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신규상장은 뒷전? 밸류업 '올인' 거래소, 상장유치는 '시들'
입력 24.06.27 07:00
취재노트
예심 결과 뒤집은 거래소…상장기업 수 관심 없나
관리 집중에 국내 증시 질적 제고 기회 놓치는 거래소
  • "최근 한국거래소는 예비 상장사들을 일단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어요. 상장기업을 유치해서 그 수를 늘리면 오히려 거래소 입장에선 골머리만 아플 수 있는거죠." (한 투자업계 관계자)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가 클라우드 서비스 개발업체 이노그리드의 상장 예비심사(이하 예심) 승인을 취소하면서 거래소의 역할론이 다시금 도마위에 올랐다. 성장성이 있는 기업을 증시에 적극 안착시켜 국내 증시의 질적 제고를 꾀하기보단 예비 발행사들의 허점을 찾아내는 등 관리·감독하는 데 더 집중한다는 지적이다.

    상장을 희망하는 기업들은 길게 줄을 선 상태고, 거래소와 감독기관은 '제2의 파두' 색출에 중점을 두고 있어 유치 활동을 나서면서까지 상장기업 수를 늘릴 필요성이 크진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와중 해외기업은커녕 국내 기업의 해외 자회사, 국내 유니콘 기업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상장 기회를 찾는 중이다.

    최근 이노그리드의 상장 예심 결과를 거래소가 이례적으로 번복하며 논란이 일었다. 향후 상장 예심 문턱이 높아질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중이다. 파두 사태 이후 주관사 역량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한 'IPO 선진화 TF'가 구성되는 등 IPO 절차상 규제가 늘어나는 와중 상장 심사의 난이도를 또다시 높이면서 '거래소가 상장기업 수를 늘리려는 의지가 없어보인다'라는 지적이 적잖이 나오는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시장의 경우 상장유치 관련 부서가 정식으로 가동돼 오고 있다. 물론 코로나 이후 행사가 줄어들긴 했지만 해외기업 상장 유치 행사를 매년 개최하곤 있다. 지난해에도 미국, 독일 지역을 돌며 한국 자본시장을 홍보하고 우량기업 유치를 위한 컨퍼런스를 개최해왔다. 그러나 코스피 시장은 해당 기능이 없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당시 한국을 동남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의지 아래 거래소가 적극 해외 기업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해왔다"라며 "당시 국내 증시에 입성했던 중국, 일본 기업들이 줄줄이 상장폐지하면서 굳이 해외 기업을 유치해서 뭐하나라는 인식이 생기긴 했지만 거래소는 꾸준히 상장 기업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최근에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 거래소가 상장 유치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여럿 거론된다. 

    먼저 국내 증시가 상장할 만큼의 매력이 있진 않다는 지적이다. 2021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싱가포르 기업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는, 당시 바이오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을 높게 인정해주던 시장 분위기를 감안해 국내 증시 상장을 결정했다고 한다. 지금은 로봇이나 반도체 관련 기업이 아니라면 국내 증시에 굳이 상장할 유인은 많지는 않다는 평가다. 

    금융당국과 거래소가, 예비 상장사들로 하여금 문제 소지가 있는지 여부를 면밀히 살피고 있는 분위기도 원인으로 거론된다. 관리감독해야 할 상장기업 수를 늘릴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물론 제2의 파두사태를 막기 위해서 각 기관들이 역할을 다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거래소 내부적으로 바이오 기업에 대한 반감이 커져있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등 발행사들의 상장 가능성이 전반적으로 낮아진 점은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거래소는 상장 유치보단 밸류업 프로그램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취임 이후 첫 출장길의 목적으로 '한국판 밸류업 프로그램 영업'을 내세웠다. 지난 17일에도 홍콩·싱가포르의 글로벌 투자기관 대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 출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와중 국내 유니콘 기업들은 해외 증시에 상장해 원하는 만큼의 밸류에이션(Valuation)을 받길 원하고 있다. 국내 상장사의 해외 자회사들 또한 현지에 상장해 주주구성을 현지화하고 중복상장 논란 또한 피하고자 하는 분위기다. 발행사들이 국내에서 해외로 눈을 돌리며, 일찍이 주관사 자리를 선점해놓거나 사전적으로 영업을 해오던 국내 증권사들은 일감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상장 기업 수'가 더이상 거래소의 KPI(핵심성과지표)에 포함되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소의 심사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세간의 불신이나 불만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