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소환에 '대관 실패' 거론되는 한화그룹...'말 많은 SKㆍ두산도 임원급인데'
입력 24.10.11 07:00
취재노트
한화그룹, 2018년 이후 대관 조직 사실상 해체?
SK 등 다른 대기업과 달리 비공식 활동도 미비해
여당마저 김동관 부회장 증인 채택 강력 추진하자
그룹 내부서도 '바람막이' 부재 불안감 고조
  • "대기업 중 한화만큼 대관 조직이 약한 곳이 없다. 무엇보다 그룹 차원의 대관 시스템이 없는 것이 문제다. 단순히 대관 조직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 체계가 미비한 수준이라는 의미다." (한 재계 대관담당임원)

    한화그룹의 '대관 실패'가 재계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이달 21일 공정거래위원회를 대상으로 하는 국정감사에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한 데 따른 것이다. 정재계에서는 한화그룹의 부실한 대관 조직이 그룹 총수의 출석이라는 사태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는 지난달 전체회의를 열고 김동관 ㈜한화그룹 전략부문 부회장을 공정위 국감의 '1번 증인'으로 채택했다. 국감 단골 손님인 구글ㆍ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보다 선순위로 뽑힌 것이다. 여야 의원들은 한화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거진 편법 승계 의혹 및 한화에너지의 내부거래 의혹 등을 추궁하겠다는 입장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한화그룹만 기업 총수가 증인으로 채택됐다는 점을 점을 두고 그룹 안팎에선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다른 기업들의 증인 채택은 대부분 임원급에 그쳤던 까닭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다른 대기업들도 증인으로 나설 예정이지만, 한화그룹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강동수 SK이노베이션 전략재무 부사장이, 두산그룹은 김민철 두산지주 재무담당 사장이 출석할 예정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 그룹이 최근 한화그룹보다 더 큰 이슈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너가가 아닌 임원급 인사가 증인으로 나선다는 것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이혼소송과 관련된 '노태우 비자금' 의혹으로, 두산그룹은 금융 당국이 직접 나서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간 합병에 제동을 걸면서 상당한 논란을 겪었다. 

    여당 소속의 한 국회 보좌관은 "당초 정무위 국감은 '두산 국감'이나 '우리금융 국감'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강했는데 갑자기 한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며 "야당의 증인 신청에 그칠 줄 알았는데, 여당까지 이에 호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정재계에서는 한화그룹의 대관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통상 여당은 기업인 소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만, 올해 국감에선 여당 측 정무위 간사인 강민국 의원실 등이 나서 김 부회장의 출석을 요청한 탓이다. 

    한화그룹의 허술한 대관 조직이 문제의 원인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른 대기업들은 공식적으로 대관 조직을 축소하는 추세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반면 한화그룹은 2018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경영기획실을 해체한 이후 사실상 공식적인 대관 총괄 조직이 전무한 상황이다. 

    한화그룹은 현재 공식적으로 대관조직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에 따르면 한화의 대관 활동은 커뮤니케이션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져 왔고, 실질적으로는 일부 임원들의 비공식적 활동에 크게 의존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한화투자증권 소속 김일수 전무 등이 국회를 방문하며 대관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룹 차원의 체계적인 대관 시스템보다는 개별 임원들의 네트워크와 역량에 의존하는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한화그룹 측은 "각 계열사별로 업무상 관(官)을 상대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공식적인 대관 조직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한화그룹이 2년여 전부터 대관 임원들을 영입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평가도 신통치 않다. 영입 이후에도 대관업무 시스템 미비와 맞물려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관 인력을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화그룹의 김동관 부회장 증인 채택 이후 발표한 입장은 그룹의 대관 활동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룹은 경영권 승계, 내부거래, 기업 거버넌스 등 주요 쟁점에 대해 상세한 해명을 내놓았지만, 굳이 "유감"이라는 말을 덧붙여 국회를 자극했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한화그룹이 최근 다수의 전직 고위 공무원을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네트워크와 전문성이 이번 사태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정위를 통한 그룹 관련 자료 요청에 성실히 응했다"는 그룹의 설명은 오히려 국회와의 직접적인 소통 채널이 부재했음을 시사한다는 분석이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 임원은 "그룹 커뮤니케이션 팀은 사후 해명보단 선제적 대응이 중요하고, 자료 제출 이상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대관은 단순히 인력을 영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영입한 인력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부 시스템과 전략이 필요한데, 한화그룹은 이 부분이 부족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한화그룹 내부에서도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위 인사들을 영입했음에도 경영진을 위한 실질적인 '바람막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대관 활동이 정경유착의 우려를 낳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다만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대기업들이 대관 활동의 적정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위기 대응 능력을 제고하고 기업 거버넌스의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이해관계자들에게 그룹의 경영 방침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접근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