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여부 설문조사 하는 셀트리온…책임은 주주에게 전가?
입력 24.08.09 07:00
취재노트
합병 전 주주 의견 청취 "국내 최초"
"주주친화적" vs "그룹 책임 회피"
서 회장의 반복된 '번복'도 주주에겐 고민
  • 셀트리온은 주주와 '약속'한 대로 셀트리온헬스케어와의 1차 합병을 마무리하고 셀트리온제약과 2차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 합병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설문조사로 주주의 의견을 묻고 있는데, 주요 결정의 책임을 주주에 전가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셀트리온그룹은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 합병 타당성 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셀트리온그룹은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오는 12일까지 주주의 의견을 묻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셀트리온그룹은 '바이오 의약품 사업을 영위하는 셀트리온과 케미컬 의약품 사업을 영위하는 셀트리온제약 합병을 통해 글로벌 종합 생명공학 회사로 발돋움'하겠다고 합병 목적을 밝히고 있다.

    설문 참가 대상은 지난 6월 30일 기준 주주명부에 등재된 국내외 기관투자자 및 개인투자자다. 대주주인 서정진 회장과 셀트리온홀딩스는 제외됐으며 이들은 설문조사 종료 이후 다수결에 따라 의견을 제시할 계획이다.

    셀트리온 주주의 경우 설문조사에서 합병 찬성·반대·기권 중 하나의 선택지를 고르면 해당 결정을 한 이유를 선택해야 한다. 아울러 '주주가 기대하는 셀트리온제약과의 합병이 완료된 통합 셀트리온의 모습(찬성 시)' 또는 '셀트리온제약과의 합병을 위해 필요한 선결조건(반대 시)' 관련해 객관식 의견을 제출한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의 잠정 합병 비율은 지난 7월 30일을 기준으로 1대0.4901513으로 정해졌다. 각 사의 합병 기준 주가는 셀트리온 20만1297원, 셀트리온제약 9만8666원이다. 이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은 셀트리온 19만4455원, 셀트리온제약 9만6328원이다.

    주주 의견 청취와 더불어 셀트리온그룹은 합병 추진 여부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셀트리온에 따르면 특별위원회는 독립·객관적으로 설문 결과를 반영해 합병 타당성을 검토하고, 셀트리온그룹은 주주 의견과 특별위원회의 검토 결과를 반영해 합병 추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합병 진행이 결정되면 2단계 특별위원회를 발족해 본격적인 합병 검토를 할 예정이다.

    합병 전 주주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의사결정에 참고하는 것은 국내 최초다. 셀트리온은 "그동안 노력해 온 바와 같이 주주친화적인 기업문화를 유지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

  • 셀트리온그룹의 주주친화적인 모습을 두고 시장에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최종 합병에 따른 기대효과와 위험요소에 확신이 없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앞서 셀트리온이 셀트리온헬스케어와의 1차 합병 당시에는 사전 의견 청취 단계를 거치지 않고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해 합병안을 지난 10월 승인했다. 오히려 당시 개인주주 지분율은 셀트리온 66.3%, 셀트리온헬스케어 59.7%로 현 합병 대상인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보다 더 높았다. 올해 2분기 기준 셀트리온의 개인주주 지분율은 35.1%(국내외 기관투자자 포함 시 67.4%), 셀트리온제약은 32.4%(44.7%)다. 1차 합병 때보다 개인주주 지분율이 더 낮음에도 개미들 의견을 더 신경쓰는 모습이다.

    결국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책임을 주주에게 전가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 합병과 같은 주요 의사결정은 의사회가 주도적으로 책임질 문제다. 주주들이 주총에서 이사회를 선임하는 것은 전문성을 가진 이사가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대신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주들은 이사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회사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의사결정 전 회사가 주주의 의견을 묻는 게 언뜻 주주친화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회사 정보에 접근 권한이 떨어지는 일반 주주는 치밀하게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다. 회사가 밝힌 대로 합병 진행이 결정되면 본격 합병 검토를 위해 다시 특별위원회를 발족한다.

    그동안 서정진 회장이 제시한 미래 비전 다수가 현실화하지 못한 점도 이번 합병 작업을 앞두고 주주들의 의심이 생기는 이유로 꼽힌다.

    지난 2023년 서정진 회장이 당해 3분기 대규모 M&A 계획을 발표했지만, 미국 박스터인터내셔널의 CMO 사업부 인수 철회를 이후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서정진 회장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경영철학을 내세운다. 연초 서정진 회장의 장남 서진석 이사회 공동의장은 합병 법인 출범 직후 각자 대표로 선임됐으며, JP모건 헬스케어컨퍼런스에서 서정진 회장과 서진석 대표는 나란히 무대에 섰다. 현재 서정진 회장은 셀트리온홀딩스를 나스닥에 상장시킨 이후 이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100조원 규모의 헬스케어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특정 주주가 손해를 보지 않게 공정하게 구조를 짜야 하는 책임은 회사에 있지만, 회사는 설문조사로 주주에 책임을 넘기는 모습을 보인다"며 "보여주기식 행보로 비칠 가능성에 '셀트리온은 작년에 약속한 합병 계획을 무르기도 애매하고, 진행하기에도 실효성이 애매한 게 아닐까'라는 평가도 나온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