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는 20억ㆍIB는 0원'...'역차별' 만든 이복현 증권사 성과급 압박
입력 24.06.07 07:00
성과급 이연 결정 후폭풍 여전…인력이탈 지속
"어디 많이 받는대" 소문에 예민해진 증권가
트레이딩·채권브로커 등 주목…중소형사 선호도
  • "단기 성과에 치중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손실 인식을 회피하면서 남는 재원을 배당·성과급으로 사용하는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2024년 1월 금융감독원 임원회의)

    연초부터 이어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압박'에 증권사들이 잇따라 이연성과급제를 도입하며 회사별ㆍ부문별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일각에서는 수십억원을 받아가는 증권맨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성과급이 아예 '제로'가 되거나 몇백만원의 소액도 수 년에 걸쳐 나눠 받아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불공평하다는 토로가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PF 부문과 같은 투자은행(IB) 부문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업금융, S&T(Sales&Trading) 부문 뱅커들이 책임을 지는 구조여서다. 딜(Deal)의 호흡이 길어 성과를 내는 데 수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기업금융 부문은 연봉이 크게 줄었고, 트레이더들은 일부 사기가 저하된 모습이다.

    지난해 금감원 권고가 이뤄진 이래 주요 증권사들은 속속 성과급 이연지급 비율을 결정했다. 대상은 주로 증권사 북을 활용하는 트레이딩, 기업금융, 부동산PF 부문 IB 뱅커들이다. 성과급 제도를 개편하며 보통 3월 이전에 이뤄졌던 성과급 지급이 4~5월로 밀린 회사들도 있었다.

    후폭풍이 거세다는 평가다. 특히 ECM, DCM 등 정통 기업금융 관련 부서 인력들이 부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제는 부동산 PF 부문이 일으켰는데, 그 뒷감당을 왜 본인들이 감당해야 하냐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하나증권 등 일부 대형사 특정 부서는 성과급이 사실상 '제로'로 책정되며 직원들이 반발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미 지난해 2022년 대비 성과급이 평균 10% 이상 줄어든 상황에서 올해엔 액수가 더 축소된데다, 수백만원 수준의 성과급도 최대 4년까지 이연돼 나눠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후문이다.

    물론 증권사들마다 부서별 인력의 고용형태, 이연 비율 등이 다르긴 하다. 일부 증권사는 신입사원을 정규직 형태로 채용하고 몇년 후 고액 성과급 지급이 가능한 연봉계약직 형태로 전환해왔다. 

    그러나 이연 성과급이 적용되면서 높은 연봉을 기대하고 고용 형태를 전환한 이들은 백오피스(지원직) 직원들보다도 낮은 액수의 성과급을 최근 지급받았다. 고용 안정성도 높은 연봉도 기대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최근 한 IB 지원 부서 직원이 유튜브 개인채널에 올린 '성과급 5000만원' 영상이 증권가에서 회자된 배경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딜 하나를 해내고 수수료 수익을 받는 데까지 1~2년이 걸린다. 올리는 성과가 불규칙한 데 반해 업무량은 늘고 있다"라며 "최근 성과급 지급이 이뤄졌던 1분기~2분기에 ECM, DCM 부문 업무량도 급격히 늘어난 여파가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부서도 있다. 주로 중소형사에 소속된 채권 브로커나 프라이빗뱅커(PB) 등이 그 대상이다. 이들은 북(book)을 쓰지 않는데다, 사업 특성상 회사와 개인이 별도의 계약을 맺고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이연 지급 방식을 적용하기 어려운 면도 있는 까닭이다.

    '채권 영업중개' 부문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채권·기업어음(CP) 중개영업 부문 직원들이 공시상 고액 보수 순위에 이름을 장식한 바 있다. 올해 전망도 좋다. 연내 기준금리 인하 예측이 오가는 만큼 이들은 올해도 채권 거래가 활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말 금감원이 랩·신탁업계 불법 관행에 칼을 빼들면서 시장이 축소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소형사 채권중개 부서의 경우 팀 단위로 발생하는 수익 중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의 수익을 나누는 계약을 맺는다. 채권은 100억원 단위로 매매가 되는데, 100억원당 최대 100만원 수준의 중개수수료가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올해엔 CP 등 단기채권 시장의 거래가 활발했고, 이 때문에 올해 일부 증권사 '스타 브로커'의 경우 20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수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WM 부문도 마찬가지다. 소속된 프라이빗뱅커(PB) 영업전문직들의 성과급은, 발생한 수익에 손익분기점(BEP) 구간을 제외한 뒤 제도상 정한 지급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곱해 책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삼성증권 '연봉킹'으로 유명한 강정구 삼성타운금융센터 영업지점장의 경우 수익구간별로 최저 12%에서 최고 60%의 지급율을 적용받는다. 강 지점장은 2022년 10월부터 2023년 9월까지 발생한 수익에 대한 보상으로, 지난해 12월까지 연간 총 56억원의 성과급을 이연 없이 지급받았다.  

    일각에선 이들 또한 성과급을 이연 지급해야할 필요성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시상 WM부문이나 채권 영업중개 부문 임원들의 높은 상여급 액수가 공개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다. 다만 북을 활용해 업무를 하는 부문의 업무 책임감을 높이겠다는 취지엔 부합하진 않는 의견이란 지적도 있다.

    이런 역차별은 인력 이탈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ECM, DCM, 인수금융 등 정통 IB 관련 부서가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최근까지 10명 안팎의 IPO 부문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한국투자증권 또한 IB 부문 성과급이 줄어드는 와중 영업 압박 강도가 높아지며 직원들 사이에 동요가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수금융 부문도 신규 딜은 없고, 미매각 자산에 따른 성과급 이연에 대한 부담이 있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성과급 이연이 똑같이 적용되는 부문이라도 시스템 트레이딩 등 최근 높은 수익을 올린 덕에 이연 피해가 덜했던 분야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라며 "대형 증권사들은 금감원의 권고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따르는 편이다. 부담이 덜할 중소형 증권사들은 월단위로 성과를 집계하는 등 직원 개인에게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향후 선호도가 높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