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때마다 호출되는 회장님들…금융지주사 리더십은 언제쯤 선진화할까
입력 24.10.24 07:00
Invest Column
자회사 임원 인사권까지 쥔 지주사 회장들
능력 보여줘야 하는 비은행 자회사들은 더 공격적
계열사 대표는 수익 보여주는 임원 관리 못해
인사시스템 바꾸지 않으면 영원히 우물안 개구리
  • “왜 외국계 투자은행(IB) CEO는 국내 금융지주사 회장이 될 수 없나?”

    누군가에겐 뜬금 없겠지만, 정곡을 찌르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국의 금융지주사가 그만큼 보수적이어서 ‘인사(人事)’에 변화를 주기가 어렵다는 걸 반증한다.

    금융지주사의 리더십 문제는 어제오늘 화두가 아니다. 사고는 끊이질 않지만,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참석 여부, 그리고 거기서 나왔던 발언들이 화제였다.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한국의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얼마나 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지, 이를 제어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금융지주사에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고 보수적 기조가 강해질 수밖에 없는 배경 역시 회장의 제왕적 영향력과 전근대적인 인사 시스템에 기인한다는 지적들이 많다.

    비금융기업의 경우 이종산업이라고 하더라도 CEO가 되는 경우가 외국에선 다반사고, 국내에서도 종종 있다. 외부인사 영입은 항상 열려있다. 그리고 기업들은 내부 혁신이 필요할 경우 이 카드를 자주 꺼낸다.

    반면 금융기업, 특히나 대형 금융지주사의 경우 금융업 이외의 CEO 풀(Pool)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삼일회계법인서 오래 근무했던 KB금융그룹의 윤종규 전 회장 정도가 그나마 특이 케이스에 속한다. 그러다보니 다른 산업은 물론 외국계IB 대표가 한국의 금융지주사 회장이 된다는 건 꿈 같은 얘기라고 하는거다.

    국내 금융지주사는 아직도 상업은행계냐, 한일은행계냐, 조흥은행계나, 장기신용은행계냐 등등 출신성분을 얘기한다.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 통폐합이 25년 전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라인을 타고 있는지, 누구의 줄을 타고 있는지가 출세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소위 월급쟁이 샐러리맨도 최정점에 오를 수 있는 게 금융지주사 회장 자리다.

    이렇게 해서 최정점에 오르는 순간 인사권을 쥐게 되는데 이는 그 어떤 그룹의 오너 경영인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소왕국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최근 NICE신용평가는 ‘은행계 금융회사는 보수적인가’라는 보고서에서 금융지주사 계열 증권사를 “무모한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지칭했다. 부유한 부모님만 믿고 무리하게 일을 벌여 1300억원의 운용 사고를 낸 신한투자증권을 에둘러 비판한 거다. 즉 은행계 자회사들은 보수적이지 않고 오히려 더 공격적이라는 얘기인데 이게 금융지주사의 인사 시스템과도 무관하지 않다.

    모두가 인지하듯 금융지주사에선 은행이 ‘갑’이다. 비은행 자회사의 CEO와 임원들이 인사권을 쥐고 있는 지주사, 그리고 회장에게 어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리스크 관리가 아닌, “돈을 벌었다”로 귀결된다. 그러니 더 공격적인 영업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금융지주사 내 비은행 계열사들의 보상 시스템이 매우 ‘짜다’는 것도 일정 영향을 미친다. 허점을 찾아 사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임원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시스템 허점을 이용해 돈을 벌어오는 임원들에게 계열사 대표들은 꼼짝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홍콩 ELS 사태, 라임 사태, ETF LP 손실 사태도 다 여기서 빚어졌다. 계열사의 CEO들은 이런 문제들을 예견하거나 방지할만한 전문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자본시장에서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는 건 미래에셋, 메리츠 등 오너 경영인이 있는 금융그룹이다. 여기도 오너 경영인들이 제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금융지주사와는 차이점이 명확하다. 회장들이 사업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 맞는 성과를 보여주면 된다. 잘 되면 화끈하게 ‘보너스’를 받는다. 회장의 방향성에 따랐는데 실패하면 그건 회장의 잘못이고 본인이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떠나면 된다. 모든 게 능력으로 얘기된다.

    은행계 지주사는 애초에 방향성이 없다. 성과를 내도 그건 내 라인 윗사람의 몫이고 실패하면 내가 책임져야 하는, 적자생존보다 못한 지경이다. 은행계 지주사 회장은 인사권을 단행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군림만할 뿐 그 이상은 없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부동산이 뜨면 모두 부동산으로, 이머징마켓이 뜨면 모두 이머징마켓으로 간다. 금리 따라 은행이 돈을 벌면 그룹이 돈을 버는거고 못 벌면 모두 어려움에 처한다. 금융지주사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는데 차별성은 없다. 이러니 내부 인력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 지주사 회장의 인사권을 강화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의미가 없다고 비판 받는다.

    금융지주사의 인사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린 매번 정부 눈치는 보면서도 예대마진으로만 돈 벌며 표정관리하는 광경을 지켜봐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