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텐 채권자들, 투자금 전액 손실 우려…큐익스 활용해도 회수는 난항
입력 24.08.02 07:00
큐텐 문어발 확장 과정에서 숱한 투자자 참여
가치 사라진 티몬·위메프, 큐텐도 자금력 없어
현재로선 투자금 돌려받을 길 없다 비관론도
그나마 큐익스프레스는 사업가치 남아 있지만
이번 사태 영향 커지면 가치 회복 오래 걸릴 듯
  • 티몬·위메프 사태가 확산 일로다. 현재 미정산 금액이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이달 초 대금 지급일에 또 한번 파장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나서 수천억원 규모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지만 판매자와 고객의 피해는 불가피해 보인다. 티몬·위메프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가운데 다른 계열사로도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가장 희망적인 시나리오는 티몬과 위메프를 후한 값에 사주고 각종 채무를 갚아줄 수 있는 원매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쿠팡과 네이버 정도인데 이들은 하위 사업자 인수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 지분 일부를 중국 이머커스에 팔아 유동성을 확보할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티몬과 위메프 기업가치로는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거나 M&A에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상품과 상품권을 미리 팔아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사업 방식도 펼칠 수 없다. 결국 모회사 큐텐(Qoo10)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큐텐도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자회사의 빚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기존 투자자들 자금을 돌려주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다.

    큐텐 관련 투자자들은 대책을 마련해오라는 출자자(LP)들의 성화에 시달리고 있다. 티몬·위메프가 회생절차를 신청하며 당장 투자사와 LP가 돈을 더 대야 할 위험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회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일부 투자자의 경우 자금난에 사업을 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위기감도 고개를 들고 있다.

    큐텐은 2022년 티몬, 작년 인터파크와 위메프, 올해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와 애경그룹의 AK몰까지 잇따라 인수하며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폈다. 이 과정에서 거래 대금은 현금이 아니라 대부분 큐텐의 지분으로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주주가 섞이며 큐텐 지배구조가 복잡해졌다.

    지난 2015년 KKR과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그루폰(Groupon)으로부터 티몬 경영권 지분을 인수했다. 티몬의 시장 지위가 하락하자 추가로 자금을 투입하며 버텼고, 2021년 초 PS얼라이언스와 영국계 자산운용사 ICG(Intermediate Capital Group)로부터 3050억원 규모 유동성을 조달했다.

    PSA와 ICG는 티몬의 신주를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EB)에 투자했다. EB 만기는 3년이었는데 아직 상환이나 교환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티몬엔 돈이 없고 티몬 주식은 받아와도 큰 가치가 없는 상황이다.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사실상 자금을 되찾기 어렵지 않겠냐는 평가가 나온다. EB 투자 당시 수백억원을 재투자했던 KKR과 앵커PE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SK그룹은 작년 하반기부터 큐텐과 11번가 매각 협상을 진행했지만 실사 결과 이들 EB 투자자들의 자금을 돌려주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을 파악하고 협상 테이블을 접었다. 자칫 11번가를 매각한 후 큐텐이 도산하기라도 하면 다시 한번 돌이킬 수 없는 평판 위험이 생길 수 있다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채권자를 돕고 있는 M&A 자문업계 관계자는 "자금 회수 시나리오를 모색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답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위메프에 1200억원을 투자한 후 고전하다 큐텐의 손을 잡았다. 위메프 지분을 큐텐 측에 넘기고 거래 대금 대부분을 채권 형태로 받았다. 당시엔 '그래도 잘한 거래'란 평가가 있었는데 이번 사태로 자금 회수가 불투명해졌다. 구영배 큐텐 대표는 국회에서 최대 조달할 수 있는 유동성 규모가 800억원이라면서도 투입 가능성은 미지수라고 밝힌 바 있다.

    큐텐에 투자한 투자사들도 낙관할 상황이 아니다. 코스톤아시아는 2020년말 큐텐의 300억원 규모 EB를 인수했다. 최근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에 골프웨어 브랜드 '어메이징크리'를 매각해 주목받은 메티스톤파트너스는 큐텐의 우선주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 이들 투자사 역시 큐텐에 기대서는 사실상 자금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영배 대표는 정산에 썼어야 할 자금 일부를 M&A에 썼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코스톤아시아, IMM인베스트먼트, 메티스톤 등 큐텐 이사회에 들어간 채권자들이 견제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기도 한다.

    반대로는 M&A의 반대 급부로 얼결에 이사회에 참여한 것이라 구 대표를 견제하거나 거래 내용을 세세히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의견이 있다. 원래 없었던 돈을 돌리고 돌리다 사고가 난 것이기 때문에 구영배 대표나 큐텐을 쥐어짠들 유의미한 회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투자자들이 기댈 만한 곳은 물류회사 큐익스프레스다. 큐텐 계열사 중에서 그나마 실체적인 사업을 하고 있고, 계열사 물량이 20~30% 수준이라 계열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평가다. 큐익스프레스엔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 캑터스PE 등이 투자했다. 코스톤아시아는 EB를 큐텐홀딩스나 큐익스프레스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데 큐익스프레스 지분을 택하는 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상장(IPO)이나 M&A 기회를 보겠다는 것이다.

    큐익스프레스가 그나마 기업가치가 있지만 이번 사태를 해결할 카드가 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야놀자는 작년 큐텐에 인터파크커머스를 약 1900억원에 팔았는데 매각 대금 대부분을 아직 받지 못했고, 큐익스프레스 지분 일부를 담보로 잡고 있다. 큐텐이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동안 주주-권리 관계가 복잡해졌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애를 먹는 분위기다.

    큐익스프레스의 내부 거래가 많지 않다지만 결과적으로 실적은 꺾일 수밖에 없고, 이번 사태에 따른 평판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목표했던 조단위 상장은 쉽지 않고, 적당한 수준의 기업가치를 회복해 시장에 다시 나오는 데만도 수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른 자문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큐텐 다른 계열사로도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투자사들이 돈을 회수하기는 더 어려워지게 됐다"며 "그나마 기대할 만한 카드가 큐익스프레스인데 그나마도 상장이나 매각을 추진할 수 있는 시기는 한참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