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채우는 퐁피두 작품들…힘받는 한화의 자신감
입력 24.06.11 07:00
Invest Column
  • 1985년 여의도 63빌딩에서 오픈한 63씨월드. 당시 한국 최고층 빌딩이었던 63빌딩은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였다. 그리고 63씨월드는 서울에 올라오는(?) 관광객들이라면 무조건 가봐야 하는 명소였다. 초고층빌딩에 자리잡은 수족관이라니 당시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현재는 아쿠아플라넷 63이라는 이름을 가진, 4050세대들에겐 특별할 그 수족관이 39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한화그룹은 미술관 '퐁피두센터'를 63스퀘어에 유치하기로 하면서 아쿠아플라넷 63의 운영 중단을 결정했다.

    1977년 파리에 문을 연 퐁피두센터는 루브르, 오르세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마티스와 샤갈, 칸딘스키 등 근현대 미술 사조를 이끈 거장들의 작품이 걸려있다. 2025 파리 하계 올림픽이 끝나면 퐁피두센터는 문을 닫고 5년간 리노베이션을 거쳐 2030년 재개장할 계획이다. 그동안 세계 여러 곳에 분관을 만들어 작품을 전시하려고 한다. 한화그룹이 한국 유치를 이끌었다.

    한화그룹은 퐁피두센터와 5년 가까이 논의를 했다고 한다. 분관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은 63빌딩의 리모델링을 거쳐 2025년 10월에 오픈, 퐁피두센터 소장품 중 대표 작품을 포함한 기획전시를 매년 2회 정도 개최한다고 한다. 

    미술관 설계 작업에는 인천국제공항과 루브르 박물관, 대영 박물관과 엘리제궁의 내부를 담당했던 건축계의 거장 장 미셸 빌모트가 참여한다고 알려지면서 국내 미술 애호가들의 기대감을 부풀게 하고 있다.

    그룹에서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를 주도한 건 한화문화재단이다. 이를 위해 그룹의 여러 계열사들로부터 수증받았고 앞으로도 수혈을 약속 받았다. 여기에 오너 일가들도 주식과 부동산을 보탰다. 말 그대로 그룹의 숙원 사업처럼 보인다.

    한화문화재단은 주로 미술품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타 재벌들의 문화재단에서 대중 전시회를 여는 것과 비교하면 그 활동이 거의 없다시피해도 무방할 정도다. 한화문화재단의 홈페이지에 가도 2022년 8월 타계한 김승연 회장의 배우자 고 서영민씨의 이름을 딴 '영민 해외 레지던시 지원 프로그램' 같은 유망한 신진 예술가의 발굴, 창작활동 지원이 주를 이룬다.

    재계와 문화업계는 한화그룹의 퐁피투센터 유치를 본격적인 재단 문화사업 영위의 기점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화그룹의 자신감 아니겠냐는 평가도 덧붙여진다.

    한화그룹은 김동관 부회장을 위시해 방산에서의 존재감은 굳건히 하면서 그룹의 영토확장을 착실히 하고 있다. 동생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도 해외사업 확장에서 성과를 보여주고 있고 3남 김동선 부사장은 유통, 호텔, 로보틱스 등 전방위로 뛰어다니고 있다.

    사업적 자신감은 재계에서의 위신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여기에 '노블리스 오블리주' 한 스푼을 더하는 데는 문화사업만한 게 없다. 이게 더해지면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진,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진짜 '부자'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물론 퐁피두센터 본관의 리노베이션이 끝나면 작품들은 돌아가겠지만 세계 문화계에서 '한화(Hanwha)'라는 이름은 '삼성(Samsung)' 정도의 각인 효과가 새겨질 수 있을 테다. 재벌의 문화 사업은 기업 이윤을 환원한다는 궁극적인 목적 외에도 그룹의 이미지 개선과 부가적인 사업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족관의 빈 수조 자리엔 퐁피두센터의 작품과 한화그룹의 자신감이 채워질테다. 40년의 추억은 사라져 아쉽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