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LG이어 고려아연·두산, 카카오까지…슬그머니 '주주활동' 내려놓는 국민연금
입력 24.11.04 07:00
Invest Column
책임투자활동 취지 무색하게
국내기업, 단순투자 목적 보유 수두룩
LG엔솔, SK이노 등 적극적 반대 표시한 기업 및
논란 대상 기업, CEO 선임 적극 관여한 기업까지
고려아연, 두산 등 지배구조개편 기업도 발 빼
  • 전세계 연기금 가운데 3위 규모를 자랑하는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기업 대부분에 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갈수록 커지는 기금의 규모만큼, 재계와 자본시장 그리고 일반 개인투자자들에게까지 미치는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국민연금은 이미 오래전부터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즉 주요 기관투자가로서 기업의 경영 활동에 적극 관여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의 제도를 도입했다. 이슈가 제기된 또는 논란이 예상되는 기업들의 경영진과 면담을 하고, 서한 발송을 하거나 주주제안을 비롯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까지 수탁자들의 재산을 지키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단 의미다.

    국민연금의 최근 행보는 스튜어드십코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주요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기업은 약 270곳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기업 지분 투자단계를 경영참여, 일반투자, 단순투자 등 총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270곳 가운데 경영참여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그나마 국민연금이 정관변경, 보수의 산정, 배당 확대 등 주주로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업은 일반투자로 목적이 분류돼 있는데 올해 들어선 일반투자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70여개 기업 가운데 현재는 30곳 내외를 제외한 대부분이 모두 단순투자로 분류돼 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70곳이 넘는 기업에 대해 일반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미 올해만 약 50곳의 기업에 대해 투자목적을 하향했다.

    여기엔 대기업 그룹 계열사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데 ▲SK그룹은 SK디스커버리, SK케미칼, SK이노베이션, SK스퀘어 ▲삼성그룹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화재보험, 삼성물산, 삼성생명 ▲현대차그룹 현대제 ▲LG그룹 LG생활건강,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롯데그룹 롯데케미칼, 롯데웰푸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에너빌리티 등이다.

    올해 투자목적을 하향한 기업들의 상당수는 과거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회사의 안건에 반대하는 의결권을 행사했거나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기업, 실적 부진으로 주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기업 및  앞으로 지배구조개편을 비롯해 논란이 이어질 기업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경영권 분쟁으로 재계를 달구고 있는 고려아연은 국민연금이 이미 올해 초 투자목적을 하향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올해 중순 불이 붙기 시작했으나, 오래전부터 오너일가의 갈등이 비화했기 때문에 지배구조에 대한 변화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에서 분할할 당시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반대표를 행사했던 기업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의 분할, SK E&S의 합병 모두 반대한 전례가 있다. SK스퀘어는 자회사인 11번가에 대해 콜옵션 행사를 포기하면서, 국민연금이 출자금이 묶이게 된 결과를 낳았다. 

    POSCO홀딩스는 최정우 전 회장의 연임을 두고선 김태현 이사장이 사실상 반대 의견을 표시하며 최 전 회장의 연임이 무산됐다. KT&G 대표이사 선임과정에선 행동주의펀드가 개입했는데 국민연금의 표결이 현재 방경만 대표이사의 선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카카오는 김범수 전 의장의 구속으로 지배구조의 취약점을 드러냈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카카오와 카카오페이에 대해 투자목적을 상향하며 주주권행사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투자목적을 다시 하향했다. 무리한 지배구조개편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지 당한 두산에너빌리티의 열쇠는 국민연금이 쥐고 있다.

    해당 기업들 상당수는 자본시장내 논란의 중심에 섰고 앞으로도 주주들의 견제가 반드시 필요한 기업들이다. 아울러 기업의 중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곳들이기도 하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기금의 규모에 비해 이를 운용하는 인력의 수와 질이 따라가지 못하는건 자명한 현실이다. 

    부족한 인력, 미비한 시스템, 지리적 한계, 해마다 연임을 고민해야하는 최고투자책임자, 사실상 정치인에 가까운 이사장, 끊임없는 외풍 등 국민연금의 한계점을 나열하면 한 두개가 아니지만 이러한 배경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과 수익률, 미미한 주주활동에 대한 방어논리가 돼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