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와 반도체 수장의 "경영진 책임" 한목소리…삼성전자의 고통은 이제 시작
입력 24.06.07 07:00
취재노트
삼성전자 위기는 복합적…해결 과정에 진통 적잖을 듯
DS부문장 권한은 어디까지?…실질 권한에 회의감 다수
HBM 외 파운드리 등 과제 산적…힘든 시간 본격화 전망
  • 삼성전자 노조가 첫 파업을 앞두고 있다. 경영진 책임을 왜 우리가 지느냐는 목소리가 높다. 수장직으로 복귀한 전영현 부회장도 비슷한 메시지를 내놨다. 회사가 달라졌고, 잘 되는 게 없다고 한다. 전부 경영진 책임이라 공언하고 대수술을 예고했다. 

    늦었어도 문제를 마주하기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진짜 고통은 문제를 풀어가는 지금부터 시작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처한 위기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전 부회장은 이미 일하는 방식을 포함해 반도체(DS) 부문 문화 전반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무원(삼성전자 공무원)' 식 자조적 표현이 공유된 지 오래인 만큼 기강부터 다지는 단계로 풀이된다. 그러나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응 실기가 기강 문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결국 전면에 부상한 경영진 책임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물러난 경계현 전 대표는 소통형 리더십으로, 복귀한 전 부회장은 카리스마형 리더십으로 통한다. 시장에선 DS부문장이 과연 어느 정도 권한을 가진 자리인지부터 따져 묻고 있다. 공식적으로 반도체 사업을 좌우하는 자리라지만, 주어진 권한이 제한적이라면 어떤 유형의 리더십을 앉혀도 HBM과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로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가 비난이나 체념 조로 바뀐지는 2년을 훌쩍 넘겼다. 내부 임직원들은 이보다 훨씬 전부터 불안과 위기감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이번 파업도 오래 응축된 불만이 뒤늦게 터져 나왔다는 평이다. 직원과 소통에서 좋은 점수를 받던 경 전 대표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내부에선 과연 경 대표가 책임질 만한 권한을 가진 적이 있었느냐는 반문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왜 작년 연말 정기인사는 조용히 넘기고 이제 와서 전 부회장이 등판한 걸까. 당시 상층부에서 반도체 부문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달리 보자면 ▲HBM 성과가 실적에 반영되지 않아 기관투자가들이 손절에 나서고 ▲AI 반도체 생태계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는 인식이 확산해 ▲끝내 직원들이 사상 첫 파업에 돌입하고 나서야 갑자기 경영진 교체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각 부문장급 인사권부터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지닌 상층부가 안일했다는 건데, 여기서부터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이 상층부가 이사회와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이재용 회장 중 누구를 가리키는지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실질적인 인사권, 결정권을 가진 곳이 불투명하면 보고 체계가 꼬일 수밖에 없다. 직함만 대표지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어떻게 책임을 지나"라며 "지금 시장에선 HBM을 홀대한 게 경계현 전 대표가 아니라 이재용 회장, 사업지원 TF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DS부문장을 중심으로 전사 임직원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을 만한 거버넌스가 갖춰지지 않았다면 전 부회장에 걸 수 있는 기대도 반쪽에 불과해진다. 

    전 부회장이 당면한 과제는 엔비디아향 HBM 공급 문제만이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의 확고한 경쟁우위를 되찾는 동시에 파운드리, 시스템LSI 등 사업부 전반에서 인공지능(AI) 시대 비전을 확립해야 한다. 가령 전 부회장은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처럼 필요할 경우 사업부를 분사, 독립시켜 영업전선에 내모는 등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전 부회장 복귀에 기대를 거는 쪽도 여기에 대해선 회의적 반응이 먼저 나온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툭 까놓고 얘기해서 삼성전자 내에 오너나 TF 의중에 반해서 경영상 판단을 관철할 수 있는 경영진이 자리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지금 AI 반도체 경쟁은 각 분야에 특화한 괴물들 간 전쟁으로 비유되는데, 공룡인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 파워가 제일 미약해 보인다"라고 전했다. 

    앞으로 고질적인 거버넌스 왜곡 문제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전 부회장이 복귀한 과정을 살펴보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성과를 내놔야만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복귀 일성으로 노조 문제의식에 화답한 자체를 고무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상황이 나아진 것으로 보긴 어렵다. HBM 외에도 미국 정부로부터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유치한 파운드리 사업에서 실기가 거듭되면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여러모로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