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는 왜 위험한 싸움을 시작했을까?
입력 24.09.23 07:00
Invest Column
  •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이번엔 고려아연이다. 현행법과 '국민 정서법(?)'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거래의 결과를 기다리는 주체들의 궁금증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MBK는 대체 왜 이런 위험한 싸움을 시작했을까?"

    ◇ 해외기관들 "동북아시아 초대형 펀드의 효용 가치 따지기 시작"

    해외 펀드레이징 환경이 과거와 같지 않다. 미ㆍ중 갈등 속에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아시아 펀드에 대한 출자 기조는 점점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동북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MBK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히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MBK에 새로운 투자 테마와 성장 동력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MBK는 지난해부터 6호 펀드의 자금모집을 시작했다. 8조원 규모의 5호 펀드와 유사한 수준 또는 그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MBK는 중국과 한국, 일본을 대상으로 투자하고 해외 각국의 기관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펀드를 결성한다.

    6호 펀드엔 중국 외환투자공사(CIC) 등 중국계 자본이 일부 투입돼 있지만, 사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내 주요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들로서는 중국투자 리스크라는 '변수'가 이미 '상수'로 변해버린 상황.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금을 투자할 지 여부가 관건이 됐다. 회의론(?)까지는 아니더라도 8조~1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펀드의 효용가치에 대한 해외LP들의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K의 최근 행보가 국내 중소형 출자사업에까지 이어진 것도 이런 요인들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MBK로서는 중국을 제외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투자 성과를 만들어내 '가치'를 증명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 됐다. 이제는 새롭고 공격적인 형태의 투자를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한 상황이란 의미다. 

    ◇ 김병주 회장과 파트너들이 마련한 돌파구…몸풀기는 끝, 이제부턴 본게임

    이번 고려아연 인수 시도는 김병주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 등 MBK의 핵심 인사들의 의사결정을 통한 이른바 '본 게임'으로 평가 받는다. MBK의 투자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거래이자 정체성을 재확립할 수 있는 거래란 점에서 LP들의 관심도 쏠려있다.

    실패로 끝난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인수는 부제훈 부회장이 이끄는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SSF)가 주도했지만 이번엔 본 펀드에서 직접 나섰다. MBK도 이번 고러아연의 공개매수는 자신들의 주력상품인 '바이아웃 거래'임을 거듭 강조하는 분위기다.

    SSF의 투자 실패와, 본펀드의 혹시 모를 투자 실패가 MBK라는 이름에 미칠 평판 리스크는 차원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 본 펀드를 통해 이 같은 시도에 나선 것은 LP들에게 MBK의 투자 확장성을 각인시킴과 동시에 한국에서도 새로운 투자 전략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 "MBK만이 할 수 있는 거래" VS. "PEF 업계 전반에 부담"

    동종업계에서 이번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공개매수와 경영권 확보 전략은 미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에선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거래들이다. 하지만 오너 경영 기조가 뿌리깊은 우리나라에선 쉽게 보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기업 또는 오너와의 관계, 네트워크와 트랙 레코드로 한국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하는 국내 운용사들은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전략임에는 분명하다.

    국내 대형사 PEF (A) 대표급 관계자는 "(MBK와) 유사한 방식의 거래들을 우리도 검토했지만 실제로 투자까지 이어지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사실상 외국계 자본으로 구성된 MBK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래이자, 마이클(김병주) 회장이기 때문에 추진할 수 있는 거래로 본다"고 평가했다. 결국 출자기관 또는 대기업의 눈치를 덜 볼 수 있는 외국계 자본으로 구성된 운용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래라는 것이다.

    다른 한 PEF (B) 대표는 "재벌 기업들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지만 언제든 (사모펀드가) 반대편에 설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으로 본다"며 "MBK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내 PEF(C) 한 대표는 "MBK가 이번 거래에 성공한다면 오너가 낮은 지분율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기업을 타깃으로 한 유사한 투자 전략이 늘어날 수 있다"며 "물론 당분간은 해외 운용사들에 국한해 이같은 거래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걱정스러운 시선도 제기된다. 또 다른 대형 PEF(D) 대표급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고, 역할론이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게 되면 PEF 운용사들은 물론 국내 기관투자자들에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을 조성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기대 수익 맞먹는 평판 리스크 감수…변수를 얼마나 예상했고, 감당 가능할까?

    이번 거래를 두고 상대진영과 외부에서의 반발과 대응은 꽤나 거친 상황이다. MBK로서는 이 정도 반향까지 감내할 계획이었는지는 미지수. 

    평판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고 이미 시작된 정치권의 공세를 버텨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사모펀드를 우군으로 여기는 기업들도 많겠으나 외부의 공세에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기업들의 위기 의식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은 MBK와 다른 사모펀드 운용사들에는 직간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변수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국정감사를 한달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된 정치권의 공세, 100년 기업도 지배구조개편을 단숨에 포기하게 만드는 정부와 감독당국의 영향력 발휘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타이어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기간산업이 그 타깃이란 점은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기도 하다. 재벌기업 중심으로 움직이는 재계에 감히(?) 맞선 MBK가 과연 '덜사악한 사람들(The Lesser Evil)'으로 평가받을지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