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고 나가겠다는 조현문 vs 속 시원히 못받아들이는 조현준·조현상
입력 24.07.12 07:00
조현문 세금 선납 조건부 상속안에 재단설립·환원
사실상 "털고 나가겠다" 절연 요청…일가선 "실망"
공동상속인 동의 없인 독자적 재산 처분 불가한데
상속세 신고일까지 두달 반…공은 이미 효성일가로
계열분리 현안 多…그룹 사업·투자자와는 별개 문제
  • "저의 가장 큰 희망은 효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 필수적인 지분 정리에 형제들과 효성이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중략)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효성 경영권에 관심이 없다. 불법 비리에 대한 문제 제기를 '경영권 분쟁'으로 표현하는 것은 저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다. 오해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남긴 조건부 상속안을 두고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꺼내 든 카드는 가족과 효성으로부터의 완전한 절연이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익재단을 설립해 상속재산 전부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사회 환원을 통해 가족 내 오랜 불화를 털고 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효성그룹은 기자회견 이후 다음과 같은 일가 입장을 내놨다. "지금이라도 유훈을 받들겠다 의사를 밝힌 것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장례가 끝난지 3개월이 지났는데 어머니께 말 한마디 없이 시간 되면 찾아뵙겠다는 얘기만 들으니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 실망스럽다.(후략)"

    효성그룹 일가가 유산 상속 문제를 두고 이색적인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이 따르기도, 안 따르기도 힘든 조건부 상속안에 공익재단 설립 카드를 꺼내들면서다. 경영권이 아니라 일가가 재단 설립에 동의하느냐 마느냐가 쟁점이 돼 버렸다. 형제간 우애를 당부한 유언이 공교롭게도 새 갈등을 불러일으킨 모습이다. 

    10일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측 법률대리인은 재단 설립을 위한 실무 작업에 돌입했다.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상속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자면 일정이 빠듯한 상황으로 전해진다. 오는 9월 30일 상속세 신고일 전까지 재단 설립과 유증 주식의 출연을 마쳐야 한다. 

    현재 조 전 부사장이 상속재산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힌 최대 배경으론 세금이 지목된다. 유언에 따른 조 전 부사장 몫 상속재산은 ▲효성티앤씨 지분 3.37% ▲효성화학 지분 1.26% ▲효성중공업 지분 1.50%로 비상장사 지분을 포함해 시가 약 1200억원 수준이다. 현행 상속세율(50%)을 적용하면 약 600억원가량 현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익재단에 이를 기부하면 상속세 부담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세 부담을 피하려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기존 재산을 활용하거나 물납·주식담보대출 등 다른 방안도 많기 때문이다. 

    재계 한 인사는 "개인 보유 자산이 없는 것도 아니고 경영권 승계 목적이 없을 경우 세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라며 "절세 꼼수는 승계 과정에서 쓰이는 수단이지 털고 나가겠다는 사람 입장에선 성립이 안 된다. 조 전 부사장이 여러 자문을 거쳐서 이참에 가족과의 잘못된 인연을 끊어내기 위한 방법을 고안한 것"이라고 전했다. 

    유언 내용 자체가 조 전 부사장 입장에서 선뜻 따르기 어려운 조건을 담고 있기도 하다. 유언에 따라 배정된 몫을 유증 받으려면 상속·증여세를 선납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린 탓이다. 통상 재벌가 상속에서 연부연납으로 세 부담을 줄여 온 관행을 감안하면 상속인 중 조 전 부사장 부담이 가장 큰 구조다. 

    효성그룹 지배구조 특성상 당장 600억원을 납부하고 얻어낼 실익도 불투명하단 평이다. 지주사 ㈜효성과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효성티앤씨·효성화학·효성중공업에 대해 각각 50% 안팎 지배력을 갖추고 있다. 조 전 부사장 몫은 시가로 1000억원 상당일 뿐 지배력 측면 활용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지주도 아니고 사업자회사 소수지분을 상속하면서 세금 선납을 조건부로 내걸었으니 유언을 따르기도, 안 따르기도 곤란한 구조"라며 "더군다나 효성그룹 지분 구조는 과거 국민연금 책임투자실에서도 꼬리를 내린 적이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3% 안팎 지분으론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조 전 부사장이 독자적으로 상속재산을 기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공동상속인이 재산 처리에 동의하기 전까지 실질적인 처분 권한은 유언 집행인에 묶여 있는 셈이다. 조 전 부사장이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에 협조를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달리 보면 일가가 동의하는 시점에 10년에 걸친 갈등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양자 간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다. 현재 조 명예회장의 유언 집행을 담당하는 법무법인 화우가 사실상 유일한 소통 창구로 확인된다. 각기 법률대리인을 통해 의견을 담은 서류를 주고받을 뿐이라는 얘기다. 

    조 전 부사장 측 대리인은 "한 달여 전 화우 측에 입장을 전했지만 아직 필요한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며 "재단을 설립하고 출연하기까지 공동상속인 동의서가 있어야 한다. 설립 인가에 필요한 절차 등을 감안하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공익재단을 활용한 경영 개입 우려로 일가가 선뜻 협조하기 어려울 거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 몫 상속분이 워낙 적어 지나친 비약으로 받아들여진다. 현행 상증법상 공익재단 보유 지분을 취지와 다르게 활용하는 데 대한 규제도 만만치 않다. 시장에선 재단의 주식 자산 비중을 30% 이하로 맞춰야 하는 만큼 재단 설립 이후 상당수 주식을 현금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은 일가에서 조 전 부사장 요청에 대한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재단 설립 취지가 사회 환원이냐, 상속세 우회냐를 떠나 작업이 틀어질 경우 평판 부담은 오히려 효성그룹이 지게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조 전 부사장은 사회 환원 계획을 밝히며 협조하지 않을 경우 "저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덧붙이기도 했다. 

    유산을 둘러싼 일가 내 갈등은 사업이나 투자자와 무관하기도 하다. 계열 분리를 포함해 진행 중인 계열 재무개선, 사업부 분할·매각 등을 감안하면 하루빨리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효성그룹 계열 분리 작업을 온전히 마치려면 사업부 분할·매각을 통한 재무 개선, 주가 관리부터 형제간 지분 맞교환까지 각사 수뇌부가 신경 써야 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어떻게 보면 의절한 형제가 갈등을 털고 나가겠다는 건데 구태여 발목을 잡고 불씨를 살려둘 이유가 없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