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릴 것 같은데'...밸류업 ETF 출시 두고 운용사들 '속앓이'하는 이유
입력 24.10.17 07:00|수정 24.10.17 07:05
취재노트
당국 주도 밸류업 ETF 출시에 운용사들 '난감'
투자매력도 떨어지는데 ETF만 우후죽순 내야
밸류업 지수 종목 변경에 ETF 출시 연기설까지
  • 밸류업 ETF 출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자산운용업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표면적으로는 밸류업 ETF 준비에 여념이 없지만 내부적으론 우려와 고민의 목소리가 있다. 밸류업 지수를 활용한 ETF 출시를 앞두고 운용사들이 남모르게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밸류업 ETF 출시가 미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17일 운용업계에 따르면 밸류업 ETF 상장 연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밸류업 지수의 리밸런싱이 끝난 후 밸류업 ETF를 출시하는 방안에 대해 자산운용사로부터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전해진다. 리밸런싱 이후에 ETF를 내면 투자자들의 혼동을 막고 운용업계 실무진들의 편의성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운용업계는 현재의 밸류업 지수로 밸류업 ETF를 출시하는 것에 회의적인 분위기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밸류업 지수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상당수의 운용사가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출시하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의문"이라며 "감독당국이 주도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띄우려고 하고 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밸류업 지수에는 기업가치 제고에 앞장서는 '모범적' 상장사가 포함돼 있어야 하는데 이와 무관한 기업도 다수 편입됐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우리는 주주환원에 관심이 없는데 왜 들어간건지 모르겠다"며 황당해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형 기업들이 시장 대표성을 위해 기계적으로 편입되면서, 밸류업지수가 사실상 코스피100과 큰 차이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최근 2년간 적자를 기록하고 밸류업 관련 공시도 하지 않았음에도 지수에 포함된 점이 논란이 됐다. 이에 거래소는 SK하이닉스를 지수에서 제외하는 등의 밸류업 지수 종목 조기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것 자체가 밸류업지수의 본래 취지를 훼손했다며 "단순히 시가총액이 높다는 이유로 편입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는 주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주가 부진과 전년과 동일한 수준의 주주환원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다수 상장시키는 것은 오히려 상장폐지되는 ETF 개수만 늘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초 금융당국은 내달 4일, 밸류업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ETF 12개를 상장시킬 예정이었다. 이 중 9개는 밸류업 지수 90% 이상을 추종하는 패시브 ETF, 다른 3개는 밸류업 지수 종목 중 일부를 선별한 액티브 ETF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밸류업 지수를 그대로 복제하는 ETF가 9개가 나오는 것인데, 자금이 유입될지 의문이다"라며 "일부 대형사로의 자금 쏠림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일각에선 ETF가 대거 상장폐지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업계의 이러한 우려는 공개적으로 표출되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운용사 관계자들이 금융당국의 정책적 기조를 고려해 '쉬쉬'한 영향이다. 금융당국이 공 들이고 있는 정책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밸류업 지수 발표 직후 운용업계에서는 '액티브 밸류업 ETF'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도 했다. 밸류업 지수에선 빠졌지만 주주환원률이 높은 기업을 편입하면 '지수 대비 알파'를 쉽게 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운용사가 검토 단계에서 '거래소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며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밸류업 지수에 대한 업계 안팎의 혹평으로 거래소가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에 나서면서 당초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밸류업 ETF 출시에도 시일이 더 걸릴 수 있다. 

    이를 바라보는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관찰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 밸류업 지수가 대폭 바뀔 것이란 기대감이 큰 것 같지 않다. '원래 취지에 맞는 종목 구성이 이뤄졌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