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밀린 SK그룹 수소사업…연말인사 앞두고 주역들 거취도 주목
입력 24.10.29 07:00
그룹 어려워지며 AI·반도체·배터리 뒤로 밀려
아직 수소 수요 부족하고 투자 성과도 아쉬워
추형욱 사장 등 정기인사 논공행상 결과 주목
  • SK그룹은 지난 수년간 수소사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점찍고 공들였다. 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은 뒤엔 수소사업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분위기다. 사업 성과도 아직은 크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연말 SK그룹 정기인사에 찬바람 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SK그룹 수소사업을 주도한 인사들의 거취에도 시선이 모이고 있다.

    SK그룹은 2020년 12월 SK E&S를 주축으로 주요 계열사가 참여한 수소사업추진단(이하 추진단)을 출범했다. SK㈜의 그린투자센터가 맡던 수소사업을 그룹 컨트롤타워가 이끌게 됐다. 추진단 출범 직후인 2021년 초 SK그룹은 글로벌 수소 기업 플러그파워(Plug Power)의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어 미국 청록수소 기업 모놀리스(Monolith)에 투자했고, 합작사(JV)들을 설립하는 등 성과를 냈다.

    SK그룹이 2022년 하반기 이후 어려움을 겪으며 주요 사업 정책에 변화가 생겼다. 한정적 자원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지금 그룹의 최우선 과제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다. 배터리 사업은 대대적인 지원으로 숨통을 열어 놨다. 수소사업은 그룹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 났다.

    지난 5월 SK E&S는 SK인천석유화학 부지에 세계 최대 액화수소플랜트를 준공했다. 그룹 수소사업의 중요 이정표를 찍었다. 그러나 아직 국내 시장의 수소 수요가 충분치 않은 터라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인천 청라의 수소 연료전지 관련 사업도 지지부진한 등 JV 활약도 아직은 아쉽다.

    SK E&S가 충청남도 보령에 추진 중인 블루수소 사업은 본격 시작 전부터 안갯속이다. SK이노베이션과 합병이 이뤄지면 사업의 우선 순위가 더 밀릴 수 있다.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보령 사업을 아예 외부 자본에 의존해 진행하지 않겠냐는 예상도 나온다. 작년에도 SK그룹은 외국계 투자사와 JV를 꾸려 수소사업을 하는 안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러그파워 주가는 여전히 주춤하다. 주당 30달러 가까이 주고 샀는데 현재 2달러 수준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수소연료 시장의 성장이 더딘 영향으로 풀이된다. 플러그파워 투자로 기술과 네트워크를 보완하는 성과를 냈지만 한동안은 밑진 장사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수소를 만들어도 모빌리티 등 수요처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 SK그룹의 고민"이라며 "수소사업 관련 자산 매각이나 외자 유치 등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SK그룹은 당분간 수소사업에 큰 힘을 쏟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시장에선 수소사업 전략을 수정하거나 기존 자산을 축소할 것이라 보기도 한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사업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조직이나 경영 체제의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수소사업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관심사다.

    추형욱 SK E&S 사장(1974년생)은 그룹 수소사업의 산파 역할을 했다. 2020년 하반기 플러그파워 투자를 거의 성사시킨 상황에서 파격적인 사장 승진 소식을 받아들었다. 추 사장은 여러 수소사업을 이끌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신임을 받아왔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그간의 수소사업 성과를 어떻게 보느냐가 변수다.

    현재 SK E&S 수소사업은 문상요 수소사업부문장(1969년)이 중책을 맡은 가운데, 초기부터 수소사업에 관여했던 임원들도 여럿 남아 있다. 초기 추진단에 기여했던 이지영 글로벌사업개발2담당(1975년생)과 권형균 포트폴리오 부문장(1977년생)은 올해 수소 관련 업무에서 벗어났다.

    다른 수소사업 관련 계열사에도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 사업을 하는데 작년말 정기인사에서 해당 사업을 담당하는 임원이 물러났다. 최근에도 해당 사업을 맡은 부사장급 임원이 사의를 밝히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다. 이미 작년부터 그룹 전반의 수소사업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시각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SK그룹 수소사업을 담당한 임직원 사이에선 그룹 수뇌부가 밀어붙여서 열심히 했는데 지금 상황만 보고 책임을 묻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