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과징금ㆍ파페치 손실 선반영해 적자 기록한 쿠팡…당국 눈치 보느라?
입력 24.08.09 17:01|수정 24.08.12 11:35
8분기 만에 적자전환…매출은 첫 10조원 돌파해
공정위 1600억원대 과징금 선반영·파페치 영향
다소 이른 반영에…당국에 '적자 기업' 메시지?
티메프 사태로 당국 움직임 촉각…'앓는 소리' 해석도
쿠팡, "美 회계기준 의무…의도적 선반영 아니다"
  • 쿠팡이 올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8분기만에 적자 전환을 기록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는데 추정치를 재무제표에 지금 반영한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과징금 반영이 이른 것 아니냐고 느끼는 분위기다. 이러다보니 이를 쿠팡의 '계획된 적자'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티몬·위메프 사태를 비롯해 이커머스 업황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규제 당국을 향한 '앓는 소리'를 하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쿠팡은 이에 대해 "미국 회계기준에 따라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사항이며 회사가 다른 의도가 있거나 선제적으로 적자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7일(현지시간) 쿠팡에 따르면 올해 2분기 8분기 만에 적자전환했다. 2500만달러(34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쿠팡은 작년 2분기에는 1억4764만달러(194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었다. 

    이번 2분기 쿠팡 매출은 73억2300만달러(10조357억원)로 작년 동기 대비 30% 증가, 분기 매출 10조원대를 처음 돌파했다. 자회사인 명품 플랫폼 파페치(Farfetch)의 2분기 매출은 6304억원이며 이를 제외한 쿠팡 매출은 9조4053억원으로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매출은 양호했지만 공정위가 물린 과징금 추정치를 쿠팡이 지금 반영하면서 영업적자가 기록됐다. 

    쿠팡은 검색순위와 상품후기를 조작한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이에 쿠팡은 2분기 '판매관리비' 부문에 과징금 추정액 1630억원(1억2100만달러)을 반영했다. 파페치의 영업손실 424억원(3100만달러)도 함께 반영했다. 이 둘을 제외하면 이번 분기 지배주주 순이익은 적자가 아닌, 1699억원(1억2400만달러)흑자로 돌아선다. 

    쿠팡은 "미국 증시에 상장한 기업이라 실제 비용 지출 이전이라도 사건 발생 혹은 공표된 시점의 비용을 미리 실적에 반영하는 '발생주의'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시장과 투자업계의 반응은 다소 냉소적이다. 쿠팡의 적자에 암암리에 '의도'(?)가 있는것 아니냐고 해석이 나온다.  

    사실 쿠팡은 1분기에도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나고 7개 분기 만에 순손실을 냈다. 하지만 1분기에도 분기 매출액이 사상 처음 9조원을 돌파하는 등 매출 증가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중국 이커머스인 'C커머스' 공세 영향, 파페치 인수 영향이 언급됐지만 사실상 매출은 견조했던 셈이다. 

    지난 1월 인수한 파페치 영향이 상반기 내 반영되고 있는데, 외부 우려와 달리 쿠팡 내부에서는 파페치 관련해서 연내 목표치 달성 등 수익성 개선에 대한 기대가 유효한 분위기로 전해진다. 

    거랍 아난드 쿠팡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파페치와 관한 구조조정 비용, 한국 공정위의 과징금 추정치가 반영됐음에도 비즈니스의 근본적인 성장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는 매출 총이익"이라며 "2분기에 전년 대비 40% 이상 성장한 21억달러 이상의 매출 총이익과 29.3%의 이익률을 기록하며 기록적인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쿠팡의 성장세는 앞으로도 유효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지금은 쿠팡도 적자다'라는 신호가 나온 것. 이러니 당국을 향해 보내는 '호소'(?)로 풀이하는 해석이 나오는 분위기다. 정부 눈초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호실적이 이어지는 것이 쿠팡 측에 유리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의미다.  

    지금 쿠팡에 대한 대외적인 시선은 그리 우호적이지 못하다. 

    국내 1위 온라인 쇼핑몰 지위를 지니면서 자사 상품을 밀어주겠다고 순위조작을 벌이다가 들통나 검찰에 고발됐다. 1차로 잠정부과된 1400억원은 2019년~2023년 7월까지 위법행위가 대상이다. 

    이후로도 쿠팡은 상품검색 조작과 임직원 후기조작을 이어왔고, 이에 공정위는 과징금 추청치를 1630억원으로 늘렸다. 잠정부과 기간부터 공정위 심의까지의 기간동안 불법 행위에 대한 과징금 228억원을 늘렸다. 해당 금액은 국내 유통업계, 단일 기업 과징금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쿠팡은 이번 과징금 부과에 공정위를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대형 로펌들을 선임했다. 또 법원에 공정위 시정명령에 대한 효력을 일시 정지시켜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낼 계획이다. 

    행정소송엔 통상 2년 정도가 소요되고 최종 과징금 규모는 그때 결정될 수 있다. 법원의 판단을 받은 이후에도 쿠팡의 위법이 확정될 경우. 향후 미국 기관투자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회와 정치권의 시선도 고민거리가 될 전망이다. 정치권은 티몬·위메프 사태를 계기로 전자상거래 플랫폼 업체의 대금 정산 기간을 '구매 확정일로부터 5일 이내'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쿠팡도 예외가 아닌데, 쿠팡 역시 정산주기가 15영업일로 긴 편이다. 입법과정에서 정산일이 짧아지면 유동성 문제 등의 여파가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플랫폼업체와 거래한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티몬·위메프에서 끝날지도 아니면 다른 업체들로도 이어질지는 미지수. 

    이런 상황에서는 '흑자기업' 보다는 '적자기업' 이미지가 평판관리는 물론, 이커머스 규제 강화움직임에 대응하기에는 적절하고 편리하지 않겠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어찌보면 쿠팡의 과징금 반영은 당국과 정치권에 밉보이지 않기 위한 움직임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며 "현재 입법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을 향해서 '저희도 과징금 맞아서 적자를 보고 있어요'라며 앓는 소리를 낼 수 있을 건데, 그와 별개로 다음 분기에는 부담 없이 실적 V자 반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라고 해석했다. 

    다만 쿠팡은 이런 해석을 정면 부인한다. 어디까지나 미국 회계기준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해야 하는 적자반영이며, 당국 또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거나 어떤 계획이 있어 선제적이거나 의도적으로 반영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입장이다.  

    쿠팡은 "당사는 미국 자본시장(NYSE)에 상장된 회사로서, 미국 회계기준(US GAAP) ASC 450-20-25-2 규정의 “발생주의”에 따라 사건 발생 또는 공표된 시점의 비용을 적시에 반영해야 한다"라며 "공정위 과징금 추정치를 회계기준 반영시점보다 의도적 또는 선제적으로 반영했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이러한 조치는 관련 규정에 맞춰 당연히 회사가 지켜야 할 의무다"라고 입장을 밝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