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게임룰 선도하는 SK하이닉스 vs 체질개선 들어간 삼성전자
입력 24.11.07 07:06
3분기 성적표 SK하이닉스 완승…수익성 격차는 3배로
IR서 드러난 관계역전…방향성 제시하는 건 SK하이닉스
삼성전자는 체질개선 예고…그간 행보 감안하면 이례적
아직은 판단 유보하는 시장…결국은 성과로 보여줘야
  •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지위가 완전히 뒤바뀐 모습이다. 게임의 룰을 주도하는 건 SK하이닉스고, 삼성전자는 태도를 고치고 쫓아가는 형국이다. 삼성전자에 대해 시장에서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짙지만 인공지능(AI) 수요를 맞춰 잡기 위한 양사 경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이다. 

    지난 3분기 양사 성적표를 두고 시장은 삼성전자에 판정패를 내렸다. 삼성전자의 반도체(DS) 부문 영업이익은 3조8600억원으로 7조원을 벌어들인 SK하이닉스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 사업만 발라내면 7조원 이상의 수익을 남겼으나 고부가 제품군 비중, 내부매출(캡티브) 등을 종합해 따지면 장사를 잘한 건 결국 SK하이닉스라는 결론이 선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40%를 기록했다. 6년 전 초호황(슈퍼사이클)에 근접한 수치다. 삼성전자의 DS부문 영업이익률은 13.2%로 집계됐다. 삼성전자 비메모리 사업의 부진이 심각하다 해도 반도체 시장에서 양사 수익성 격차가 세 배까지 벌어졌다. 

    실적뿐 아니라 이를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뒤바뀐 입장이 드러났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AI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서 차세대 제품을 적기에 공급하는 게 시장 주도권의 핵심"이라 밝혔다. 당초 고대역폭메모리(HBM)는 AI 기술을 구현할 때 기존 D램이 병목을 일으키기 때문에 개발됐다. 마땅한 제품이 없을 때는 원가를 낮추고 비용을 통제하기보다 고객이 원하는 솔루션을 빨리 제공하는 쪽이 승자가 된다. 이를 가장 빨리 해결한 SK하이닉스는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 후발주자를 멀찍이 따돌리는 선순환 구조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가 차세대 HBM 생산을 위해 대만 TSMC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경쟁은 필요한 역량을 내재화해 자체 생산하고 비용을 아껴야 경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용이 많이 들어도 고객 주문을 먼저 맞춰 잡는 쪽이 다음 주문 물량까지 계속 받아 가는 구조다. 비싼 외부 파운드리를 써서라도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제품을 공급하는 게 게임의 룰이 된 셈이다.  

    삼성전자 역시 3분기에서 이를 뒤따르는 메시지를 내놨다. 삼성전자는 "고객 요구사항을 맞추는 게 중요해서 파운드리 파트너 선정은 내외부 관계없이 유연하게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역시 차세대 HBM 적기 공급을 위해 경쟁사 파운드리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즉 추격 대상인 TSMC와 협력하는 길까지 열어두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간 삼성전자의 전략에 비춰보면 함의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반도체 업계에서 삼성전자는 영역을 가리지 않고 직접 다 하는 기업으로 군림해왔다. 고전하고 있다고는 하나 SK하이닉스와 달리 선단공정 파운드리 사업도 직접 꾸리고 있다. 그런 삼성전자가 HBM 적기 공급을 위해 내외부를 가리지 않는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기업 경쟁력의 원천인 메모리 반도체 부진부터 바로잡기 위해 비로소 체질 개선에 돌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컨설팅업계 한 관계자는 "상반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내부에는 HBM 수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그다음 경쟁에서 추월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라며 "지금은 파운드리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캐시카우인 메모리부터 살려야 한다는 방향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1등 DNA를 버리고 시장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쪽으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기 상황에서 DS 부문 내 의사결정 구조가 효율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5월 전영현 부회장이 DS 부문장으로 복귀한 데 따른 변화라는 얘기다. 그간 회사 안팎에선 삼성전자의 의사결정 방식이 시장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지 못하는 걸림돌로 작용해왔다는 지적이 많았다. 반도체 업게에선 삼성전자가 곧 있을 연말 인사를 통해 계속해서 조직을 유연하고 가볍게 만들 것으로 내다본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실제로 최근 인력 전환배치나 조직개편, 투자 집행, 설비 운용을 보면 파운드리 부문에 힘이 빠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이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라며 "그럼에도 일단 메모리 경쟁력 복원으로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한 상황 자체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도 마련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간 누적된 시장의 실망을 해소하고 체질개선 효과를 제대로 평가받자면 시일이 필요하단 지적 역시 많다. 성과를 보여주기까진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1일 실적 발표회를 통해 엔비디아향 HBM3e 공급 퀄테스트(최종 신뢰성 평가)에서 유의미한 진전이 있었다는 언급이 나왔으나 주가는 반짝 상승 후 여전히 6만원 아래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