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전문가 늘린 국민연금 수탁위, SK·두산 합병 어떤 선택 내릴까
입력 24.07.29 07:00
국민연금, 수탁위 금융 및 자본시장 전문가 늘려
SK·두산 합병 국민적 관심으로
수탁위가 합병안 찬반 결정 할 듯
정치권 및 여론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합병 찬성하긴 힘든 분위기
투자자들, 소송 등 적극적 행위 요구 목소리도
  •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로 자본시장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연금 수탁위 결정에 따라 SK와 두산그룹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전문성 및 의결권 행사 강화를 외쳐온 만큼 수탁위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추후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울 미칠 수 있다. 

    최근 국민연금 수탁위 내부엔 자본시장 전문가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늘어난 상황이다.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높아진 주주권리에 대한 관심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변수로 꼽힌다. 국민연금 구조상 정치적인 판단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지목된다.

    현재 국내 자본시장 핵심 관심사 중 하나는 SK그룹과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을 추진 중이다. 합병기일은 오는 11월1일로 두 회사는 각각 내달 27일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의 지분율은 6.2%다.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1대 1.19로 정해졌다. 양사 합병 사유에 대해서 ‘에너지 산업을 선도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두산그룹은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에 붙이는 사업재편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한 분할합병 기일은 오는 10월29일이다. 주주총회는 9월25일이다. 국민연금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6.78%, 두산밥캣 6.97%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이번 분할 합병에 대해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사업끼리 모아서 클러스터화 하는 게 이번 사업 재편의 목적이다”라고 밝혔다. 

    양 그룹 모두 이번 합병 거래에 ‘미래 성장동력 발굴’이란 목표를 내세웠지만 이를 바라보는 소액주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결국 ‘재벌오너 살리기’라며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합병 대상 계열사 상당수의 2~3대 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합병엔 주주총회 결의가 필수인만큼,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질지 여부가 결과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적지 않을 거란 평가다. 

    해당 의사결정은 수탁위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합병과 같이 국민연금의 판단이 중요한 사항은 국민연금에선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수탁위 전문위원에게 판단을 맡기는 사례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현재 수탁위는 한석훈 위원장을 중심으로 총 9명의 전문위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제 1차 기금위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 구성 변경을 위한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운영규정 개정을 심의, 의결했다. 이에 따라 9명 중 3명은 관계 전문가 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아 자산운용, ESG 책임투자 등 전문가를 위촉할 수 있게 됐다. 

  • 현재 9명의 명단을 살펴보면 이런 점 등이 반영됐다. 관계전문가로 이인형 자본시장선임연구위원, 박래수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연태훈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한 원종현 위원, 한국금융투자협회 부부장인 이연임 위원 등 금융 전문가들도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금융 및 자본시장에 경험있는 전문위원이 늘어남에 따라 이전보다 시장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민해서 의결권 방향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SK와 두산그룹이 넘어야 할 산이 높다는 분석이다. SK그룹 측에선 이번 합병과 관련해 소액주주를 배려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해당 합병비율에 대해 "최대 주주인 최태원 회장 일가에는 이익이 되지만, 전체 주주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해 기관투자자들은 합병비율을 떠나 이번 합병의 명분이 ‘SK온 살리기’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국민연금은 과거 SK C&C와 SK 합병건에 반대한 전력이 있다.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는 판단에서다. 

    두산그룹의 경우 분할합병 발표가 난 직후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두산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12일부터 22일까지 7거래일 동안 두산밥캣 주식을 약 2000억원,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약 400억원을 팔아 치웠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밸류업 프로그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도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한 기관투자자는 “두산의 경우 합병비율도 문제지만,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 입장에선 자회사를 매각하는 것과 같은데 두산 총수 일가가 경영권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아무런 경영권 프리미엄 없이 매각하는 것이다”라며 “두산밥캣 소액주주들도 주식시장에서 공개매수를 했으면 프리미엄을 받았겠지만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을 택함에 따라 아무런 프리미엄 없이 주식을 교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국민연금도 이런 논란거리를 살펴볼 것으로 예상된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전문위원을 들어가면서 외국인 투자자등 시장의 움직임을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현 정부 및 정치권의 영향도 이들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나서서 주식시장 ‘밸류업’을 외치고 있고, 국회를 중심으로도 해당 아젠다를 누가 선도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중이다. 

    지난 23일에 진행된 ‘주주의 비례적이익과 밸류업 토론회’에선 민주당 의원 8명(박상현, 강준현, 강훈식, 김남근, 이정문, 유동수, 민병덕, 오기형)이나 참석했다. 해당 자리에는 대기업 대관 담당자들도 해당 행사를 모니터링 하기 위해서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기업들도 정치권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칫 'SK-두산 합병 방지법'이 생길까 전전긍긍 중이다. 실제 LG그룹과 카카오는 주주이익에 반하는 ‘쪼개기 상장’에 대표적인 그룹이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국민연금 수탁위도 이런 정치권 및 주주들의 반응을 살펴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의결권 자문기구들은 요청이 오지 않았지만, 선제적으로 해당 합병 안건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도 해당 사안이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 수탁위뿐 아니라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건처럼 국민연금 이사장까지도 의결권 행사에 고민이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서 크게 데인 이후 '재벌기업' 합병에 반대표를 행사하며 소액주주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번엔 정치권, 시민단체까지 가세해서 합병에 문제를 제기하는 만큼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더불어서 자본시장 및 시민단체들은 국민연금이 합병 반대뿐 아니라 회사를 상대로 소송 등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한 외국계 기관투자자는 “국민연금 의결권을 논하기전에 이사회에서 반대의견 표시가 없었다는 점이 더 문제다”라며 “국민연금이 한국의 거버넌스가 후진적으로 가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