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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지분을 보유한 연기금·공제회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이번 공개매수 과정에서도 수익률은 포기한 채 정치권의 시선을 의식해 '기계적 중립'을 지키느라 피로도가 컸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영권 분쟁 이슈가 일시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에 기관 사이에서는 국내주식 투자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 감지된다. 올해 증시 부진으로 수익률이 악화됐단 점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A 기관(LP)은 최근 공개매수 과정에서 고려아연의 주가가 크게 상승했지만, 차익실현을 하지 않았다. MBK·영풍 연합과 최윤범 회장 측 중 어느 편의 공개매수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시장에도 지분을 매도하지 않았다.
위탁운용사를 통해 간접 보유한 지분에 대해서는, 위탁운용사들에 공개매수에 참여하지 말고 장내매도는 판단에 따라 진행해줄 것을 권고했다. 수익률보다는 어느 한쪽 편에 설 경우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B 기관(LP)은 고려아연 차익실현 시점을 고민하다,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89만원을 초과하자 지분 일부를 장내매도하며 차익을 실현했다. 이와 같은 결정에는 수익률보다 외부적인 시선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B 기관 관계자는 "공개매수에서 섣불리 어느 한 쪽 편을 들기가 힘든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수익률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일 수 있다"라며 "그렇다고 공개매수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장내매도를 하면 더 높은 수익률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어, 주가가 공개매수가를 초과하자마자 매도했다"라고 말했다.
통상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판단에 있어 1순위는 수익률이다. 하지만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만큼은 수익률보다 기관의 책무, 정치권의 시선 등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 과정에서 기관의 피로도도 커졌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 LP 관계자는 "기관투자가 입장에서 수익률보다 더 두려운 것이 정치권의 자료요구와 국정감사 소환"이라며 "고려아연 건은 사회적인 관심도가 상당하다보니, 차라리 수익률을 조금 손해보더라도 책 잡히지 않는 편이 낫다"라고 말했다.
경영권 분쟁 이슈는 앞으로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새 먹거리를 찾는 대형 사모펀드(PEF)는 언제든 명분을 앞세워 경영권을 노릴 수 있는 까닭이다. 벌써부터 시장에서는 고려아연 이후 분쟁 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들을 선별하고 있다.
이에 기관투자가 사이에서는 국내주식 투자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증시 부진으로 가뜩이나 해위주식 대비 수익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경영권 분쟁 등 외적으로 고려해야 할 골치아픈 문제들이 많은 탓이다.
실제로 국내 한 기관은 올해 해외주식에서 20%가 넘는 수익을 거뒀지만, 국내주식이 부진하면서 전체 주식부문 수익률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별로 차이가 있지만, 통상 국내와 해외주식의 비중은 3:7에서 4:7 정도다.
국내주식 비중을 줄이고 싶지만, 기관의 '공공성' 측면을 고려하면 무작정 줄이기도 쉽지 않다. 최근에는 당국도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연기금, 공제회의 국내주식 비중 확대를 주문하고 있어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주식의 투자비중이 높은 기관의 경우 국내주식 성과가 전체 수익률을 좌우할 가능성도 크다"라며 "증시 부진이 길어지고 있고, 고려아연 이슈처럼 신경써야할 일도 많다 보니 '국장'에 대한 고민이 많다"라고 말했다.
정치권 시선 의식…수익률 사실상 포기
고려아연은 시작 불과…더 늘어날 듯
증시 부진 장기화로 '국장' 자체 회의감
고려아연은 시작 불과…더 늘어날 듯
증시 부진 장기화로 '국장' 자체 회의감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11월 1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