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뒷담화도 줄어든 자본시장…하반기엔 희망고문 끝날까
입력 24.07.04 07:00
일감 줄어들며 경쟁사 견제 움직임도 뜸해져
시장 반등 가로막은 고금리, 인하 여부에 촉각
전보다 나아진 2분기, 거래 증가 가능성 기대
  • 자본시장은 거래 실적과 돈으로 가치가 입증되는 곳이다. 전문성과 배경을 갖춘 인사들이 몰려 있다 보니 남들보다 앞선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경쟁심도 뜨겁다. 이는 때로 경쟁사에 대한 뒷담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느 곳이 저가 수임으로 무리하고 있다거나, 사고를 쳤다는 등 좋지 않은 평판이 쌓이면 일감이 돌고 돌아 자기에게 올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긴장 관계는 서로 더 나은 자문 결과나 실적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시장에 워낙 거래가 없다 보니 수임을 빼앗아 오거나 경쟁사들에 대해 이런 저런 평가를 내릴 기회도 많이 사라졌다. 경쟁사 지적보다는 시장이 빨리 살아나서 서로 잘 돼야 한다는 ‘덕담’이 많아진 분위기다. 각자 살림을 챙기다 보니 경쟁사를 살필 여유가 없어진 면도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도 자본시장의 분위기는 침체 일로다. 시장 유동성이 줄어들다 보니 대형 거래가 나타나기 어려워졌고 자문사들의 먹거리도 줄어들었다. 대형 거래의 터줏대감인 외국계 투자은행(IB)은 물론 중소형 거래의 강자 회계법인, 각종 위험 요인을 줄여주는 법무법인까지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M&A 시장은 기업 등 전략적투자자(SI)가 위축된 영향이 크다. 이전까지는 사모펀드(PEF)와 기업이 힘의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보였는데 최근에는 기업의 존재감이 크게 줄었다. 특히 국내에서 인수자 역할이 많이 줄어든 모습인데 기업의 사업 확장 욕구가 줄어드니 시장은 전반적으로 침체하게 된다.

    주요 그룹 중 삼성은 이미 여러 해 대형 M&A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실제 성사된 것은 없다. 현대차 그룹은 국내보다 해외에 눈을 돌리고 있고, SK그룹은 긴축 모드로 180도 바뀌었다. LG그룹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경영 전략을 펴 왔고, 롯데그룹은 화학 사업 등 군살 빼기가 중요한 모습이다. 대기업이 주춤하니 M&A 시장의 한 축이 휘청거렸다.

    주요 PEF들 역시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SI가 등장하지 않으니 다른 PEF와 포트폴리오를 주고 받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간혹 염가 매각이나 고가 인수 사례가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경제적 득실보다는 펀드 청산이나 신규 펀드 자금 모집을 위한 것들이다. 일부 거래에선 PEF간 각축전도 나타나는데 이때도 경쟁자 비판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바라는 경우가 있다.

    자문사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은 힘겹다. 대기업이 몸을 사리니 운신의 폭이 크게 줄었다. PEF는 대부분 관계가 돈독한 자문사가 정해져 있다. 주요 IB나 회계법인 모두 세대 교체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꾀하는데 당장 실효성은 크지 않다. 쟈문사마다 대기업이나 PEF 자문을 따내기 위해 힘을 싣고 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낼 상황은 아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활약이 줄어들며 자본시장 내 대기업과 대형 PEF간 무게 중심이 흐트러졌다”며 “자연히 거래 시장의 역동성이 줄어들고 자문사들의 일감도 감소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선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진 이제나저제나 시장의 반등을 기대했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하반기엔 반등 가능성에 다시 힘을 싣고 있다. 이제는 진짜 희망고문(?)을 끝낼 때가 됐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단순한 바람을 넘어 살아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도 엿보인다. 임기 만료를 앞둔 자문사의 수장이나 새로 중책을 맡은 인사들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시장 반등이 늦어질수록 이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가장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역시 금리 인하다. 금리가 낮아져야 기대 수익률이 떨어지고 투자자들의 부담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난 1~2년 사이 금리가 조만간 인하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올해는 전세계적으로 변동이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올해 기준금리를 낮췄고, 미국 등 주요 국가가 뒤를 따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자본 시장의 역동성을 저해하던 가장 큰 걸림돌은 높은 금리였는데 시점이 언젠가는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며 “금리 인하를 염두에 두고 물밑에서 거래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확실히 2분기 자본시장은 이전보다는 활기를 띠는 모습이었다. 작년부터 1분기까지 극도의 침체를 지난 데 따른 반사 효과일 수도 있지만 일부 대형 거래들이 나타나며 분위기 반전을 기대케 하고 있다. 지오영 매각처럼 PEF의 회수 거래나, SK렌터카 M&A와 같은 대기업발 사업조정 거래도 있었다. SK그룹을 비롯한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 매기 시작하면 시장이 더 활기를 띨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