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손에 달린 두산 개편안, 여전히 에너빌리티 매수청구 한도가 관건
입력 24.10.23 07:00
분할·합병 비율 수정해 재도전
에너빌株 더 남기고, 로보틱스株 배정 비율 높여
에너빌리티 주주들 캐시카우 떼내는 부담은 여전
성장성 모호한 로보틱스株 비중 증가 실효성에 의문도
결국 주총과 주식매수청구에 구조개편 성과 달린듯
대주주 국민연금 선택이 키워드
  • 주주와 금융당국의 제동으로 지배구조개편에 한 발 물러섰던 두산그룹이 수정 개편안을 내세워 다시 한번 주주 설득에 나섰다. 과거 개편안에 비해 기존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오히려 이익으로 돌려주겠단 취지로 풀이된다. 다만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여전히 실익이 모호하단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등 지배구조개편의 핵심인 세 회사에 대한 기업가치 제고 방안 역시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은 다시 주주들에게 넘어 오게 됐다. 결국 주주들은 다시 한 번 손익계산을 따지고 주주총회 표결과 주식매수청구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한다. 이번에도 역시 대주주 국민연금의 표결에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이 제시한 수정안은 기존안에 에너빌리티-밥캣(신설 투자회사)의 분할비율, 밥캣(신설투자회사)와 로보틱스의 합병비율을 수정했다는 게 핵심이다. 기존안에 따르면 100주의 두산에너빌리티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이 지배구조개편 작업 이후 75주의 에너빌리티 주식과 3주의 로보틱스 주식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면, 수정안은 88주의 에너빌리티 주식과 4주의 로보틱스 주식을 부여하겠다는게 차이점이다. 

    두산그룹은 이미 주주들의 반발에 밥캣의 로보틱스 100% 자회사화 계획은 철회했는데, 이번 재수정안에선 “향후 추진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를 고려하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제동이 걸리기 전 초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 표면적으로 본다면 에너빌리티, 로보틱스 주식을 기존안에 비해 더 받게된 에너빌리티 주주들의 예상 손실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명확한 실익은 따져봐야 한다.

    캐시카우 두산밥캣을 자회사에서 떼어낸다는 부담은 여전하고, 이로 인한 에너빌리티의 배당 수익 감소도 감수해야 한다. 회사 측은 밥캣 인수를 위한 차입금을 감축함으로써 재무구조가 건전해질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미 신용평가업계에선 재무구조개선 효과보단 재무 융통성이 약화하고, 순자산이 감소할 수 있단 점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로보틱스의 주가 추이도 지켜봐야 한다. 에너빌리티 주주들과 달리 로보틱스 주주들의 입장에선 밥캣 신설법인과의 합병 비율이 과거에 비해 불리해졌다. 물론 그룹의 핵심 회사를 자회사 한다는 점은 변화가 없다. 상장 이후 12만원까지 치솟았던 로보틱스의 주가는 현재 6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즉 에너빌리티의 주주 입장에선 핵심 자회사가 사라지는 두산에너빌리티, 성장성을 의심받는 로보틱스의 주가가 하락하면 수정 개편안의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단 의미이기도 하다.

    그룹은 최초 개편안을 제시했을 당시 체코 원전 수출 효과에 기업가치 상승 효과를 꾀했으나 이미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상당히 사그라든 상태다. 이번엔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소형원전(SMR) 개발에 기대를 건 모양새인데 투자자들이 에너빌리티 기업가치 제고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평가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 관계자는 "두산의 수정개편안 역시 에너빌리티 주주들의 이익이 명확하다고 보긴 어렵다"며 "주가 부양을 위한 확실한 환원책이 제시되지 않는 이상, 기존안에 대한 주주들의 반발이 재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지배구조개편은 이전과 동일하게 에너빌리티 주주들이 얼마나 동의하느냐에 달렸다는 평가다. 로보틱스와 밥캣의 경우 에너빌리티에 비해 실익이 명확하기 때문에 주총 통과 및 주식매수청구권 신청 여부가 구조개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다.

    에너빌리티는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해야 분할이 가능하다. 주주총회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고, 이 규모가 전체 주식의 3분의 1 이상이어야 가결된다. 

    현재 에너빌리티의 최대주주는 ㈜두산으로 특수관계인 지분을 모두 합하면 31% 수준이다. 5% 미만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들은 전체의 약 63%이다. 기관투자가의 비중은 약 19%로 추산된다.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들의 보유 비중이 높다는 점은 추후 주총 통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법(제522조의3)에 따라 주총에 반대의사를 표시한 주주들에게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다수의 기관투자가들이 매수청구권확보를 위해 일단 반대표를 행사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에도 역시 국민연금공단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은 에너빌리티 지분 6.9%를 보유한 단일 대주주이다.

    주주총회를 통과하더라도 주식매수청구에서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과거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에서도 양사의 주총은 통과했지만 주식매수청구한도를 훌쩍 넘는 매수신청이 접수하며 합병이 무산된 전례가 있다.

    에너빌리티는 기존과 동일하게 6000억원의 매수 한도를 설정해 둔 상태다. 국민연금의 현재 보유지분가치는 약 9000억원 수준으로 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한다면 매수 한도를 넘게 된다. 국민연금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수탁자책임위원회를 열어 의결권을 일원화할지, 위탁운용사들에게 위임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다만 고려아연 사태를 거치며 국민연금의 모호한 전략이 뭇매를 맞았고, 또 과거 다수의 대기업의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 반대표를 행사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잡음을 최소화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