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손해본 거래에 '성과급 달라' 내용증명 보낸 대표이사, 지급한 KB증권
입력 24.09.10 07:00
2008년 손실 브릿지론, NPL 편입 후 2020년 수익 인식
내용증명 통해 6개월 채무시효 중지 후 올 3월 성과급 지급
"당시 본부장이 현직 대표 아니었다면 성과급 지급했겠나"
성과급 시효 관련 '안 좋은 선례' 지적...소송 잇따를수도
  • KB증권이 올 상반기 김성현 대표이사 등에 지급한 성과급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16년 전 손실을 기록한 거래에 대해 현직 대표이사가 '회수 노력을 통해 수익으로 전환됐으니 성과급을 지급하고, 적법한 지급을 위해 6개월간 채무시효를 정지하라'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이에 회사가 수 억원의 성과급을 실제 지급한 것이다.

    KB증권은 적법한 절차 및 신중한 검토를 거쳐 성과급을 지급했으며, 회수 노력을 다한 실무자들의 공로를 인정한 '모범 사례'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성과급 지급 시효 인식과는 크게 동떨어진 결정인데다, 이번 사례가 KB금융그룹 및 증권업계 전체적으로 향후 성과급 관련 분쟁을 촉발할 수 있는 '전례'가 됐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KB증권은 지난 3월 김성현 대표이사 및 심재송 전무 등 7명의 임직원에게 특정 거래 관련 성과급을 지급했다. 해당 성과급은 '과거 성과의 2023년 지급 확정분'이라는 부연이 붙었다. 16년 전인 2008년 진행된 거래와 관련된 성과급이었던 까닭이다.

    업계에는 전체 지급 규모가 20억원 안팎이며, 이 중 김성현 대표가 4억원 가량을 수령한 것으로 업계에는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KB증권은 "김성현 대표의 수령액은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의거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과급을 준 근거가 된 16년전의 거래는 부동산금융 관련 브릿지론이다. 당시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인해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한이익 상실로 '원금 손실'을 기록했다. 당시 해당 딜을 주관한 기업금융본부의 본부장이 현 김성현 대표이사였다. 

    이후 기업금융본부는 해당 자산을 부실채권(NPL) 자산으로 편입하고, 이후 4년6개월간 부서 영업이익으로 이를 벌충했다.

    이 자산은 나중에 정상화되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KB증권은 이를 2020년 하반기에 수익으로 인식했다. 이후 KB증권은 3년간 성과급 지급 대상자 확정 등 법률 검토를 진행했고, 2023년 대상자를 확정해 최종적으로 올해 상반기 성과급을 지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 등 임직원 7명은 수익 인식 시점과 성과급 지급 시점 사이 6개월간의 공백을 메울 수단으로 내용증명을 선택했다. 내용증명을 통해 '정기 성과급 지급 시기까지 채무 시효를 정지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임금 채무는 일반적으로 수익 인식 시점부터 3년까지만 유효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2020년 하반기 인식한 수익을 2024년 상반기 성과급으로 지급받을 수 없다.

    이에 대해 KB증권은 "정상적 성과급 지급을 위해 내용증명으로 6개월간 임금채권 소멸시효를 정지한 것"이라며 "회사와 상호 협의 하에 요식행위로서 내용증명 우편이라는 간이한 최고(催告) 방식을 선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법률검토 결과 성과급 지급대상 임직원 7명 전원의 의사표시가 있어야 효력이 발생하므로, 당시 본부장이었던 김성현 대표이사가 포함될 수 밖에 없었다"며 "손실에 대해 해당 임직원이 수년간 벌충 책임을 부담 하고, 적극적 회수 노력에 따라 사후 이익이 발생하여 그에 대해 성과급을 지급한 성과보상 모범 사례"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증권가는 물론, 금융권 전체로 봐도 극히 희소하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손실이 확정돼 NPL로 편입한 자산'에 대해 "12년 후 수익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16년 후 성과급을 지급하는 게 합리적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게다가 이를 결정한 대표이사가 '셀프 성과급'의 대상자가 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수익 인식 시점 이후 법률 검토에 3년이나 걸렸다는 점, 내용증명을 통해 임금 채무 소멸 시효를 6개월 정지키로 합의한 점 등에서 일반적인 사례라고 보긴 어렵다"며 "당시 해당 거래건을 담당한 본부장이 현직 대표이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성과급은 회사와 개인 사이의 계약에 따른 것으로, 성과급 지급 발생 의무 역시 수익 인식 시점에 따라 달렸다. 이 때문에 KB증권의 성과급 지급에 법적인 문제를 제기하긴 힘들 거란 평가가 있다.

    다만 이 같은 사례를 '일반화'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이슈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데 특정 거래의 손실 인식 시점에 퇴사한 전직 임직원이 '해당 자산이 현 시점에서는 수익이 났을 것이므로, 이를 현 시점에서 평가 및 인식해 본인에게 밀린 성과급을 당장 지급하라'라는 소송을 제기했을 경우, KB증권이 이에 대응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 인사 업무 전문가는 "임금 및 성과급 관련 문제는 노동관련법 및 유권해석이 존재하는 영역을 제외하면 상호 합의에 달린 부분이 많은데, 일반적인 인식을 훌쩍 넘어서는 '전례'가 생겼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 같다"며 "적어도 KB금융그룹 계열사 및 같은 증권업종 내에서는 비슷한 사례에 대해 '나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소송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성과급 지급 사항은 모회사인 KB금융지주와 양종희 회장 역시 인지하고 있는 상황으로 파악된다. 다만 KB증권은 김성현 대표에게 지급된 성과급과 관련, "양종희 회장에게 보고가 되어야 할 사항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번 성과급은 부실화된 자산의 회수 사례에 적절한 보상을 지급해,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고취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다만 이 같은 의사결정이 향후 불러올 파장과과 다른 KB금융 계열사 임직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그룹의 이익 규모가 축소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고민이 부족했던 것 아니겠느냐는 평가도 함께 제기된다.

    KB증권은 "성과급 지급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으며, 이번 사례 역시 '동일한 기준'에 따라 성과급이 지급된 사례"라며 "우수직원 리텐션(유지)과 및 손실 책임 강화를 위해 앞으로도 현 성과급 제도를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