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플랫폼 잇딴 미국行에 유니콘들 '기웃'..."쿠팡만도 못하면서"
입력 24.06.20 07:00
쿠팡조차 美 상장 후 흑전에도 주가 부진 '과제'
야놀자·네이버웹툰 미국行에 들썩이는 플랫폼社
높은 밸류 인정이 목적…"PSR로 국내 상장 힘들어"
현실 가능성엔 의문…국내 유치해야할 거래소 '부담''
  • 쿠팡의 성공적인 미국 증권시장 데뷔 이후 야놀자, 웹툰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플랫폼 기업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미국 증시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덩달아 당근, 컬리 등 유니콘 대열에 합류한 플랫폼 기업들 또한 미국 상장 검토에 나섰다.

    '파두 사태' 이후 깐깐해진 국내 증시에선 주가매출비율(PSR) 등 성장성 가치로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게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국내 온라인 소매 시장을 석권한 쿠팡조차 주가 상승 모멘텀이 부재하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실제 미국 상장에 성공하는 기업은 많지 않을 거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19일 증권가에 따르면 네이버의 미국 현지 웹툰 자회사인 웹툰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이후 지속적으로 나스닥행이 언급돼온 야놀자는 다음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관련 서류를 제출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들의 상장 추진 소식에 당근(前 당근마켓), 컬리 등 조(兆) 단위 몸값을 인정받으며 유니콘 대열에 합류했던 기업들 또한 미국 상장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커머스 기업 큐텐, 재난안전 기업 로제AI도 연내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내걸었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현재 벤처업계에는 미국 상장을 목표로 삼고 있는 기업이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쿠팡이 성공했고 야놀자ㆍ네이버웹툰 등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기업들이 잇따라 미국행 의사를 밝히며 유행처럼 번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장을 목표하는 가장 큰 이유로 밸류에이션이 꼽힌다. 쿠팡은 상장 당시 성장성 투자지표인 PSR(3.7배 수준)에 근거해 기업가치 평가를 책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시기 미국 아마존(3.3배), 이베이(3.2배), 알리바바(6배)의 PSR가 유사한 수준이었다.

    국내 시장에선 PSR를 근거해 산출한 기업가치에 대한 신뢰가 크게 하락한 상황이다. 국내 기관투자자(이하 기관)들은 수익성 증가 추이, 락업 비율, 발행사의 규모 등을 감안해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는 분위기다. 국내 상장을 통해 재무적투자자(FI)들로 하여금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회를 주는 것이 어려워진 만큼 활로를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미국 증시의 분위기는 박스권에 갇힌 국내와 사뭇 다르다. 국내 증권시장은 박스권에 갇힌 반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적자기업의 상장에 반감을 갖는 분위기도 아니다. 연초 미국 초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상장이 흥행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기준 9080만달러(약 120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장 당일 주가가 48% 급등, 다음날도 상승세가 이어졌다.

    해외 유수의 기관으로부터 투자 기회를 엿볼 수도 있다. 19일 웹툰엔터테인먼트가 제출한 증권신고서(S-1/A)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코너스톤 투자자로서 구속력없는 5000만달러(약 690억원) 규모의 신주를 인수할 계획이다. 쿠팡 또한 상장 이후에도 국내외 헤지펀드들이 보유 비중을 늘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 문제는 미국행을 목표하는 국내 벤처기업들이 '매력'을 갖추고 있느냐다. 쿠팡만 해도 '한국의 아마존'이라는 에쿼티스토리를 갖춘데다,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1위를 달성한 지배적 사업자다. 

    단순히 미국행을 택했다는 이유로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야놀자는 기업가치로 10~12조원 수준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몸값을 8조원으로 인정받고 투자를 받은 만큼 이보단 높은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피어그룹(비교기업)인 에어비앤비의 PSR(지난해 기준 8.9배)을 적용하면 야놀자의 기업가치는 6조8200억원 수준이다. 

    상장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야하는 점도 부담이다. 쿠팡 마저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이후 '만년 적자 기업'에서 벗어났지만 주가가 부진한 모습이다. 외국계 증권사들도 쿠팡의 기초체력에는 이견이 없지만 반등 모멘텀은 부재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웹툰엔터테인먼트는 엔데믹 이후 콘텐츠 수요가 하락한 데 따른 성장 둔화에 직면해있다. 지난해 기준 순손실 482억원을 기록했다. 유력한 피어그룹으로 꼽혔던 중국 웨원그룹 또한 상장 초기 15조원에서 최근 4조원대로 시가총액에 줄어든 상태다. 

    웹툰엔터테인먼트는 증권신고서에 "과거의 성장률이 미래 성과를 나타내지 않을 수 있다"라며 "유료 사용자를 유지하거나 늘리지 못하는 경우 재무상태, 운영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행'이 유행으로 번지며 한국거래소 또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쿠팡이 미국 증시에 안착할 때도 국내 기업의 해외 상장 가속화에 대한 책임 주체로 거래소가 지목된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국내행 이후 거래소 상장유치부의 '영업력'이 전 같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한때 거래소에서 국내 주요 기업의 해외 상장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프리젠테이션(PT)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뜸해진 상황"이라며 "상장 심사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이 워낙 많은데다, 잇딴 사고로 인해 '유치' 보다는 '심사'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코스피 시장에 상장할 만한 유니콘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려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코스피 시장을 염두에 두려는 코스닥 예비 발행사들도 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스피 시장에 과거만큼 병목현상이 생기지 않고 있으니, 어느정도 기업규모가 있는 발행사를 중심으로 코스닥 대신 코스피 시장에 도전해 상장 일정을 예상 가능하게 잡는 안을 제안하기도 한다"라며 "거래소도 기술특례상장 기업을 심사하는 것 만큼 꼼꼼하게 살피려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