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론B' 인식 차이에 발등 찍혔나…국내 금융사들, KKR-악셀發 1000억 손실 위기
입력 24.11.08 07:00
KKR, 악셀그룹 채무조정안 두고 국내 금융사와 줄다리기
해외선 채권 형태로 거래되는 텀론B, 국내선 손바뀜 드물어
리스크 분산 못해 피해…국내 금융사 1000억가량 상각해야
  • 국내 금융사들이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KKR에 돈을 빌려줬다가 1000억원 가량을 손실 처리할 위기다. 해외 대출(텀론B; Term Loan B)에 대한 인식 차이가 국내 대주단의 손실이 커진 배경으로 지목된다.

    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영국 KKR 측은 국내 금융사들을 상대로 악셀그룹 고통분담안에 대한 최종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앞서 KKR은 투자기업인 악셀그룹의 재무사정이 급격히 악화하자 대출을 일으켰던 금융사들에 대출을 탕감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대다수의 금융사가 KKR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한 가운데 일부 금융사가 대출 탕감 및 추가 자금 투입을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KKR은 당초 최초 대출금의 80%를 탕감해달라고 요구했다가 금융사들의의 반발이 거세자 비율을 40~45%가량으로 낮추고, 여기에 최선순위 대주단을 꾸려 현금을 수혈하는 자금투입안도 제시했다. 

    이번 채무조정이 성사될 경우 국내 대주단은 최소 800억~900억원 규모의 대출채권을 손실처리해야 한다. KKR은 2년 전 약 2조3000억원에 악셀그룹을 인수하면서 1조4000억원의 인수금융을 조달했고, 이 중 일부를 국내에서 조달했다. 반면 채무조정이 실패할 경우 대주단은 채무불이행(EOD)을 선언할 수 있으며, 사안은 회생법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확대된 배경으로 한국과 해외의 금융문화 차이를 지적한다. 이번에 국내 대주단이 내중 대출은 텀론B(Term Loan B)로, 원매자가 기업을 인수할때 매수하는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차입금을 일으키고, 이를 인수에 사용하는 걸 말한다. 선순위 대출로 만기 일시 상환되는 특징을 가진다.

    해외에서 텀론B는 규격화된 대출, 즉 채권 형태로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된다. 해외 금융사들은 대출채권을 재매각해 자금을 회수하고 상환 리스크를 시장에 분산시킬 수 있다. 현재 악셀그룹의 텀론B 가격은 발행가의 50% 이하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국내 금융사들은 텀론 B를 취급하긴 하지만 이를 시장에서 거래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시장에서 거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통상의 여신이나 인수금융처럼 만기보유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특히 은행들은 중요 자산인 여신을 매각하려면 깐깐한 내부 협의회를 거쳐야 한다. 금액이 크지 않을 경우 실무진이든 경영진이든 이런 부담을 지는 것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자산이 부실화 징조를 보이더라도 실제 행동에 옮기긴 어렵다.

    텀론B를 조기에 매각하는 경우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매각하는 순간 손실이 확정되는 것도 부담이지만, 행여 상황이 잘 풀려 상환 가능성이 커지거나 채권 가치가 높아진다면 그 또한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니 국내 금융사들은 텀론 B를 취급하더라도 익스포저를 계속 유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KKR이 채무탕감을 요구했을 때 이미 손을 턴 해외 금융사와 달리 국내 금융사들이 체감하는 충격과 손실 규모가 더 클 수밖에 없다.

    KKR은 국내 악셀 대주단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해외 대주단의 50% 이상이 동의했다고 알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텀론 B의 특성상 채권자가 매우 분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채권자들을 다 파악해 동의를 얻었을지는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국내 금융사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텀론B를 채권처럼 수시로 자유롭게 거래하지만 국내 금융사들은 여러 제약 때문에 만기 보유하는 사례가 많다"며 "KKR로서도 한국은 처음의 대주단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의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