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언제 하나"…정말 만사(萬事) 돼버린 기업 인사(人事)
입력 24.09.24 07:00
취재노트
  • 기업 인사 시즌이 시작됐다. 일찌감치 사장단 인사를 마친 곳도 있고, 이제 곧 발표를 하려는 곳들도 있다. 12월 연말 인사가 대세였던 적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 시기가 추석 이후 10월로 자리잡는가 했는데 이제 그마저도 앞당겨지는 느낌이다.

    그 취지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과거처럼 12월 연말 인사를 하게 되면 당장 1월2일 시무식 이후에 이전 수장이 꾸렸던 조직과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건 고사하고 첫걸음부터 떼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10월쯤 인사를 하게 되면 2~3개월 정도의 조직 정비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인사 시기는 더 빨라지고 있다. 9월도 모자라 7~8월에 단행되기도 한다. 그만큼 준비를 빨리 할 수 있고, 하반기 변동성에 대응하겠다는 취지인데 여러모로 부작용 얘기가 슬슬 나오고 있다.

    그나마 10월 인사면 3분기까지의 성적을 갖고 평가받는데 그 이전에 인사가 난다고 하면 현 사장이든, 사장 후보든 실상 상반기에 모든 성과를 내야 한다. 주가든, 매출이든, 부채비율이든 단기간에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러면 꼭 무리를 하게 된다는 것을. 단기 성과에 집착하게 되고 그 성과는 한 순간에 회사 전체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또는 애초에 사고를 안 내려고 아예 아무 일도 안 한다든가…

    실무진들 사이에선 불만이 가득하다.

    "1년 내내 인사(人事)만 준비하고 있다. 조직을 재정비할 때쯤 되면 또 다시 인사 시즌이다. 이래선 일은 언제 하나 싶다"

    인사를 위한 '성과 지상주의' 일변도로 흘러갈 개연성이 점점 커지고, 그럴수록 조직 전반의 안정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기업의 철학 따위(?)를 얘기하는 건 사치다. 누군가의 '영전'을 위해서 소모돼야 하고 그게 또 잘 안되면 언제든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업의 인사 시즌을 흔히 프로 스포츠의 '스토브리그'와 비교를 한다. 정규시즌이 끝나고 각 구단이 팀의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수 영입, 연봉 협상 등을 하는 시기를 말하는데, 난로(stove)에 둘러 앉아 현상한 것에서 유래했다. 이 말대로라면 한국의 기업은 1년 내내 난로 앞에 앉아 '장기 말'을 어떻게 둘지만 고민하는 꼴이다.

    다수의 기업이 한 때 잘 나가던 국제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도, 한 해 내내 구조조정만 하는 것도, 해외 진출에 큰 목소리냈다가 국내에서만 옥신각신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인사'인 거 같다.

    한 두달 정도 우리는 또 무수한 하마평만 지켜봐야 하고 그 과정의 피로감은 만만치 않다. 그 조급함을 풀어줄 이들은 그 윗단에 있는 기업의 오너 경영인, 금융지주사 회장들인데 그럴만한 분들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다. 그들도 여유가 없어보이는 건 매한가지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그래서 일은 언제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