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업계, '영 리치' 확보에 사활...고객들 "소개팅 말고, 절세 컨설팅이나 해달라"
입력 24.06.20 07:00
영 리치 모셔 WM 자산 늘려야하는 증권사들
"젊은 부자들 경험·지식 깊이 달라…PB보다 잘 알기도"
비상장株·가상화폐 세미나 등 활발...절세'도 키워드
  • "한 증권사 PB가 어렵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대표를 모셔놓고 세미나를 열겠다고 한다. 사모펀드 운용사에 보유한 경영권 지분을 팔라는 걸까? 난 주변에 PEF 운용사에 다니는 지인이 많다. 그래봤자 사모펀드의 개념을 설명하겠지 싶다" (한 중견기업 오너 자녀)

    "신흥 자산가들은 직접 돈을 굴릴 줄 안다. 자산가인 부모 슬하에 태어나 학식이 풍부한 '영 리치'는 본인이 직접 코딩을 해서 비트코인 거래를 해 돈을 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핫한 상장지수펀드(ETF)를 소개해준다? 관심 안 갖는다" (한 스타트업 대표) 

    최근 국내 주요 증권사들 자산관리(WM) 파트의 핵심 키워드로 '젊은 고객 사로잡는 법'이 떠올랐다. 신규 고객층으로 주목받는 젊은 자산가들은, 경험이나 투자 지식의 폭이 넓고 깊은 탓에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 제공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이들의 마음이라도 사로잡기 위해 증권사들은 여가생활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사적 모임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다만 이같은 서비스들은 차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되레 신규 투자상품 제안이나 세무 상담 전문성 확대 등 본질적인 가치에 더욱 중점을 둬야한다는 평가다. 우리보다 먼저 ’영리치‘ 잡기에 나선 해외 유수의 금융사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올해 들어 증권사들에게 자산관리(WM) 부문 수익성의 중요도는 커졌다. 그간 증권사 고수익에 기여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문이 침체되면서 WM부문을 강화할 필요성이 생겼다. 특히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WM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각 증권사별 조직개편 움직임이 활발한 상태다.

    최근 신한투자증권은 증권과 은행의 WM 영업을 통합,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증권과 은행의 협업 강화는 첫 사례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개인고객그룹 부서 편제를 개편했고 삼성증권은 2020년 6월 업계 최초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시작한 지 4년 만에 자산 30조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도 기존 프라이빗뱅커(PB)본부와 WM사업부를 통합해 고소득자산가 대상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 신흥 자산가로 떠오른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시도는 글로벌 트렌드다. 미국에서는 2021년부터 20여년간 약 85조달러(11경7300조원)의 자본이 노령가구에서 다음 세대로 이전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회사를 설립해 부자대열에 합류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를 기회 삼아 해외 금융사들 또한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WM부문의 수익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모건스탠리는 자산관리 클라이언트 솔루션이라는 조직을 새로 설립하거나 직원의 WM을 돕는 사업을 통해 젊은 자산가들과의 접촉점을 넓히려 했다. 미국의 뉴욕멜른은행(BNY Mellon)은 가족회의를 조직해 논의를 돕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국내 증권사들 또한 신규 고객이 될 '영 리치' 모시기를 위해 차별화된 전략을 펴고자 한다. 업계에 따르면 한남동에 위치한 한 증권사 PB센터는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등 시장에는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비상장 주식 관련 서비스만을 집중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다른 증권사 PB센터는 예비 CEO로 분류되는 영리치들을 대상으로 명상 등 경영자로서 필요한 자질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는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전통사업을 영위해 부를 축적해온 기존 자산가 고객들과는 달리, 이들은 유학을 하는 등 해외 경험 또한 풍부한 편이다. 증권사 PB센터들은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여행 상품을 제안하기 위해 '세계 7대 불가사의' 나라를 여행지로 추천하는 등 마케팅 전략에 차별화를 더하기 위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들은 기존 고객들과는 달리 경험이 매우 풍부한 편이어서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데 고민이 크다"라며 "사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임을 선호하는 만큼 이를 감안해 몇십년 전부터 해오던 소개팅 주선 서비스도 자연스러운 모임을 통해 만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기획을 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PB센터가 금융투자 상품 제공 서비스에 더욱 공을 들일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물론 증권사 PB센터에서 제공하는 마케팅 서비스들이 자산가들로선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순 있지만 차별화에 한계가 있어서다. 

    이들이 실제 자산을 위탁할 증권사를 결정할 경우 당락은 '신규 투자상품 소개', '절세 상담' 등 투자 전문성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젊은 자산가들은 다량의 정보가 공개돼 있는 상장주식보단 특정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주식에 대한 관심이 더욱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고 한다. 증권사 PB보다 젊은 자산가들이 새로운 투자 상품이나 투자 방법을 더 잘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런 면에서 소개팅이나 여행지 소개 등 마케팅은 관심은 끌 수 있지만, 그 한계도 명확하다. 이들로선 흥미차원에서 한두번 해당 행사에 참여할 수 있으나 고객으로 유치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해외 유수의 금융사들은 이런 일회성 이벤트의 한계를 인식하고 장기적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 해외 투자은행 관계자는 “고객과의 시간의 49%를 투자 상담에 활용하고, 나머지 51%는 가족, 교육, 상속 플랜에 사용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외국계 IB 관계자 역시 “우리는 고객 자녀가 8살때부터 이들을 서포트할 수 있는 친인척과의 자리를 주선하는 등 어떻게 가족의 한 부분이 될지를 고민한다“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투자를 통해 부를 축적한 자산가들은 각종 행사보단 부동산 투자 및 절세에 대한 수준 높은 서비스를 원한다. 가상자산의 특성상 짧은 시간에 큰 돈을 벌었지만, 결국 해당 자금의 투자처로 부동산 등 안전자산을 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도 자산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윗세대와 마찬가지로 절세 방법에 대한 깊은 지식을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수준이 과거처럼 비과세 상품 가입 정도가 아니라 파생상품 거래 등을 활용한 방식 등으로 요구 수준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PB들의 역할이 투자상담이 아닌 금융그룹 내 해당 분야 전문가를 소개시켜주는 일로 확장하고 있다 .

    한 대형 운용사 관계자는 ”파생상품 전문가가 고객을 직접 찾아가 절세 방법을 제공하기도 한다“라며 ”이들의 요구수준이 이렇게 높아지다 보니 좋은 PB센터 만들어 놓고 각종 이벤트하는 것들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가령, 절세를 위해 배당주 투자를 권하면서도 차액결제거래(CFD)와 같은 파생상품 툴(Tool)을 활용해 종합과세가 아닌 분리과세가 되도록 테크닉을 적용해주는 역할을 PB가 해내주는 것이 역량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면에서 투자상품에 대한 전문성이 없으면 차라리 PB에게 ‘비서’ 서비스를 원하기도 한다. 어차피 투자는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모임장소나 필요한 서류작업 등을 대신해 주길 원하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고액자산가들이 가장 만족하는 서비스는 통화 대기 없이 바로 금융기관하고 연락해서 귀찮은 서류작업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라며 “해외처럼 가족의 일원처럼 투자에 대한 상담뿐 아니라 자녀교육, 상속 플랜 마련 등으로 서비스가 확장되지 않으면 현재 벌어지는 각종 이벤트는 일회성일 뿐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