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매각→특별배당'이 근본인데...대기업 '마통' 전락한 K-리츠
입력 24.11.07 07:07
취재노트
'금리 인하 수혜주' 리츠, 최근 3개월간 10% 하락
'한국화'한 리츠,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 작용 시작
'스폰서' 대기업 부동산 매입...부담은 주주에게 전가
자산 비싸게 사는 것도 이슈...'공정가치' 신뢰 없어
  • "부동산을 매각해 특별배당하지 못하는 리츠는 리츠가 아닙니다. 사기는 아니지만 '주주 기만'에 가깝습니다. 대기업들이 리츠 하겠다고 몰려들고 있는데, 이런 '스폰서 리츠'는 한국 리츠 시장의 저평가만 가속화시킬 겁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

    국내 주요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에 분산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TIGER 리츠부동산인프라는 지난 8월 이후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연중 고점 대비 10% 가까운 하락세다. 리츠주는 대표적인 금리 인하 수혜주로 꼽히며 지난해 11월 이후 평균 20% 이상 올랐지만, 최근엔 대부분의 리츠가 상승폭의 절반 이상을 토해낸 상황이다.

    "미국 경기가 너무 좋아 금리 인하 속도가 더디다", "국내 대출 금리는 생각보다 높은 수준이라 이자비용이 크게 줄지 않고 있다" 등 여러 해석이 제기된다. 기준금리 인하는 시차를 두고 대출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연말 이후엔 변동성이 줄어들 거라는 낙관적인 시선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현업 최전선에서는 다소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리츠가 '한국화' 됐으며, 이는 앞으로 오랜 기간 리츠주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상장주 저평가 현상) 요인으로 작용할 거란 전망이다.

    대기업들이 리츠 시장에 속속 진출하며, 투자업계에서는 리츠가 주주가치 환원보다는 그룹 혹은 최대주주의 자산 유동화 통로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점점 커져왔다. 앞서 MBK파트너스가 상장을 추진하던 홈플리스리츠의 상장이 이런 이슈로 무산됐다. 롯데리츠 역시 편입 자산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며 상장 공모 과정에서 상당한 부침을 겪었다.

    우려가 현실화한 핵심적 계기로 업계에서는 지난해 9월 SK리츠 증자를 꼽는다. SK리츠는 SK하이닉스의 이천공장 수처리센터를 1조2000억원에 매입키로 하며, 3300억원 규모의 증자를 실시했다. SK그룹이 SK하이닉스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SK리츠 주주들의 돈을 끌어다 쓴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SK리츠 측은 "해외 인프라펀드와의 경쟁을 통해 매입한 자산"이라고 항변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정반대였다. 당시 삼성증권은 "범용성 낮은 자산으로 자산가치 상승이 제한된다"며 SK리츠의 목표가를 19%나 낮췄다. SK리츠 유상증자 신주인수권(워런트)은 내재가치의 10분의 1 가격으로 거래되며 말 그대로 '휴지조각'이 됐고, 600억원의 실권 물량이 발생하며 주관사단이 이를 떠안아야 했다.

    비슷한 구조의 증자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화리츠는 지난해 한화생명으로부터 8000억원에 매입한 장교동 한화빌딩 관련 대출을 갚기 위해 4500억원 규모 증자를 추진 중이다. 롯데리츠는 L7강남호텔 관련 1600억원 증자를, 디앤디리츠는 명동N빌딩 관련 700억원 증자를 진행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리츠에 자산을 편입하려면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한데, 스폰서이자 최대주주인 대기업이 지분 40~50%를 보유하고 있어 부결이 나는 일이 거의 없다"며 "일본 리츠는 스폰서의 자산을 시장가 대비 저렴하게 매입하는데, 한국은 '외부 감정평가'를 받았다는 핑계로 시세보다 비싸게 사오는 경향성이 훨씬 강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보다 리츠 산업이 훨씬 오래전 발달한 일본의 경우 ▲좋은 자산을 저렴한 시기에 매입해 ▲임대료로 배당하며 꾸준한 현금흐름을 만들고 ▲적기에 이를 매각해 매각차익을 특별배당하며 ▲매각차익의 일부를 유보해 신규 자산 편입에 활용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스폰서의 자산을 비싼 값에 사오며, 매입 부담은 유상증자를 통해 주주에게 떠넘기는 국내 리츠와는 큰 격차를 보이는 모습이다.

    자산을 매각해 배당수익률을 높이고, 신규 자산 편입을 위한 재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건 선진국 리츠의 '공식'으로 통한다. 일례로 일본의 대표적인 대형 리츠인 재팬메트로폴리탄펀드는 지난 2021년 2000억엔(약 1조8000억원)규모의 자산 매각 계획을 세우고 현재까지 절반 정도를 달성했다. 이를 통해 향후 배당재원은 물론 재투자여력을 확보했다.

    삼성증권은 "일본 리츠 역시 유상증자를 통해 성장해왔지만, 무조건적인 증자보다는 가격 대비 순자산가치(P/NAV) 할인율이 낮은 시기를 골라 신중히 실행한다"며 "대규모 자산편입에도 LTV를 40% 이하로 떨어뜨린 닛폰프로로지스 등, 차입 없이 자산을 편입함으로써 LTV를 크게 강화하는 사례도 많았다"고 짚었다.

    지난달 마무리된 신한알파리츠의 1800억원 유상증자는 구주주 청약만으로 '완판'됐다. '대기업 리츠보다는 낫다'는 평가가 증자 성공의 배경으로 꼽힌다. 신한알파리츠는 2018년 매입한 용산더프라임 빌딩을 지난해 매각해 국내 리츠 역사상 최대인 733억원의 매각 차익을 냈다. 이를 바탕으로 올 3월 주당 490원의 처분이익을 배당해 연배당률을 11%대까지 끌어올렸다.

    LG그룹, 신세계그룹 등 리츠를 통한 유동화를 검토하는 대기업의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대기업 리츠는 모양새가 천편일률적이다. 공모 성공을 위해 '알짜 자산'을 한두 개 리츠에 끼우고, 대신 비싼 값을 받아가며, 리츠에 과반수 지분을 남겨 실질적 점유는 이어간다. 

    이런 움직임이 지속되면 리츠가 '대기업의 마이너스통장'이라는 비판을 피하긴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이들은 '제3자를 통해 중립적으로 평가를 받은 공정가치'라고 항변한다.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투자자는 많지 않다. 최근 크게 논란이 된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분할합병 비율도 '중립적인 제3자의 공정한 가치평가'를 기준으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