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컷' 이후 혼돈의 시대...금ㆍ채권ㆍ부동산으로 '빅 머니 무브'
입력 24.09.26 07:00
9월 글로벌 시장서 수익률 최고 자산 '금'...사상 최고가
주식 한풀 꺾인데다 정치ㆍ지정학적 리스크로 추가 상승 기대도
국내 증시서 자금 빠지는 가운데 '서울 핵심지' 부동산 급등
미국 대선ㆍ경기침체 우려 등 연말까지 '우려' 해소해갈 필요성
  •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3년만에 바뀌었다. '돈의 법칙'에 적용되는 규칙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빅컷'(0.5%포인트 인하)은 일정부분 예견된 상황인만큼, '돈의 이동'은 이미 시작된 상황이다. 지정학적 변수와 얽히며 글로벌 자금시장에서 '금'과 '채권'의 선호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고, 국내에선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선호도가 커진 상황이다.

    KB증권에 따르면, 9월 들어 글로벌 자금시장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자산은 '금'이었다. 국제 금 가격은 지난 24일 1트로이온스(약 31g) 당 265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돌파했다.  9월에만 5% 이상 오르며 글로벌 자산군 중 가장 압도적인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상승률만 30%에 이른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내년 1월까지 금 값이 1트로이온스당 2700달러를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한 발 더 나아가 내년 중엔 3000달러 돌파가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은 상황이다.

  • 금값의 고공 행진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가 핵심적인 배경으로 꼽힌다. 역사적으로 금값은 달러가 약세를 보일 때 강세를 띄는 경우가 많았다. 9월 초 FOMC에서 금리인하가 사실상 확정이라는 전망이 나오며 금값은 본격적인 상승세를 띄기 시작했고, 예상대로 '빅컷'이 감행되자 사상 최고가 수준으로 급등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020년 하반기 이후 자산군 중 최고의 수익성을 보이던 '주식'은 한 풀 꺾인 모양새다. 9월 들어 그나마 강세를 보였던 미국 주식마저 1% 안팎의 강보합세를 보였고, 유럽ㆍ한국ㆍ일본ㆍ중국 등 주요국 증시는 모두 월간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저울질하며 '낙관론'을 펼치던 시기가 주식이라는 자산군의 '꼭지'였음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평가다.

    주식 대신 새로운 '주도 자산'으로 떠오른 금값의 고공행진은 지속될 수 있을까. 해답은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 달렸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최근 수 년 사이 금값의 구조적 상승세는 신(新) 냉전에 대비해 중국 등 비(非)서방 국가 중앙은행에 매입 규모를 늘렸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은데, 만약 배타적인 외교정책을 주창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당선될 경우 금 매입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LS증권은 "미국의 재정 문제로 인한 국가 신용디폴트스왑(CDS) 스프레드 확대도 금 가격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대선 이후 미국 내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고, 정부 부채의 증가세가 확대될 경우 2011년 8월이나 2023년 상반기처럼 금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채권으로 쏠리는 자금의 이동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투자등급 채권(+2.3%), 투기등급 채권(+1.5%), 글로벌채권(+1.4%), 한국 채권(+0.8%) 모두 주요 자산군 중 상위권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시중금리 인하 가능성에 베팅한 자금이지만, 지난해 하반기와는 달리 실제로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졌으며 한국은행 역시 10월이냐 11월이냐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뿐 기준금리 인하가 예견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합리적인 베팅일 수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글로벌 머니 무브'의 향방은 한 점으로 모아진다.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명제가 시장의 핵심 명제로 부상한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지난 24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12개월간 글로벌 경제가 '연착륙'할 것이라는 응답은 79%로 올해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을 포함하면 응답자의 89%가 낙관론을 펼치고 있었다.

    이는 향후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 지표가 실제로 가리키는 방향이 '연착륙'이 아닐 경우 시장이 받을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현지시간 24일 미국 S&P글로벌의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가 8월 54.6에서 9월 54.4로 하락하고, 서비스업 PMI 역시 약세를 띄자 미 증시는 일제히 장중 약세를 보였고, 미국 달러 지수(달러인덱스)는 100.02로 연중 최저점까지 떨어졌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비트코인 가격 역시 9월초 5만2000달러선에서 최근 6만4000달러선까지 22% 급등했는데, 나스닥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하던 기존의 포지션에서 분위기가 다소 달라진 것"이라며 "글로벌 유동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산군인만큼 달러 약세를 타고 연말까지는 상승세가 이어질 거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자금시장 상황은 글로벌 시장의 추세를 따르는 가운데, '반도체 업황 고점론'과 '금융투자소득세'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증시가 힘을 쓰지 못하는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8월 초 급락 이후 반등장에서 결국 '상징적 지수'인 2700을 넘어서지 못했고, 최근엔 2600선 탈환조차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국내 주거용 부동산, 특히 수도권, 그중에서도 서울 핵심지 부동산 가격은 연일 고점을 갱신하고 있다. 아파트 실거래가 정보 사이트 '아파트미'에 따르면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아크로서울포레스트'의 최근 평당(3.3제곱미터당) 매매가는 1억3875만원으로 지난해 1억682억원 대비 30% 올랐다. 이른바 '국민평형'인 34평 기준 45억7000만원대에 거래가 된 것이다.

  • 이외에 반포 래미안원베일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등 핵심지 주요 아파트들의 평당 매매가가 속속 1억2000만원대로 접어들고 있다. 압구정 현대 10~14차로 대표되는 주요 구축 아파트 역시 평당 매매가가 1억원을 넘어서고 있다.

    지방 부동산 경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다. 공급 부족으로 인해 '신축'에 대한 수요가 커진 최근에도, 이달 중 청약을 진행한 신축 단지 중 전남 광주 및 경남 김해 청약분은 '미달'을 기록했다. 서울 및 경기 수도권 내 신규 분양 물량은 입지와 상관없이 최소 2대 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상업용 부동산도 비슷한 모습이다. 지난 7월 마무리된 서울 강남 '더에셋' 오피스는 1조1000억원에 팔렸다. 코람코신탁은 이 거래로 5년만에 3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거둬들일 전망이다. 매각을 타진 중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의 매매 가격은 최대 5조원까지 언급되고 있다. 반면 프라임급 오피스를 제외한 자산들은 가격 눈높이 차이로 매수자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으며, 매각이 철회되거나 보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잃지 않을 것 같은 자산'에 대한 쏠림이 점차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가 '글로벌 머니 무브'의 향방을 가를 가늠자 중 하나로 꼽힌다. 당장 금값 및 국제 유가 등 비(非)증권 자산 자격의 희비가 대선 결과에 따라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완화 정책 역시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24일 중국 정부가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인하하며 190조원을 풀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자, 구리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상승세를 띄었다. 원자재 가격은 시차를 두고 결국 물가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경기 부양에 방점을 찍은 연준의 '빅컷'이 차후 '스태그플레이션' (물가 상승+경기 침체)로 돌아올 부담이 커졌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경기가 강하고 증시가 상승할 거라고 믿는 낙관론자들조차도 올해 연말까진 '침체 우려'에 시달릴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밸류업 지수가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금투세 부담에까지 짓눌려있는 국내 증시에 당분간 자금이 유입되긴 어려운만큼, 부동산ㆍ채권 등 타 자산군이 연말까지 강세를 보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