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밥캣 문제 아냐"…에너빌리티 매수청구에 달린 두산그룹 구조개편
입력 24.08.14 11:16|수정 24.08.14 11:16
분할합병 반대주주 내달 10일부터 통지
두산에너빌리티 매수한도 6000억원이 관건
현 주가 수준에선 매수청구 쏟아질 수도
남은 한달 주가 추이가 성패 가를 듯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도 주목해야
  •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성공하기 위해선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주주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주들이 분할합병에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기간이 한 달여 남았는데 이 기간 동안 주가 추이에 따라 지배구조 개편의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현 시점의 주가 수준에선 성공을 장담하긴 어렵다는 평가다.

    주주와 금융단체 그리고 금융당국 수장까지 두산그룹 분할합병에 대한 명분과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두산그룹은 일단 분할합병을 지속할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나서 "증권신고서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혔고 최근엔 "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들여다 보겠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금융당국이 두산그룹 지배구조개편에 제동을 걸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에 두산이 원안을 강행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첫번째 과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내달 10일 주주들로부터 분할합병 반대의사를 접수하고, 25일 주주총회에서 분할합병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한은 주총 이후부터 10월 15일까지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6000억원을 초과할 경우 분할합병 진행 여부를 결정하고 철회를 검토할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측이 정한 주식매수예정 가격은 2만890원이다. 현재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가 1만8200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매수예정 가격이 약 15% 높다. 회사 측에 주식 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주주는 이사회 결의일인 지난 7월 11일까지 주식을 취득한 주주에 한정한다.

    지난 1년여간 두산에너빌리티 주가의 최저가는 1만3350원, 최고가는 원전 수주를 발표한 지난달 2만5000원이었다. 정부의 원전사업 중단 정책으로 그룹이 위기에 처했을 당시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는 2000원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를 고려하면 장기 투자자 일부를 제외한 상당수의 주주들이 회사측의 매수예정가(2만890원)에 못미치는 평단가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주 상당수는 주식매수를 청구한다면 일정 수준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다. 

    현재 두산에너빌리티의 최대 주주는 30.7%를 보유한 ㈜두산이다. 국민연금이 약 6.8%를 보유한 2대주주다. 소액주주의 비율은 63%이다. 주식 매수예정가를 기준으로 국민연금(약 4342만주)이 약 9000억원, 소액주주(약 4억617만주)가 약 8조5000원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보유 주식 전량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하거나, 소액주주 가운데 8%가량이 반대표를 행사한다면 분할합병 계획을 재검토할 조건이 갖춰진다. 2014년 삼성중공업과 합병을 시도했던 삼성엔지니어링은 당초 4100억원의 주식매수대금 한도를 설정했으나 7000억원이 넘는 매수청구가 접수되며 합병 계획을 철회한 전례가 있다. 물론 한도가 넘더라도 강행할 가능성이 있지만, 분할합병을 통한 그룹의 실익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선택도 주목된다. 두산그룹을 향한 금융당국의 강경한 메시지가 발표된 가운데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행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국민연금은 직접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해선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고, 위탁운용사들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선 의결권을 위임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사안 또는 사회적 논란이 예상되는 자본시장의 거래들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의결권 행사 방향을 일임해 보유주식 전량에 대해 일관성있는 표결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번 사안의 경우 아직까진 개별 위탁운용사에 지침을 전달하진 않았고 수탁위 논의에 부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국회에선 올해 국정감사에서 두산그룹 오너 또는 주요 경영진들에 대한 증인 소환 및 질의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개원 이후 첫 국감이고 다수의 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단 명분까지 얹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일부 국회의원들의 다소 거친 발언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국민연금 역시 올해 국정감사 화두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결권 향방에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선 국민연금 측에서 수탁위를 열고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예상한다"며 "합병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없다하더라도, 합병 비율 논란이 정치권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을 갖고 논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변수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가 급등하는 상황이다. 현재 주가가 주식매수예정가(2만890원)를 크게 넘는다면 주주들이 주식 매수를 청구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사라진다. 두산에너빌리티 측에선 가장 이상적인 상황인 셈이다. 현 주가가 주식매수예정가를 넘어서지 않고 매수예정가 근처에 머문다면 일부 주주들은 매수청구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는 장외거래로 분류돼 양도세(약 20%)가 부과해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두산밥캣을 떼어내더라도 두산에너빌리티의 성장세를 높게 평가하는 주주들이 매수청구 대신 주식 보유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밥캣을 떼낸 이후 두산에너빌리티의 재무상황이 호전할 것이란 확신과 자체사업만으로 성장세를 나타낼 수 있단 기대감을 가진 주주가 얼마나 될진 예단하기 어렵단 평가도 있다.

    국내 운용사 주식운용 담당 한 관계자는 "주가가 현재 수준에선 주식매수청구를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두산에너빌리티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때 실익이 명확하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의 동의가 있다하더라도 두산밥캣이란 산이 또 남아있다. 두산밥캣의 경우엔 매수청구 한도가 1조5000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현재 두산밥캣의 최대주주는 두산에너빌리티(46%)이고 국민연금 7%, 소액주주 45% 등으로 구성돼 있다. 

    두산밥캣은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분할한 이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을 계획중이다. 이에 반대하는 주주들 역시 다음달 반대의사 통지하고, 주총 이후(9월25일)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회사의 주식매수예정가격은 5만459원, 현재주가는 3만8000원 수준이다. 괴리율은 약 30%이다.

    두산밥캣은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들로 구성돼 있다. 국민연금이 보유주식 전량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하더라도 주식매수 한도(1조5000억원)에는 못미치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방향에 따라 성패가 판가름 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