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답안지 제출 지연에 공회전하는 석유화학 구조조정
입력 24.07.02 07:00
취재노트
6월말까지 종합지원대책 못 내놓은 산업부
"국가가 육성한 산업, 국가가 책임져야"
"정부 나선다고 묘수 나올까 회의감" 의견도
  • 정부 주도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 논의가 늘어지고 있다. 다수의 석유화학사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뚜렷한 해결책을 찾는 데 시일이 걸리면서인데, 정부 주도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업계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인 만큼 어떻게든 정부 차원에서 연착륙을 완성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정부도 묘수를 내놓지 못할 것이란 회의감이 혼재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4월 초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협의체(TF)'를 출범시켰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심으로 LG화학,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등 민간 석유화학 기업들과 산학연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국내 화학 산업이 처한 위기에 대응한다는 계획이었다. 국내 기업 간 M&A를 통해 공급 과잉을 해소하겠다는 계획이 핵심이다. 중장기 전략을 포함한 종합지원대책을 6월 말까지 내놓는 것이 목표였다. 다만 6월 중순까지도 석유화학사들 간 비용 효율화 방안조차 합의되지 못하며 깊이 있는 구조조정 논의까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파악된다.

    정부 주도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업계 시각은 엇갈린다. 민간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니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대기업이 나섰는데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회의적 목소리가 섞여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석유화학 산업은 대한민국 고도 성장기에 정부가 대기업들에 힘을 실어 국가가 육성해 키운 만큼, 정부 차원에서 연착륙 방안을 모색해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롯데케미칼과 LG화학 등 국내 대기업들이 일찌감치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던 만큼 정부가 나선다고 특별하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해당 TF에선 사업재편에 나서는 석유화학사들에 감세 혜택을 주는 등의 방식이 논의되고 있으나, 석유화학사들이 특정 유인책으로 구조조정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점은 공통 문제로 꼽힌다. 코로나 특수로 찾아온 단기 호황에 대규모 투자에 나섰던 기업들이 손실을 감수하고 NCC 등의 설비 매각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데다, 내놓는다 해도 적절한 가격을 제시하는 원매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논의가 길어지는 사이 석유화학사들의 위기는 심화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상반기 정기평가 결과 올레핀 비중이 높은 화학사들의 신용등급 및 전망을 모두 하향 조정했다. 한화토탈에너지스 (AA/N → AA-/S), SK피아이씨글로벌(A/N → A-/S), 효성화학(A-/N → BBB+/N)은 신용등급이 하향됐으며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HD현대케미칼, SK어드밴스드는 등급 전망이 부정적(Negative)으로 조정됐다. 사업포트폴리오 내 올레핀계 석유화학제품 비중이 높아 수익성 개선이 제한적이고, 신규 투자 등으로 차입금 부담이 증가하거나 저하된 재무안정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석유화학업의 체질 개선에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석유화학 자급률의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데다, 환경규제가 점점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에틸렌, 프로필렌(PP) 등 기초 유분의 중국 자급률은 2020년 이미 100%를 넘어섰고 2025년엔 120%까지 올라서게 된다. 중간 원료인 파라자일렌(PX)과 합성수지인 PP 자급률도 2025년엔 100%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나신평은 향후 수급상황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이익창출력은 과거 호황기 대비 미흡한 수준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석유화학 담당 한 연구원은 "국가가 주도하든 민간이 주도하든 구조조정은 쉽지 않은 작업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해당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리지만, 답답한 상황은 계속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