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 듣기 전 주문부터' … 초일가점이 초래한 IPO '깜깜이 청약'
입력 24.10.07 07:00
코스닥 상장주, 초일가점 외 차별화지점 없단 평가
"IR 듣기 전이어도 수요예측 첫날 주문 넣어"
락업 비율이 배정 물량 갈랐지만, 이젠 초일가점이 중요
뻥튀기 청약 막기 위한 제도가 또다른 뻥튀기 만들었단 지적
  • 공모주 투자 전략이 '초일가점'에만 집중되면서 기업설명회(IR)를 듣기 전 수요예측 첫날 주문을 넣는 기관투자자들이 생기고 있다. 공모 기업을 분석하는 것보다 초일가점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초일가점은 수요예측 첫날 주문을 넣는 기관에 공모주를 더 많이 배정하는 가점을 뜻한다. 수요예측 기간을 기존 2일에서 5일로 대폭 늘리며 새로 생긴 제도인데, '최대한 많은 물량을 보호예수 없이 배정받아 상장 당일 매도하는 전략'이 기관들 사이에 대세로 자리잡으며 '깜깜이 청약'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2일 증권가에 따르면 '뻥튀기 청약'을 막기 위해 마련된 초일가점 제도가 결국 또다른 방식으로 '뻥튀기'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초일가점 제도는 지난해 도입됐다. 기관들이 능력 대비 과도하게 많은 물량을 주문하는 일이 늘어나자, 상장 주관사에 기관들의 주금 납입 능력을 꼼꼼히 확인할 것을 요구하는 대신 2영업일이었던 수요예측 기간을 5영업일로 연장하면서다. 수요예측 마지막날 주문일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첫날 주문을 넣은 기관에 가점을 부여하는 이른바 '초일가점' 가이드라인이 이때 제시됐다.

    여기에 작년 6월 상장일 가격 상승 제한폭 확대 정책이 겹치며 예상치 못한 현상이 벌어졌다.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이른바 '따따블 (공모가 대비 400% 상승)까지 확대되자, 공모주 시장이 하루짜리 '단타' 시장으로 급변한 것이다.

    초일가점 도입 후 '기업분석' 보다는 '물량확보'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가 압도적이 됐다는 게 투자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상장 준비 기업이) IR을 온다고 했을 때 아예 거절한 경험도 있다"며 "케이뱅크같이 공모 규모가 큰데 가격 이슈가 있는 기업은 IR을 주의깊게 듣지만 그런 기업이 아니라면 기업설명회가 큰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다른 운용업계 관계자는 "수요예측이 5일로 늘어나면서 수요예측 기간 중간에 IR을 오는 기업들이 종종 생겼는데, 이미 첫날 주문을 넣은 상태에서 IR을 듣는 경우도 있다"며 "중소형주는 초일가점을 받고 들어가 최대한 많은 물량을 배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기 때문에 IR 전 주문을 넣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기관들이 최대한 많은 공모주를 배정받기 위해 수요예측 첫날 높은 가격을 적어내면서 제대로 된 기업분석과 수요예측을 통한 가격 산정 기능이 어려워진 셈이다. 신규 상장주의 경우 수요예측 과정에서 '전문가'들을 통해 '가격을 발견'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초일가점과 따따블이 일으킨 '시너지'가 가격발견 기능을 아예 없애버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코스닥 상장 기업의 경우 초일가점 이후 기관들이 락업을 거는 비율이 줄어들며 상장 이튿날 주가가 폭락하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초일가점이 생기기 이전 기관이 물량을 많이 배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의무보유확약 조건(락업)이었는데, 초일가점이 생긴 후 락업을 걸 유인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선 올해 상반기 코스닥 IPO 수요예측 평균 의무보유확약 비율은 전년 대비 30~4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분석한다. 

    한 증권사 IPO 부서 관계자는 "현재 주식시장에 이렇다 할 주도주가 없다보니 아직까지 상장 첫날 팔아버리는 전략이 통용될 만큼의 유동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며 "파두 사태 이후 상장 법인 대표들이나 증권사들이 공모가 산정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기관들이 첫날 높은 가격을 적어나면서 결국 공모가 상단 이상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일들이 아직 비일비재해 개인투자자들이 높은 가격에 사야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