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이후 쏟아질 적대적 M&A…공략 테마는 동업·개인사·현금
입력 24.10.23 07:00
일본 적대적 M&A 꿈틀…한국은 고려아연 신호탄
최대주주 지분율 낮거나 1-2대주주 격차 적은 곳
동업 구조 갈등에 취약…개인사 공격 빌미 될 수도
다양한 양상 나타날 듯…결국 핵심은 '돈이 되느냐'
  •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향후 쏟아질 적대적 M&A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모펀드(PEF)와 행동주의펀드가 다양한 전략을 활용해 기업의 경영권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거나 개인의 약점이 있는 곳, 아울러 현금을 많이 가진 기업들이 우선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캐나다 유통기업이 일본 세븐일레븐 운영사(세븐앤아이홀딩스) 인수에 나섰다. 글로벌 PEF들은 후지소프트 인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모두 적대적 M&A 양상으로 과거라면 '국권침탈'이라는 날선 비판이 나왔겠지만 지금은 여론이 차분하다. 재벌(財閥, 자이바츠)의 시대가 끝난 후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한 일본도 이제는 변화를 마주하는 모습이다.

    한국도 적대적 M&A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고려아연 분쟁을 통해 아직은 재벌로 대표되는 경제계 주류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 확인됐다. 반면 더 이상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인상 역시 강해졌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일가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 무리하면 안된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경영권 다툼이 자문 및 투자 시장의 새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적대적 M&A엔 대형 PEF가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지분 확보 경쟁을 수반해 든든한 자금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형 PEF들이 한국에서 통상의 대형 경영권 거래를 발굴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지배구조의 틈을 비집어 경영권을 노리는 전략은 이제 활용 초기다. 이런 새로운 시도에 관심을 갖는 해외 출자자(LP)가 적지 않은 분위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형제, 가족들간 다툼을 넘어 PEF와 자본시장 전문가들까지 가세한 경영권 분쟁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고려아연 분쟁이 향후 나타날 적대적 M&A에 여러 가지 영감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대주주의 지배력이 약하거나, 주요주주간 지분율 격차가 크지 않은 경우, 혹은 경영권을 배제해야 할 빌미를 준 경우 경영권 사냥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도 아니라면 회사의 자산에 집중하는 자본이 나타날 수 있다.

    삼천리그룹이 고려아연 분쟁 국면에서 주목받았다. 삼천리도 고려아연과 비슷한 동업 역사를 갖고 있다. 두 창업주 일가가 삼천리와 에스티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삼탄) 지분을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한 쪽씩 경영을 맡고 있다. 작년 삼천리 주가 급등락 때도 동업은 굳건히 유지됐지만 틈이 생기면 분쟁이 생기지 않으리라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가족 간 갈등은 흔하다. 금호석유화학은 현 경영진과 최대주주의 갈등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최대주주 쪽에 자금을 대려는 곳들이 있었는데 올해는 차파트너스가 우군으로 나섰다. 지금까진 박찬구 회장 측의 경영 능력이 높이 평가받았지만 양 측의 지분율 격차가 크지 않은 만큼 언제든 적대적 M&A 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미약품에선 시기와 형세에 따라 모자, 형제, 남매간 갈등이 치열했다. 제약업계에선 동아제약, 녹십자 등에서 가족 내 분쟁이 나타나기도 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오랜기간 아슬아슬한 경영권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현대그룹이 PEF를 우군으로 들이며 긴장도가 완화했지만, 여전히 10% 가까운 지분을 가진 2대주주의 존재는 껄끄럽다. DB하이텍은 DB그룹 보유지분이 낮아 경영권이 단단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었다. 작년부터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았다.

    최대주주나 오너 일가가 시장의 지지를 잃는 사례도 나타날 수 있다. MBK파트너스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독단적인 경영 행태가 회사에 피해를 입힌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워홈은 개인의 형사 문제가 경영권 박탈로 이어졌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문제가 생기면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 행동주의펀드도 더 이상 오너의 일탈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는 않는 분위기다.

    현금을 많이 쌓아둔 기업일수록 공세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PEF들은 회사의 현금창출력이나 쌓아둔 현금의 활용 방안을 가장 먼저 살필 수밖에 없다. 경영권을 빼앗아와야 할 대의명분과 자신들이 나서야 할 논리를 제시하지만 결국 가장 앞선 고민은 그 분쟁으로 돈을 벌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분 격차가 크지 않은 양쪽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지분을 들고 흥정하는 형태도 나타날 수 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 기회가 줄어드는 대형 PEF 입장에선 적대적 M&A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며 "1-2대 주주를 상대로 누가 더 비싸게 내 지분을 사줄 것이냐 흥정하는 행동주의펀드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