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주주 분쟁' 누락 이노그리드에 거래소 강수…제도 강화에 긴장하는 증권가
입력 24.06.19 15:30
상장 예심 승인 취소된 이노그리드, 상장 또 좌절
'최대주주 분쟁' 누락이 계기…예비 발행사도 긴장
향후 나올 재발방지 방안에 증권가 '진땀'
  • 공모청약을 한주가량 앞두고 있던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이노그리드의 상장 예비심사(이하 예심) 승인이 취소됐다.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가 상장 예심 승인 결과를 뒤집은 것은 코스닥 시장 개장 이래 처음이다. 

    거래소가 내놓을 재발방지 방안에 따라 증권신고서 기재 범위가 얼마나 세부적으로 정해질지 여부에 기업공개(IPO) 주관사 기능을 하는 증권사들은 주목하는 분위기다. 향후 최대주주의 법적 리스크에 대한 거래소의 심사 기조 또한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9일 이노그리드는 상장 계획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코스닥시장 상장규정 제8조에 따라 회사의 상장 예심 결과 효력이 불인정되어 잔여 일정을 취소했다는 설명이다. 7차 정정신고서가 공시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이노그리드는 12년 만에 상장에 다시금 도전한 기업으로,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코스닥 시장에 다음달 상장할 계획이었다.

    거래소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노그리드가 최대주주 지위분쟁 관련 사항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해 상장 예심 신청서 등에 기재하지 않았고 상장 예심 단계에서 이를 심의할 수 없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는 지난달 27일 6차 정정신고서에 새로이 반영된 내용이다. 이노그리드는 '소송 등 법적 분쟁 발생 가능성 위험' 부문에 "과거 당사의 최대주주였던 법인과 해당 법인의 최대주주 상호간 당사 발행 주식 양수도 및 동 주식에 대한 금융회사의 압류 결정 등과 관련해 분쟁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이다"라며 "다만 위와 같은 사실관계와 관련해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하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코스닥 상장규정에 따르면 상장예비심사 신청서 또는 첨부서류를 거짓으로 기재하거나 중요한 사항을 빠트린 사실이 확인될 경우 상장예비심사 결과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통상 최종 승인은 청약 절차가 마무리되고 며칠 뒤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거래소가 규정에 반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니다. 다만 거래소가 심사 승인 이후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은 첫 사례가 나오면서 증권가는 긴장하는 모양새다. 

    특히 거래소는 예비심사 승인 후 효력 불인정으로 인한 시장 혼란의 중대성을 감안해 재발방지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증권사들은 거래소가 증권신고서에 포함해야 하는 내용을 얼마나 엄격하게 제시할지 여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임원은 "거래소에서 향후 최대주주 관련 소송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볼 것으로 예측된다"라며 "향후 상장에 나서는 발행사들은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하더라도 최종 승인이 나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게 됐다"라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들에게 주식을 아직 배정하지 않은 데다 일반투자자 대상 청약 또한 실시하기 전이어서 투자자 보호 문제는 없는 상태다. 다만 거래소가 승인 결과를 이례적으로 뒤집은 배경에 대해선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는 분위기다.

    파두 사태 이후 기술특례상장 심사가 강화된 여파가 그 배경으로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거래소는 발행사를 대상으로 실적 추정치에 대해 불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강도 높은 심사를 이어가고 있다. 기술특례 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하고자 하는 발행사들은 거래소에 수차례 증빙자료를 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노그리드가 이미 거래소에 밉보인 상태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노그리드는 재심 절차인 시장위원회를 통해 거래소 상장위원회의 '미승인' 판정을 뒤집은 바 있다. 통상 상장위원회에서 미승인 결정이 나오면 발행사는 상장 철회를 택한다. 다시금 상장 추진할 경우를 대비하려면 거래소의 심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어서다.

    거래소가 최근 인사 교체 이후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거래소 임원 및 부서장 인사가 이뤄지면서, 기존 심사 건에 대해서도 다시금 검토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해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파두 때문에 심사 기조가 강화됐냐는 질문에도 거래소 측은 심사기조는 그대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라며 "금감원과 거래소가 서로 견제하는 분위기가 있다. '우리가 더욱 소액주주에 대한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이번 일로 이노그리드의 상장을 주관하면서 직접 투자를 단행한 한국투자증권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시점은 뒤로 밀리게 됐다. 한국투자증권은 주관한 기업들에 대한 직접 투자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와중, 이노그리드에 1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포함해 총 12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효력 불인정 결과에 따라 이노그리드는 향후 1년간 상장 예심을 신청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