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분쟁 핵심 변수된 인수금융…"1년씩 만기 연장도 한계"
입력 24.06.13 07:00
어피너티 컨소, 2012년 투자 후 수차례 차환
초반엔 리캡도 했지만 이후 업황 꺾이며 고전
만기 1년씩 근근이 연장…2차 중재가 변곡점
중재 결과 따라 대주단 및 FI 상황 크게 변동
중재 전 합의 땐 대주단 원금이 기준 될 듯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재무적투자자(FI)간 분쟁에서 인수금융이 중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이전까지 대주단은 분쟁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1~2년씩 만기를 연장해줬지만, 갈수록 의사 결정의 벽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2차 중재 결과를 앞둔 점을 감안하면 이번이 마지막 연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이후 양측 협상과 FI의 의사 결정에 대주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EQT파트너스(전 베어링PEA) 등은 2012년 교보생명에 1조2000억원을 투자했다. 각각 블라인드펀드와 인수금융 등을 활용했는데 투자 초기엔 자본재구조화(리캡)을 추진해 출자자(LP)에 배당할 만큼 성과가 좋았다. 주요 시중은행과 대형 증권사가 주축이 된 대주단은 2018년 베어링PEA의 리캡까지만 해도 만기 4년6개월, 4%대 금리 등 여유로운 조건을 내줬다.

    생명보험 업황이 꺾이며 FI와 대주단의 고민이 본격화했다. 2019년 3월 FI가 중재를 신청하면서는 운신의 폭이 더 좁아졌다. 중재 중이라 인수금융 만기 연장 외에 별다른 수가 없었지만 기한은 1년, 길어야 2년으로 줄었다. IMM PE는 이달 만기인 2000억원 규모 인수금융을 추가로 1년 늘리는 안을 추진 중이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2500억원 규모 인수금융은 9월 2년 만기가 도래하는데 역시 긴 기간을 받긴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2년간은 고금리 환경도 부담이 됐다. FI의 이자 부담은 커졌는데 작년엔 교보생명이 배당도 하지 않으면서 더 애를 먹었다. 캐나다 온타리오 교직원연금(Tiger Holdings LP, 지분율 7.62%)처럼 자기 자금이 많은 곳은 인수금융을 상환해버렸지만, 만기가 지난 펀드만 있는 다른 FI는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

    교보생명 인수금융 만기 연장은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초 FI가 신청한 2차 중재는 현재 서류 작업 및 집중심리(히어링)까지 마쳤다. 판정부의 최종 판단만 남은 상태로 이르면 2분기 중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엔 더 이상 법적으로 다툴 변수는 남지 않기 때문에 대주단과 FI, 신창재 회장 모두 움직임에 나설 수밖에 없다.

    대주단 입장에선 중재 결과가 어떻든 이제는 회수에 나설 수밖에 없다. FI들 그나마 초기에 리캡 등을 통해 지분투자금(Equity) 규모를 줄여뒀지만 대주단은 빌려준 자금 그대로 끌려가야 했다. 비상장사로 평가 부담이 크지 않고 결국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지만 각 대주단 금융사들은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1년씩 만기를 이어가는 데 대한 피로도가 큰 상황이다.

    한 대형 금융사 관계자는 “교보생명이 배당을 하지 않으면서 FI가 이자도 내기 힘들어졌다”며 “이론상 만기 연장에 실패하면 기한이익상실(EOD)이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결국 중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주단 입장에선 2차 중재 결과가 FI 유리하게 나올 경우, 즉 ‘행사 가격(FMV)’을 정해 신창재 회장에게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최선이다. 신 회장에 어떻게 집행하느냐 문제만 남게 된다. 실제 집행 과정은 장기화할 수 있지만 권리가 확정된 만큼 이후 만기 연장이 필요한 상황이 오더라도 부담이 덜하다.

    반대로 신창재 회장에 유리한 판단이 나오면 대주단의 상황은 크게 악화할 수 있다. 신 회장 측은 1차 중재에서 풋옵션 행사 가격이 정해지지 않았고, 그 중재 판정은 확정력을 갖는데 다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느냐는 주장을 펴는 것으로 알려졌다. FI가 풋옵션을 행사할 길이 사라지면 대주단은 담보권을 행사해 FI 지분을 시장에서 처분해야 하는데 대주주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는 비경영권 지분을 과거 수준의 높은 기업가치로 받아줄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차 중재가 끝나면 신창재 회장과 FI, 대주단 모두 선택지가 하나씩만 남는다. 나쁜 결과를 받았을 때의 충격파가 워낙 크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중재 전 합의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신 회장 측의 뜻을 받은 투자사들이 FI를 접촉해 협상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 회장이 시각을 전향적으로 바꿨다고 보긴 어렵지만, 중재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만큼 미리 대비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신 회장의 우군 주주인 코세어도 주목받고 있다.

    신창재 회장은 여전히 풋옵션 행사 가격이 주당 20만원 이하라는 주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FI들은 원금(24만5000원) 이상은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다. 최근 생명보험사 가치가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 회장은 보유지분(33.78%) 상당 부분을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금리로 대규모 자금을 대줄 수 있는 시중은행 등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지금까지 대주단이 애를 먹은 점, 신 회장에 대한 자본시장의 시선이 썩 좋지 않다는 점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대주단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금액 이상으로 자금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은행권의 협조를 얻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창재 회장이 중재 전에 FI와 합의하려면 시중은행에 보유 지분을 담보로 주고 자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다만 기존에 신 회장이 생각하는 수준의 금액으로는 은행권 대출을 일으키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