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2.5兆 증자 가능할까?…공은 법원으로, 가처분 판례는 엇갈려
입력 24.10.30 15:47
이사회 2.5兆 증자에 MBK연합 "법적조치 강구"
우선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으로 초기 대응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분쟁 판례는 1대1
최근 가처분 신청 판례는 기각이 多...'경영상 판단'
  •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펼치고 있는 고려아연이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한다. 공모 방식은 주주에게 우선 배정하는 방식이 아닌 임직원과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일반공모방식이다. 주식수를 늘려 개별 주주들의 지분을 희석하고 최윤범 회장 측의 우호지분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최 회장 측에 맞서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첫 대응은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이었다. MBK연합은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할 것을 예고한 뒤 곧바로 가처분을 신청했다. 

    다만 법원의 판단은 아직 예단하기 이르다. 사건에 따라 법원의 판결도 엇갈렸다. 가장 유명한 사례인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분쟁'에선 가처분이 인용되기도, 기각되기도 했다. 최근 판례들은 법원에서 '경영상 판단'에 무게를 실어주며, '가처분 기각'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유상증자를 둘러싼 가처분 공방의 대표적인 사례는 KCC(금강고려화학)와 현대엘리베이터 측의 분쟁이다.

    2003년 KCC는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약 44.4%를 확보했다. 당시 현대엘리베이터는 긴급이사회를 열어 1000만주의 신주발행을 결의해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신주발행 규모는 현대엘리베이터 발행 주식 총수의 2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KCC는 즉시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당시 KCC는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규정하고 있는 상법(제418조)와 현대엘리베이터의 정관에 명백히 위반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일반공모 방식의 증자가 정관에 명시된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가 아닌 KCC 측의 지분비율을 낮추고 기존 경영진에 우호적인 세력의 지분율을 높여 지배구조 변동을 초래하기 위한 목적에 기인했기 때문에 증자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현대엘리베이터 측은 '일반공모' 방식이란 점을 강조했다. 상법의 특별법인 증권거래법(제189조)에 근거했기 때문에 상법(제418조)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했다. 제3자 배정이 아닌 일반공모 방식의 증자이기 때문에 지배권 유지 또는 강화에만 목적이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게 이유였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KCC 측이 제기한 가처분을 인용했고, 유상증자는 무산됐다. 하지만 이듬해 KCC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에 대해 5%룰 위반을 이유로 증권선물위원회가 처분명령을 내리며 첨예한 분쟁의 1라운드가 막을 내렸다.

    이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2013년, 현정은 회장과 2대주주 쉰들러 홀딩AG(S Schindler Holding AG) 사이에 또 한번의 분쟁이 발생한다. 현대엘리베이터가 160만주(약 1108억원)의 일반공모 방식의 증자를 추진하자, 쉰들러 측은 즉시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당시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현대그룹 측의 지분율은 약 43.3%,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한 7% 지분을 더하면 50%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쉰들러 측의 지분은 약 35%였다. 일반공모 방식의 증자이기 때문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자칫 높은 경쟁률로 인해 지분을 취득하지 못할 경우 지분율이 떨어질 위기에서 나온 전략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현대엘리베이터 측 손을 들어줬다. 당시 법원은 "일반 공모 증자가 법령에 위반되지 않으며 현저히 불공정한 발행이 아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최근 경영권 분쟁이 펼쳐진 기업들의 사례에서도 상대측이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한 경우가 많았고 법원의 판단에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다수의 사례가 제3자배정 증자를 둘러싼 논란이었기 때문에 고려아연의 일반공모방식 유상증자와는 차이는 있다. 

    지난해 법원은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제기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오너일가의 상속세 문제로 시작된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송영숙, 임주현 모녀는 지난 1월 OCI 그룹과 통합작업을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임종윤, 임종훈 형제가 배제되면서 임 형제는 한미사이언스가 OCI홀딩스를 대상으로 하는 유상증자에 대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추진되는 유상증자가 위법이란 취지였는데, 법원은 지배권 강화 목적이 의심되긴 하지만, 운영자금 조달 필요성 등을 인정해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한진그룹을 향해 경영권 분쟁을 펼쳤던 행동주의펀드 KCGI는 2020년 특수목적법인(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법원에 한진칼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한진칼이 한국산업은행을 대상으로 제 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하자 경영권 분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디딤이엔에프, TS트릴리온, 애니젠 등을 향한 주주들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 역시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배우 이정재 씨 등 아티스트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유상증자를 진행한 래몽래인은 주주들이 법원에 신주발행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는데,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