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도는 11번가 경영권 매각…SK 콜옵션 재행사 기한 1년 앞으로
입력 24.10.08 07:00
SK그룹 11번가 콜옵션 포기 1년
원매자 찾지 못하면, 내년에 또 콜옵션 행사 결정해야
성장지원? 경영권 매각? 모호한 전략속
11번가 경쟁사 G마켓과 손잡은 SK텔레콤
대통령 "기금수익률 제고"…회수 여부 주시하는 국민연금
  • SK그룹이 이커머스 자회사 11번가에 대한 콜옵션 행사를 포기한지 1년이 지났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경영권이 이미 새 주인에 넘어갔어야 하는 시점이지만, 매각 작업은 여전히 쳇바퀴를 돌고 있다. 주요 원매자들이 대거 발을 뺀 상황에서 당장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은 티몬·위메프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생존 경쟁에서 그나마 활로를 찾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반사이익은 이미 유통공룡 '쿠팡'으로 수렴한 상태다. 갈수록 중소 이커머스 기업들의 전략적 방향성이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11번가 경영권을 보유한 SK그룹(SK스퀘어)의 고민이 더 깊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재 11번가의 경영권 매각 작업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SK그룹이 콜옵션 행사를 포기하자 지분 18%를 보유한 재무적 투자자(FI)의 주도로 SK그룹 지분(80%)을 포함한 경영권 매각이 진행됐지만 원매자를 찾지 못하며 답보 상태에 빠졌다. 앞으로 1년 내 새 주인을 찾지 못할 경우 SK그룹은 또 한번 FI 지분에 대한 콜옵션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SK그룹에 경영권 매각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매각 과정에선 신세계, CJ 등이 관심을 보였고 큐텐과 컬리 중국의 알리바바(Alibaba)그룹도 일부 협상을 진행했다. 최근엔 오아시스(OASIS)와 주식교환 형태의 M&A가 검토됐으나 지난 8월 최종 무산됐다. 이미 원금 회수 수준으로 FI들의 눈높이가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매도자-원매자의 가격 이견보단 SK그룹의 매각 의지와 협조 여부가 경영권 매각 실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FI 측은 지난 2018년 11번가의 기업가치를 2조7500억원 수준으로 평가하고, 지분 18.2%를 총 5000억원에 인수했다. 2018년 당시 SSG가 어피너티와 BRV로부터 약 1조원을 투자 받고, 쿠팡이 비전펀드로부터 20억달러를 유치하면서 이커머스 기업들의 자본 경쟁이 시작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SK그룹 역시 11번가 성장자금 마련을 위해 외부 투자를 추진, 결국 H&Q과 국민연금 등을 주요 투자자로 유치했다.

    주요 전략적투자자(SI)들이 대거 이탈한 데는 SK그룹의 11번가에 대한 '모호한' 전략적 방향성이 거론되고 있다. 

    SK스퀘어가 지분 8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남아 있지만, 경영권 매각은 소수지분을 보유한 FI에 위임하고 한발 물러선 상태이다 보니 내부적으로 경영 혼란이 야기하고 있단 지적이다. SK텔레콤이 최근 멤버쉽 서비스에 11번가의 경쟁사 G마켓을 구매 혜택을 포함한 것이 내부적으로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모회사가 버린 기업’의 원매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최근 SK텔레콤과 G마켓 제휴 사례에서 나타나듯 11번가에 대한 성장을 지원하겠다든지 확실하게 경영권을 매각하겠다든지 SK그룹 내부적으로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SK그룹 전반적으론 SK온을 비롯해 그룹 내 주력사업이 흔들리며 생존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11번가를 비롯한 비주력 사업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11번가가 사업 경쟁력을 잃어갈수록 그 부담이 SK스퀘어에 지속적으로 전이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11번가는 지난해 1300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 역시 적자가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SK스퀘어는 11번가의 지분 80%에 대한 장부가액을 지난 2022년과 비교해 2000억원 이상 상각했지만 여전히 8300억원 이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선 지분 100%의 매각 가격이 SK스퀘어 보유 지분(80%) 장부가액에도 크게 못미칠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추후 상각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매자를 찾지 못할 경우엔 SK그룹은 내년에 다시 한번  콜옵션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SK스퀘어의 대규모 자금 지출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최대 투자자인 국민연금은 SK그룹의 11번가 처리 방안에 예의주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018년 FI 투자금 총 5000억원 가운데 국민연금이 직·간접적으로 출자한 금액은 약 4000억원이다. 투자에 나설 당시 국민연금 측은 SK그룹 핵심 경영진으로부터 IPO가 무산될 경우 SK그룹의 콜옵션 행사 등을 확약 받았으나, 결론적으로 무산됐고 원금마저 회수가 불투명해지면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는 평가다. 아직 국민연금의 SK그룹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는 없었지만 앞으론 적극적인 회수를 위한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기금수익률 1% 제고 방안을 꺼내든 상황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기존 투자금 회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11번가의 경우) 원금 손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을 나타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