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된 삼성전자, 컨트롤타워 세운다고 M&A 본능 살아날까
입력 24.10.23 07:00
취재노트
글로벌 M&A 시장에서 존재감 약화
미전실 이은 TF, 뚜렷한 방향성 없어
준감위 컨트롤타워 재건 조언하지만
TF 체제서 M&A 역량·네트워크 약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문화가 걸림돌
  •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이 경영 최전선에 선 2014년부터 2017년 초 미전실이 해체될 때까지 가장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소재, 방위산업 등 1등이 되기 어려운 사업을 과감히 정리했고 그룹 사상 최대 거래인 하만 M&A도 성공했다. 변화 의지가 강했지만 무엇보다 의사 결정이 빠르고 과감했다.

    글로벌 M&A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던 시기기도 하다. 투자은행(IB)들은 삼성의 취향을 파악하려 노력했고, 굵직한 거래가 있으면 가장 먼저 초대장을 보냈다. 삼성전자는 M&A 참여 소식이 알려지면 즉시 거래에서 발을 빼는 고고한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후 행보는 보이듯 잠잠하다. 총수의 사법리스크가 불거지며 커다란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려워졌다. 미전실의 뒤를 이은 태스크포스(TF)는 7년째 임시적 비상조직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 M&A를 수차 공언했지만 공염불이 되는 분위기다.

    올해 삼성전자는 존슨콘트롤즈의 냉난방공조(HVAC) 사업에 관심을 보였으나 입찰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콘티넨탈의 사업부, 일렉트로룩스 등도 인수 군불만 때다 이야기가 들어갔다. 잇단 소문과 실패에 삼성전자 M&A 조직의 사기도 적잖이 꺾였다.

    최근엔 반도체 위기론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며 M&A에 눈을 돌릴 여유가 줄었다. IB도 거래 상대방도 더이상 삼성전자의 관심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돈이 있을 때도 의사를 결정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더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삼성전자가 주요 M&A의 1순위 초대 손님이었다면 이제는 관심을 보여도 입장권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연간 보고서 발간사를 통해 ▲컨트롤타워의 재건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의 제거 ▲최고경영자의 등기임원 복귀 등을 강조했다. 수 년간 시장의 우려가 총망라된 조언이다. 아직은 '감기' 수준이라며 이제라도 바뀌면 언제든 다시 반등할 수 있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M&A 시장에서 존재감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삼성그룹의 중추 조직은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로 바뀌는 중에도 강력한 기능을 유지했다. 경쟁사에 밀리기라도 하면 수개월간 내부 감사를 벌여 문제점을 찾고 곧바로 우위를 탈환했다. 미전실 역시 업무 강도가 세지만 그만큼 보상과 명예가 따랐기 때문에 임직원들의 사명감이 강했다.

    TF 체제에서는 보신 문화가 강해졌다. TF 임직원들은 경영진에 보고하기 위해 잠재 매물을 검토하고 리포트를 만드는 일에 시간을 들였다. M&A를 해야 할 이유보다는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는 데 집중했다. 자연히 실력이나 네트워크, 의지 모두 전보다 약화할 수밖에 없다. 미전실과 TF를 거친 중역들에 다시 힘이 실린다 해도 7년 허송세월을 만회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그룹의 의사결정 체계다. 이재용 회장은 사법리스크를 마주한 후 중대사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데 주저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2인자인 정현호 부회장 역시 사업 강화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총대를 메고 책임있는 의사 결정을 하지 않으니 기업 전체가 정체됐다. 컨트롤타워가 생겨도 컨트롤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다른 M&A 업계 관계자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총수가 의사 결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제자리만 맴돌려 하는 것"이라며 "M&A 담당 임직원들도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보니 사명감이나 로열티가 전만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