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대출정책에도 따라가야 하는...그 정부에 그 은행들
입력 24.09.06 10:53|수정 24.09.06 10:53
Invest Column
  • “아직 2년반이나 남았다”

    시장 관계자들을 만나면 내뱉는 한숨과 함께 들리는 얘기다. 정부의 은행권 가계대출 관리 행보를 보면 갈지(之)자 행보와 엇박자에 어지러울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그 어지러움을 앞으로 2년반 더 참아야 할 것 같다고 체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7월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무리한 대출 확대로 가계부채가 악화”했다고 한 마디하고 금감원이 “은행권 가계대출 현장 점검하겠다”고 하자 은행들은 줄줄이 가계대출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다. 5대 은행이 총 22차례 금리를 인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8월말이 되자 이 원장은 돌연 “금리 인상은 정부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 마디 하자 은행권들은 또 줄줄이 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5대 은행이 내놓은 대출 축소 대책만 3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은행들이 금감원장 말 한마디에 가계대출의 문을 닫아버리자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했다. 그러자 또 다시 판이 달라질 모양새가 됐다. 이 원장은 “가계대출 대책도 금감원과 공감대가 없었다”며 은행권을 지적했고, 추석 전에 은행장들을 만나겠다고 했다. 추석 이후에 은행들은 또 어떤 정책들을 쏟아내줘야만 할까.

    이를 두고 대통령실, 기획재정부 등 여타 유관부서에선 특별한 코멘트도 내놓지 않고 있다. 관심이 없는건지, 아니면 이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든지. 국민 전체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금리와 대출 문제를 이복현 원장 혼자 좌지우지하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이에 앞으로 검찰 출신이 대통령이나 행정부처장에 앉히는 건 안되겠다는 얘기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게 항상 최선이고, 그게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념 하에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선 그냥 밀어붙이고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 방향을 틀 수도 있다. 금융정책 말고도 밀어붙이는 정책들을 보면 그렇지 않나”라는 얘길 들으면 아니라고 반론하기 어렵다.

    이 정부가 기치로 내걸었던 ‘자유시장경제’는 시장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의 말을 잘 들으면 저절로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금융시장의 주요 플레이어인 은행들은 과연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은행권 몇몇에선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실패 책임을 은행권에 떠넘기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시장 상황 자체가 부동산, 특히 서울 아파트 시장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데 대출 수요를 억누르기 위해 은행들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실상 많지 않다고 한다. 금리는 높이고 대출을 줄였는데 비판만 받고 있다고 억울해 한다. ‘관치 금융’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데 또 누구보다 이복현 원장 한 마디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또 은행권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다. 

    궁극적으로 금리를 올리면 수익성을 올릴 수 있고, 가계대출을 줄이면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은행권은 “또 최고 분기 수익”이라는, 당국과 여론에는 달갑지 않은 실적을 거두게 된다. 누구 하나 필살기를 발휘한 게 아니라 당국이 하라는 대로 해서 돈을 벌게 되는 꼴이니 눈치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당국의 한 마디에 가장 빨리 액션을 하는 은행들은 하나하나 사연(?)들이 있다. 시장에서 하는 말로는 여러여러 이유로 우리금융이 열심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과 보험사 M&A 등 검찰과 금융당국에 얽힐 일이 가장 많다. KB금융은 ELS 사태, 신한금융은 라임펀드 등 역시나 ‘원죄’가 있다. 상대적(?)으로 최근 이슈가 없는 하나금융이 가장 여유가 있다는 평도 나온다.

    은행들이 ‘관치’에 제발저려 돈줄을 막아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인사 시즌이 곧 다가오기 때문이다. 올해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주요 금융지주•은행 최고경영자(CEO) 임기가 대거 만료된다. 오는 12월에만 5대 은행장의 임기가 일제히 끝난다.

    오너가 없는 금융그룹 특성상 내부적으로는 어떤 ‘라인’을 타는지가, 외부적으로는 정부 또는 당국의 눈치밥을 먹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런 타이밍에 가계대출 얘기가 나왔으니 지금 같은 상황이 될 거라는 건 이미 예견된 결과다. 후진적인 정부와 후진적인 금융그룹, 누가 누구 탓을 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복기하자면 이런 상황을 앞으로 2년 반 더 봐야 한다는 거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건 또 없다. 이번 정부에서만 그랬던 일도 아니다. 그러니 ‘그 정부에 그 은행들’은 시즌제로 재생산된다. 정부와 금융권의 이 양태를 지켜봐야 하는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숨이 턱턱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