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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의 자본시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승계’다. 시장 침체 장기화로 대기업발 ‘빅딜’이 좀좀처럼 나오지 않는 시장에서 IB들은 승계 관련 딜(deal)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자문사들은 자문사대로, PEF(사모펀드) 등 거래 당사자들은 당사자대로 ‘오너가’ 거래를 발굴하기 위해 분주한 분위기다.
한미약품ㆍ효성ㆍ한국타이어ㆍ아워홈 등 최근 주목을 받은 ‘승계 이슈’들에도 거래 기회를 노리는 시장 관계자들이 계속해서 오르내리고 있다. 승계 딜들은 성사가 쉽지 않지만 성사만 된다면 그룹과 빠르게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대기업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대다수 기업들의 ‘회장님’들이 50대 후반~70대로 은퇴를 바라보는 시기고,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기업 승계”라며 “크고 작은 기업들뿐 아니라 수많은 자산가들도 상속 문제에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다”라고 말했다.
재계 5위 내외 대기업도 ‘오너가(家)’ 이슈가 최대 관심사다. 대형 로펌들은 지금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소송건 추가 수임을 두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전해진다. SK가 ‘인적 쇄신’ 이후 대대적인 리밸런싱에 나서고 있고, 이혼소송 등 큰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SK도 승계 고민이 멀지 않았다는 시선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최 회장이 ‘이사회 중심 경영’ 등을 내거는 등 후계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얘기는 공공연히 알려진 바다.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최 회장이 장남 최인근 씨와 함께 있는 다정한 모습(?)이 포착됐고, 또 이달 개최된 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이 처음 참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전무는 이달 5일 롯데지주 지분율 0.01%에 해당하는 보통주를 매입했다. 신 전무가 롯데 계열사 주식을 산 건 처음이다. 신 전무가 지분이 없는 것이 승계의 걸림돌로 꼽혔는데, 지분 확보에 나서 눈길을 끈다. 최근 신 전무가 일본 롯데홀딩스 사내이사로도 선임되면서 롯데가 승계에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해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한 신 전무는 그룹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맡았는데, 아직은 내외에서 명확한 ‘역할’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다른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소형 딜을 여럿하고 있는데, 딜 규모에 따라 수임료 차이는 있지만 결국 업무량은 비슷하다”며 “추후 거래 수임을 위해서라도 SK 이혼 건처럼 오너가가 엮이는 큰 건을 하는 게 자문사 입장에서 이득인데, 로펌 내에서도 M&A보단 전반적인 그룹 지배구조 개편 업무를 하는 곳이 분주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중견기업들은 사실상 후계자가 없으면 ‘매각’ 선택지만 남는다. 백기사 역할의 사모펀드와 거래하든지, 해당 사업을 원하는 대기업에 회사를 넘길 수도 있다. 2018년 신세계그룹에 매각된 가구매체 까사미아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현구 까사미아 회장은 오너일가 지분 전부를 1837억원에 신세계에 넘겼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갈수록 치열한 국내외 시장 경쟁에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유통망과 투자금을 갖춘 신세계그룹에 회사를 매각했다.
한 PEF관계자는 “시가총액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인 제조업체들도 ‘회장님’은 노환이 오고 은퇴 시기가 다가왔지만 승계 계획이 마련되지 않은 곳들이 많다”며 “자녀들은 투자업 등 소위 ‘화려한’ 일들을 원하거나 애초부터 가업 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도 다수인데, 후계자가 없어도 자녀들에게 물려줄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회사를 매각하는 선택지만 남는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자체 경쟁력 확보가 힘들다는 점, 자녀들이 ‘나만큼’ 회사에 애정을 가지기 어렵다는 판단이 회사 매각 결심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게다가 요즘 2세들은 해외 유학 등 다양한 경험을 거치면서 ‘가업’을 물려받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하는 사례도 늘었다. 차라리 기업을 매각하고, 매각 대금으로 자녀들의 새로운 사업 자금을 대주는 방향도 고려한다는 것이다.
상속세 부담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회사를 키우느라 보수나 배당 등을 줄여가며 헌신했던(?) 오너들의 경우 이제 와서 상속세를 부담하려니 계산이 서지 않는 곳도 많다. 이렇다 보니 일부 상장사 기업 오너들은 오히려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 부담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오히려 본인 회사의 ‘주가 상승’을 바라지 않는 웃지 못할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상속세 인하 논의가 시작된 가운데 상속세 개편 없이 ‘기업 밸류업’ 제도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IB들 입장에서도 오너 회사 딜은 성사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대기업처럼 지배구조상 사업 개편에 나서는 것이 아닌 이상 ‘자식 같은’ 회사를 넘기기 쉽지 않다. 누구보다 해당 산업을 잘 아는 오너와 시장의 가격 눈높이 차이도 상당하다. 이러다 보니 자문사들이 수년간 오너들을 설득해도 최종적으로 공염불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M&A 뱅커들은 오랜 기간 ‘회장님’들과 교류하며 관계를 쌓기도 하는데, 매각 후 자산 관리와 자녀 미래계획(?) 등 종합적인 ‘매각 플랜’을 상담하기도 한다. 1년의 반 이상을 해외에 거주하는 자산가들을 위해 잦은 해외행도 주저하지 않는다. 성사가 쉽지는 않지만 회사 통매각 등 딜이 성사되면 한 번에 수십억원의 자문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것 여럿’보다 ‘큰 것 한 방’을 노리는 것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법인들은 감사를 하면서 눈에 띄는 기업이 있으면 매각 등을 먼저 제안하는 방식으로 딜을 발굴하고 있기도 하다”며 “오너 기업 매각은 상속세 등 고민할 거리가 많은데, 가격 눈높이가 맞아도 ‘회장님’의 최종 결정을 돕는 ‘사모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회사를 매각한다면 이후 자녀들에게 어떤 것을 보장해 줄 수 있는지 여부다”라고 말했다.
빅딜 실종된 시장에서 '승계 거래'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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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07월 0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