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난맥상…노조는 HBM 볼모 잡고, 경영진은 사전 대비 못했고
입력 24.07.15 07:00
취재노트
  •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제부턴 장기전이다.

    사실 이번 노조의 파업 선언은 수많은 투자자, 다수 임직원들의 호응을 얻진 못한 듯 보인다. 대대적인 총파업 선언을 발표했을 당시보단 파업의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올 기회를 옅보는 상황에서 노조의 갑작스런 파업선언으로 유·무형의 손실이 불가피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사태의 결론을 예단하기에 앞서 삼성전자의 노무 리스크는 앞으로 계속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어떤 경영적 환경에서든 임직원들의 눈높이에 맞는 처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삼성전자의 노사갈등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단 점을 확인했다. 이 같은 노조의 움직임이 전자를 넘어 그룹 전 계열사로 확장하는 건 시간 문제이다.

    삼성전자 노조 파업의 명분과 정당성을 따지는 건 별개이다. 다만 삼성그룹이 이제껏 노무 리스크에 대해 어떻게 대비를 해왔고, 앞으로 노사 관계의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해나가야 할 것인가는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과거 삼성그룹의 노무 관련 이슈는 미래전략실 소관이었다.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파트는 그룹의 노사관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수시로 조율했다. 물론 추후에 '노조 와해 의혹'으로 삼성전자 전 임원이 구속수감되며 미전실 역할의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했다.

    노무 담당 임원이 구속될 당시 법원은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파트는 그룹의 '비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하기 위해 그룹 내 노사관계에 관한 사령탑 역할을 하며, 계열사 노사문제를 수시로 확인·점검하고 계열사가 추진하는 노사정책 및 노사현안을 지휘·감독해 왔다"고 판시했다.

    삼성전자는 1969년 창립 이래 노조가 없었으나 2020년 이재용 회장이 '무노조 경영 폐기' 방침을 밝히며 노조의 활동이 본격화했다. 이미 2019년 11월 이번 파업을 주도한 전삼노가 출범했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미전실은 이미 해체된 상황이었다. 추후 미전실의 후신으로 평가 받는 사업지원TF는 인사 업무를 담당하지 않기에 현재로선 노무·인사 분야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는 없다.

    현재 삼성그룹의 노무 관련 업무는 피플팀으로 명명된 인사팀에서 담당하고 있다. 전사차원에 나기홍 부사장, DS부문의 최완우 부사장 등이 주축이다. 현재 노조와의 협상 테이블엔 상무급 임원을 중심으로 한 대표교섭위원들이 나서고 있다.

    2021년 이후 노조는 사측과 매년 임금협상을 진행했다. 단체협약도 맺었다. 노조가 올해 총 파업이란 초강수 전략을 쓰기 전까지도 사측은 노조와 수 많은 접점이 있었다. 올해엔 1월부터 사측과 노조가 임금협상을 진행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달엔 중앙노동위원회의 사후조정까지 3차례를 거쳤지만 역시 합의엔 이르지 못했다.

    결국 이달 초에는 전영현 부회장이 노조와 협상에 나섰다. 전 부회장이 반도체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지 불과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뒤늦게 최고위급 인사가 나섰지만 결국 진화하지 못한 형국이었다. 노조가 이달 초 총파업이 선언하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지만 그룹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가 자체 추산 6000명 이상의 파업 선언을 발표할 당시 삼성그룹측은 "생산엔 차질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생산현장에서 파업의 여파는 아직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사측의 발표대로 6500명의 인력이 일손을 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사를 투자자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평균 연봉 1억원이 넘는 직원 수천명이 일손을 놓아도 경영상 차질이 없다면 인력운용 비효율이란 허점을 드러낸 셈이 된다. 그리고 노조는 이제 회사가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동시에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을 볼모로 삼으려고 한다.

    삼성그룹이 애써 차분하고 담담한 분위기를 비추는 것과는 달리 경쟁관계에 있는 글로벌 기업들, 또 해외 언론들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이제 막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시점에서 노조의 파업으로 생산차질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경영자들에겐 분명 달가운 일은 아니다. 

    분명한 건 절체절명의 사업적 위기 상황에서 노무 리스크까지 더해지는 걸 막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있었다면, 중심을 잡고 이를 해결해나갈 인사 또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면, '사상 첫 총파업' 이슈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점이다.

    노무 리스크는 전 세계 어느 기업에나 상존한다. 이제까지 삼성그룹만 예외였을 뿐이다. 현재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룹인 현대차는 6년 연속 무분규 노사협의에 성공했다. 물론 강성노조의 요구사항을 대거 수용하며 그룹의 비용 증가가 불가피해졌지만 현대차그룹 나름대로 노조의 파업과 이에 따른 무형의 손실 그리고 합의에 따른 기회비용을 따져봤을 것이다. 이는 그룹의 태동부터 함께한 노조와의 갈등 속에서 쌓인 일종의 노하우(?)로도 볼 수 있다.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나 반대로 절호의 기회를 잡았을 때도 노조는 언제든 공장을 멈출 권리가 있다.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하는 건 노조의 요구는 앞으로 더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이제 삼성그룹에 노조리스크는 상수가 됐다. 매년 노조의 활동을 격하(格下)하는 수준의 대응으로 리스크를 감당하긴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