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온 합병에 리벨리온 IPO '올 스톱'...연내 재개도 안갯 속
입력 24.06.18 07:00
리벨리온 제안서 제출한 증권사들 '합병' 소식에 당혹
20일 예정된 PT 연기…상장 일정 지연 불가피
  • 인공지능(AI) 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스타트업인 리벨리온이 SK 계열 사피온과 합병에 나서며 기업공개(IPO) 일정이 전면 연기됐다. 주요 증권사들로부터 제안서를 받은 지 이틀만에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지며 증권가는 당황하는 분위기다.

    당장 20일께로 예정됐던 프레젠테이션(PT) 일정은 순연됐다. 상장 주관사 선정 절차를 계속 진행할지에 대해서도 확정된 바가 없는 상황이다. 올해 스타트업 IPO 중 가장 뜨거운 딜로 예상됐던 리벨리온 상장이 연내 진행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온다. 

    SK텔레콤은 지난 12일 사피온을 통해 지분 62.5%을 보유하고 있는 사피온코리아와 리벨리온의 합병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사피온은 중간지주사 성격을 띄고 있으며 사피온코리아는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두 기업은 실사와 주주동의 등 절차를 거쳐 3분기 안에 합병을 위한 본계약 체결을 마무리하고 연내 통합법인을 출범시킬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합병법인의 대표는 리벨리온의 박성현 대표가 맡는다. 

    이번 합병은 리벨리온 기존 투자자들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표가 먼저 나올 정도로 전격적이었다는 후문이다. 투자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사피온 측은 올해 4월 최대 2000억원 규모의 투자유치(시리즈B)에 나설 당시부터 인수합병 등 투 트랙 전략을 검토해왔다. 이 때부터 리벨리온과의 합병 가능성이 언급됐지만, 예상보다 더 빠르게 협의가 진행된 것이다.

    리벨리온은 이와는 별개로 상장 주관사 선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리벨리온은 지난달 24일 상장 주관사 선정을 위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송부한 바 있다. 당초 이달 20일을 전후해 숏리스트를 확정하고 경쟁 PT를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일단 해당 일정은 순연된 상황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사실상 2주정도의 기간이 제안서 작성에 주어진 셈이라 AI 반도체 관련 발행사의 주관사 자리를 따내기 위해 리소스를 집중적으로 투입했다"라며 "합병 사실 뿐만 아니라 향후 상장 일정 관련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전달받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대기 중이다"라고 말했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리벨리온 상장 추진 일정이 크게 밀릴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통상 인수 후 통합(PMI)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탓이다. 

    사피온이 미국 법인인 만큼 합병 작업 또한 현지 규제 등 상당한 시일이 걸릴 가능성이 언급된다. 리벨리온이 상장 주관사 선정 절차는 그대로 진행한다 해도 합병 법인이 상장을 추진할 지, 리벨리온 상장주관사 지위가 합병법인에도 승계될 지 정해진 게 없는 상황이다. 

    증권가에서는 일단 상황을 주시하며 주관사 선정 절차 재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의 기업가치는 각각 약 1조원, 약 5000억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통합 후 시너지를 내는 경우 단순 합산보다 더 기업가치가 커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합병 후 성장이 가시화할 수 있을지가 변수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 양사 모두 순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리벨리온은 13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늘어난 규모다. 사피온코리아 또한 지난해 18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AI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알려진 퓨리오사AI, 리벨리온, 사피온코리아 모두 AI 반도체 칩을 개발 중엔 있지만 아직 성과가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은 상태다. 제3자가 객관적으로 기술력 차이를 판단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각 기업이 인정받아온 기업가치 수준이 적정한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