방침을 내렸다. 이 밖에도 이마트 등이 법인카드를 사용한 골프 자제령에 동참했고, 최근에는 효성그룹도 내부적으로 골프를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효성그룹 관계자와의 골프 약속이 있었는데, 사내 분위기 등을 이유로 약속이 취소됐다"며 "올 들어 잡혀있던 기업들과의 골프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미뤄지고 있는 걸 보면 최근 기업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이 체감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업들의 골프 자제령 불똥이 최근 증권사로 튀고 있다. 특히 기업의 자금조달 파트너로서 역할하는 증권사 커버리지 부서의 경우, 영업 범위가 크게 줄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커버리지 부서는 기업의 회사채 발행 등을 주관하며 수수료를 챙기기에 기업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기업 재무를 담당하는 CFO가 바뀌면 관례적으로 찾아가거나, 신규로 커버리지를 맡게 될 경우 담당 기업의 재무 부서를 방문해 인사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 후 골프와 술자리 등을 통해 친분을 맺고, 업무와 관련한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커버리지 부서의 영업 방식이다.

    다만 최근 주요 기업들 사이에서 골프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친분을 쌓을 기회가 줄었다는 전언이다. 특히 장기간 커버리지를 담당하며 이미 기업들과 친분을 쌓은 인력이 아닌, 올해 신규로 부서에 배치받은 인력들의 타격이 크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커버리지 담당자의 업무 영역 중 골프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다"며 "최근 주요 기업들이 골프를 자제하면서 신규로 커버리지를 부여 받은 담당자들이 애를 먹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