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합병, 관건은 "SK온 못믿겠다"는 기관들 주식매수청구권
입력 24.08.27 09:54|수정 24.08.27 10:40
27일 주주총회…그룹 우호지분 많아 합병안 통과 유력
이날부터 매수청구 나설 주주들…주가 반등에 회의론
"SK온 실적이 곧 모멘텀…합병법인도 시총 짓눌릴 수 있어"
초반부터 매수청구 쏟아질까…국민연금 행보에 주목
  •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이 27일 임시 주주총회로 확정된다. 양사 합병을 두고 국내 및 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이 엇갈려 왔으나 그룹 우호지분이 많아 합병안 자체는 통과될 전망이다.

    향후 관건은 역시 이날부터 시작될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다. 판단의 핵심은 자회사인 SK온의 실적 개선 여부다. 회복이 쉽지 않은 시점에서 SK이노베이션의 주가 뿐만 아니라 향후 합병법인의 시가총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감안해 기관투자자(이하 기관)들은 매수청구 행사 여부를 검토하는 분위기다.

    이날부터 9월19일까지 SK이노베이션의 합병에 반대 의사를 통지한 주주들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통상 분할, 합병 등 이사회 결의 내용에 반대하는 주주들은 주총 전 서면 방식으로 결의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통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확보한다.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그 수량만큼은 주총에서 권리행사를 할 수 없다.

    문제는 SK이노베이션의 주가가 오랫동안 부진한 흐름을 보여왔다는 점이다. 2023년 18만원대까지 올랐던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10만원대로 떨어졌다. 배터리 자회사인 SK온 물적분할에 더해 SK온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주가가 꾸준히 하락했다.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접어든 점도 주가 반등 가능성을 짓누르는 원인으로 꼽힌다.

    이렇다보니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이 기한 내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많다. 매수예정가(11만1943원)보다 주가가 낮을 경우 주주들은 차익실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 매수청구권 행사 시기에 대한 관심도 높다. 통상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는 주가 추이를 살피다가 막바지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일각에선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를 초기에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SK이노베이션의 주가 상승 모멘텀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기관투자자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가 합병할 경우 시가총액이 증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놓긴 했지만 합병 이후 SK온의 실적 부진이 합병법인의 시가총액을 짓누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관투자자는 "합병법인의 주가 반등 또한 SK온의 실적이 좌우할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 사업은 국제유가 및 정제마진 하락 영향을 받는다. SK E&S의 주력사업인 도시가스 사업은 현금 창출 측면에서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성장 업사이드는 제한적이다"라며 "결국 SK온의 성장성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SK그룹에 대한 신뢰도 또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 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간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유상증자에 직접 나서거나 SK온이 직접 여러차례 투자유치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해당 사업부문을 목표한 만큼 키워내지 못한 부분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3분기 SK온의 실적이 크게 반등할 경우 주가 상승 모멘텀이 있을 것이라고 보여지나 기대감이 크진 않다"라며 "핵심 고객사인 포드(Ford)는 전기차 생산 계획의 속도를 조절하는 중이고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판매량이 감소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SK온의 3분기 실적은 9월말에서 10월초에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SK이노베이션 측은 "해외 기관들이 합병안을 두고 찬성 의견을 밝힌 것은 합병 이후 미래 비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라며 "주식매수청구권을 초기에 행사할 경우 주가 반등시 손실을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행사가능 기간 초기에 매수청구를 진행할 주주는 많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8000억원(발행주식의 약 7.4%) 규모의 한도를 설정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한도를 넘어서면 합병 계약을 해제하거나 조건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분 6.2%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보유지분 전체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다만 지금으로선 국민연금이 보유지분 일부에 대해서만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등 합병 절차 자체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평가도 많다. 다만 매수청구권 행사에 따라 급증할 자사주 처분 방식에 대해서는 셈법이 복잡해질 수 있다.

    한 기관투자자는 "과거 지주회사 롯데홀딩스가 출범할 당시 롯데그룹 측에서 주식매수청구권만 행사하고 주총에는 불참하는 안을 기관들에 제안한 적이 있었다"라며 "매수청구권을 수용하더라도 이사회 의결 내용을 강력 추진하기 위함이라고 풀이됐었다. SK이노베이션 또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여부가 관심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