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구성원을 가르치려 드는 '사모펀드' MBK
입력 24.09.25 07:00
Invest Column
  • 재계에선 싸움이 숱하게 벌어진다. 

    남보다도 못한 가족 간의 갈등, 기업 간의 분쟁, 경영권을 뺏고 또 지키기 위한 오너일가의 물밑 암투가 매순간 진행되고 있다. 다만 수면 아래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봉합되거나, 마지못해 법의 힘을 빌린다면 그 과정의 일부가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사인(私人) 또는 민간 기업의 사정을 이해 관계자를 제외한 모든 이에게 낱낱이 알려야 할 의무가 없을 뿐더러 공개적인 싸움을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다는 판단이 그 배경이기도 하다. 어쩌면 재계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관행으로 여길 수도 있고, 또 자수성가와 거리가 먼 누군가들에겐 지켜야 할 '보이지 않는 선'이란 게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50년간 협업을 이어온 두 가문(영풍과 고려아연)의 분쟁에 뛰어들어 경영권 인수를 추진 중인 MBK파트너스의 최근 행보는 그래서 화제다. 

    물론 PEF의 기업 경영권 인수는 당연한 활동이고, 오너 일가의 분쟁에 뛰어든 사례 역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번 사안처럼 상대방에 대한 공개적인 공격을 넘어 비판과 비난 일색으로 여론전을 펼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공개매수 발표 직후부터 MBK는 입장문과 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법원의 판단에 앞서 상대방의 손발을 미리 묶어두려 한다거나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은 상대방의 우군(?)에 대한 위법성 논란을 따진다. <日 스미토모 지분 취득 배임성 거래, 소뱅 베인 캐피탈 들어와도 출구전략 없어...한투 앞세운 고려아연 대항공개매수 곳곳에 암초(09.23)>

    한화와 LG, 현대차 그룹은 졸지에 MBK가 던진 돌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선을 그을 수도,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어느 한 쪽을 지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회동을 가졌다고 보도된(한화,LG, 한국투자증권, 한국앤컴퍼니, 소프트뱅크, 베인캐피탈, 스미토모 등 ) 일부 기업의 경우, 기 보유 주식에 관해 이번 회동의 구두협의 내용에 따라서는 의결권 공동행위자로 인식돼 5%룰 공시 위반 여부도 검토될 부담을 지게 됩니다" (<최윤범 회장, 정말 우군을 찾았을까? (09.23)>中)

    상대 측의 자금 모집에 대한 우려를 비롯해 <최씨 일가 주담대해도 2조원 자금 모집에 역부족(09.22)> 상대측에 대한 질문지까지 <최윤범 회장이 지금 대답해야 할 질문들(09.24)> 마련하는 모습이다.

    MBK는 '적대적 인수합병'이 아닌 정통 바이아웃 거래임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지만, 반대편에 서 있는 상대가 명확하고 그들과의 이해관계가 확실하게 엇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 MBK의 주장과는 반대로 '적대적(Hostile)' 거래로 비쳐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스스로 조성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고려아연 측이 직접 답을 내리거나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는 것들이다. 위법의 여지가 있다면 법원의 판단에 맡길 수 있는 사안들도 많다.

    공개매수의 과정에선 긴 말이 필요없다. 

    "우리가 당신의 주식을 얼마에 사겠습니다. 조건이 마음에 들면 우리에게 파십시오.”

    이 한마디로 모든 과정이 요약된다. 주주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금액을 높여 부르면 된다.

    주식을 사고 파는데 "당신의 회사 경영진이 부도덕하다", "우리에게 팔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은 자금 모집이 어렵다", "당신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들을 상세히 설명해주겠다" 등 수식어가 많은 쪽은 수세에 몰린 곳일 개연성이 크다.

    주주와 투자자, 시장은 공정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면 절차와 방법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MBK가 이를 간과했을리는 없다고 본다.

    공개매수는 주주들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취지와 목적을 주주들에게 설명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로 사용할 수 있다. 단, 매수의 주체자로서 스스로의 가치와 스토리로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는 노력보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으로 명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한국에서 자리잡지 못한 행동주의펀드들의 패착한 모습과 유사하다. 

    MBK가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로서 책임감(?), 이를 넘어 '선구자' 역할에 과도하게 심취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대한민국 재계의 지배구조에 경종을 울리겠다' 또는 '한국 PEF 업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 등 미국식 자본주의를 한국 시장에 이식하겠단 사명감이 그 배경이라면 대한민국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존경하는 고려아연 임직원, 노동조합, 고객사, 협력업체, 주주, 지역사회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께 올리는 글(09.24)> 입장문이 조금이나마 이해해 볼 여지가 있다.

    가장 자본시장에 가깝다는 MBK파트너스는 역사상 가장 감성적인 M&A를 추진하고 있다. MBK의 방식은 글로벌 스탠더드일까, 아니면 시장에서 그들을 평가할 때마다 언급되는 단어(arrogant)와 닮았을까. 이 싸움을 지켜봐야 하는 '대한민국 모든 구성원들'은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