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 구하기' 총력전…예측불허 대법원 설득 가능할까
입력 24.06.18 07:25|수정 24.06.18 07:44
1.4兆 재산분할, 노소영 관장 2심 완승
최 회장, 상고심 앞두고 화우 추가 선임
가사 전문가 없는 대법원, 예측 어려워
끝장 소송·합의 등 여러 시나리오 거론
놓친 논리 챙기고 인맥도 총동원 할 듯
  •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2심 소송 후 SK그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SK그룹은 변호인단에 대형 법무법인을 추가 보강하고 상고심 준비에 나섰다. 현재로선 ‘세기의 이혼’을 향한 대법원의 시각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2심에서 논리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을 파악하고 보완하는 것이 최태원 회장은 물론 로펌들의 지상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태원 SK 회장 측은 이달 21일인 상고장 제출 기한을 고려해 조만간 상고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이날 이동근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와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 등 최 회장 측 대리인은 기자회견을 열고 2심 재판부가 최 회장의 부친인 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를 지나치게 적게 반영했다고 반박했다. 최 회장 측은 두 차례 진행된 SK C&C(舊대한텔레콤)의 액면분할이 고려되지 않은 점을 문제삼았다.

    같은날 노 관장 측 대리인단은 입장문을 통해 "개인 소송에 SK그룹이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항소심 법원의 논지는 원고(최 회장)가 마음대로 승계상속형 사업가인지와 자수성가형 사업가인지를 구분 짓고 재산분할 법리를 극히 왜곡하여 주장하는 것이 잘못됐다. SK C&C 주식 가치의 막대한 상승은 그 논거 중 일부”라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진행된 이혼 소송 2심은 노소영 관장이 완승했다. 2심 재판부는 노 관장에게 1조3808억의 재산을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정에 최태원 회장은 이달 3일 SK수펙스추구협의회 긴급 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이달 28~29일로 예정된 SK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도 조직 재조정(리밸런싱) 작업 논의와 더불어 최 회장 소송 관련 ‘대응’이 주요 현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태원 회장의 재산 대부분은 주식이라 1조원 이상을 마련하려면 SK㈜, SK실트론 등 지분을 상당부분 팔아야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주식 매각에 따른 세금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법상 대주주는 3억원 이상의 주식양도 차익에 대해 27.5%(양도소득세 25.0%, 지방소득세 2.5%)를 부담해야 한다.

    SK그룹은 2심 재판 결과를 받아든 후 노 관장과 합의해 주식을 나눠주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에서 이 같은 내용이 확정되면 그룹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에 미리 주식을 주고 우호주주로 두겠다는 고민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경우 부부관계는 유지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방안 역시 큰 실익이 없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이혼 확정’을 통한 부부 재산분할은 ‘자기 것이어야 할 재산이 제 명의자를 찾아가는' 의미를 갖는다. 즉 증여세나 양도세가 부과되지 않고, 부동산이나 차량 등에 취득세가 붙는 정도다. 반면 부부관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주식을 주고 받으면 대규모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 현행법상 부부관계에서 재산 증여는 공제가 10년 누적 기준으로 6억원이 한도다.

    최태원 회장과 SK그룹 입장에선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보겠지만 어느 것도 순탄한 것이 없다. 자연히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을 되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최 회장은 이혼소송 상고장 제출을 앞두고 법무법인 화우를 추가로 선임했다. 화우에서는 25년 법관 경력을 보유한 이동근(사법연수원 22기) 변호사가 전진배치 됐다. 

    2심을 이끈 김시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재판부는 유책자의 경우 제3자에 흘러간 자금도 포함시키는 법리를 적용하는 판결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2심에서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변론 전략을 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자문단이 결과를 너무 낙관했다는 것이다.

    통상 가사 사건은 대법원에서 일종의 ‘간이 판결’인 심리불속행기각(재판에서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 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가사 사건은 유책 여부, 증거 판단 등 ‘시시비비’는 통상 2심 선에서 거의 가려지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 심리불속행기각의 경우 상고 기록을 받은 날로부터 4개월 이내 가능하다. 심리불속행기각으로 처리되면 9월 전에 판결이 나게 되는 것이다.

    대법원이 이번 사건을 심리불속행기각으로 처리하기 부담스러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사안을 단순화하면 '부부간 이혼 및 재산분할'이지만 그 규모나 세간의 주목도, 이례적인 판결 내용 등을 감안하면 다시 논리를 살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가 어떻게 구성되느냐도 중요하다. 이번 재판은 재산분할 비율보다 위자료 규모가 더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인명 사고에도 2억원이 한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건은 단순 이혼임에도 20억원이 책정됐다. 재산이 많은 사람의 고통은 더 크다고 볼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판례를 다시 정립해야 할 정도 사안이라고 본다면 전원합의체, 단순 이혼 소송으로 본다면 소부가 재판을 맡게 될 전망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안이 사안인만큼 대법원 입장에서도 심리불속행기각처럼 ‘피한다’는 그림을 보이긴 어려울 것인데, 그렇다고 전원합의체는 부담이 되니 소부에서 맡게 될 것으로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현재 13명의 대법관 중 가사 전문가가 없다는 점은 변수다. 이들은 민형사 등 다양한 재판 경험이 있지만 가정법원 경험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법원의 시각을 예측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재판부가 구성되면 변호인단은 연수원 기수, 출신 학교 등 다양한 연결 고리를 찾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가사 사건은 재판장의 판단이 중요하기 때문에 변호인단의 전략이나 변호인단 자체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이 사건은 워낙 특수하다보니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상고심은 1·2심 판단에 법리적인 문제가 있는지 살피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보다 법리해석에 초점을 맞춘다. 판사의 자유심증에 의해 인정된 '비자금 메모' 등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SK의 성장’과 같은 시각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대법원에서 파격적인 재산분할 액수에 대해서는 조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리적 판단을 통해 이례적인 조단위 재산분할 규모가 줄어들 여지는 있다. 예로 ‘비자금’이 부부의 재산 형성재산이냐 문제의 법리 다툼 여지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2심과 달리 대부분의 재판부는 유책자의 과오를 강하게 인정하지 않거나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등 보수적인 시각을 보여 왔다. 최 회장 측 자문단은 2심의 법리 오해, 사실관계 오해를 파고 들어야 한다.

    대법원에서 법리 문제를 살핀 다음 ‘위자료' 부분만 지적한다면 최태원 회장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 위자료는 과다하지만 재산분할 부분은 문제가 없다는 보는 것이니 그대로 1조원 이상의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게 된다.

    이 외에 최태원 회장과 변호인단이 3심에서 최대한 '지연 전략'을 펴는 것이 유리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재산분할 시 이혼 확정 판결일부터 바로 이자가 붙기 때문이다. 분할 규모가 큰 만큼 하루 억단위 이자가 발생할 수 있다. 대법원이 심리불속행기각을 결정하거나, 결국 이대로 판결이 확정된다 가정하면 최대한 늦게 결론이 나는 편이 이자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최태원 회장은 2심에서 김앤장·로고스·원 등의 도움을 받았다. 노소영 관장은 율우 김기정 대표변호사, 평안 이상원 변호사, 리우 김수정 변호사, 한누리 서정 변호사 등이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노 관장은 지난 1심 이후 수십 명의 변호사들을 직접 면담하며 변호인단을 전면 개편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