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회복' 숙제 안은 최윤범 회장…유증 '악수(惡手)' 이후 16% 주주 선택은
입력 24.11.15 07:00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 이후 틀어진 시장 여론
"이사회 의장직 내려놓는다"…개선책 던졌지만
시장 반응은 "역부족"…진짜 '승부수' 필요할 듯
  •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한 가운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최윤범 회장 양측 모두 과반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는데, 연말 또는 내년 초 열릴 임시주주총회에서 누가 승기를 잡을 지 주목된다. 

    결국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과 일반주주 약 ‘16%’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고려아연은 13일 1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날 오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계획 발표 및 주주 호소에 나섰다. 최 회장은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지배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투자자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인 사외이사를 선임할 예정이다. 분기 배당 도입 등 주주 환원 정책도 강화하기로 했다.

    고려아연 측이 여러 지배구조 개선책을 발표했지만, 시장의 관심은 결국 주총 표대결에서 어느 쪽이 승기를 잡을지에 쏠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1.36% 추가 지분을 확보한 영풍·MBK 연합이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보인다. 영풍·MBK 연합의 지분율은 39.83%, 의결권 기준으로 과반에 육박하는 지분율 45.4%를 확보했다. MBK파트너스가 장내 매수를 계속 이어가 지분을 더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최 회장의 경우 한국투자증권·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등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던 일부 이탈하면서 지분율은 34.65%로 추산된다. 의결권 기준으로는 40% 수준이다. 

    양측의 지분 격차는 일부 주주의 향방에 따라 더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 회장 측의 35% 지분율은 함께 공개매수에 나선 베인캐피탈 보유분과 한화그룹·현대차·LG 등의 지분을 포함한 수치다. 한화를 제외한 현대차, LG의 지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다. 

    결국 누가 남은 주주와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가 승패를 가를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12월이나 내년 1월께 고려아연의 임시 주총이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기관투자자, 외국인 투자자, 소액주주 등 약 16%의 지분이 판도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16%에는 고려아연 지분 약 7.5%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지분도 포함됐다. 이에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의 선택에 시장의 이목이 쏠린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18일 국정감사에서 고려아연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장기적인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판단하겠다”고 했다. 

    당시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의 행보가 시장에 ‘적대적 M&A’로 알려진 점 등을 고려해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측에 손을 들어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고려아연이 특별히 주목받던 기업이 아니었던 점에서 국민연금이 ‘나서서’ MBK파트너스의 경영권 확보 시도에 힘을 싣기 어려울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러나 고려아연이 일반공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이 힘을 실어줄 명분이 줄어들었다. 당시 고려아연은 주주 기반 확대와 개방적인 경영구조를 마련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으나, 자본시장 안팎에선 사실상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지분 희석을 노린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계획은 철회됐지만, 주주들의 지분가치 희석을 감수하려는 의지를 보였던 까닭에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는 평이다. 특히 별다른 입장이 없던 기관투자자들의 경우 지분 가치가 희석되는 것을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신뢰가 흔들렸다는 반응이 많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공개매수 기간에는 주주들도 ‘반반’이었고, 고려아연의 설명에 국내외 기관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며 “유증 계획이 나오면서 반전됐는데, 주주배정 유증도 주주배정도 아니고 일반공모를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시장 신뢰 회복이 급선무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유상증자 철회 결정과 함께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지배구조를 소액주주 참여형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에 이어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맞도록 하면서 이사회의 독립성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MBK파트너스 측은 “최 회장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들 중 한 명이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면, 독립성 강화는커녕 그 이사회 의장 역시 거수기 역할에 불과하다”며 “현재와 똑같이 최 회장의 경영권 사유화가 유지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윤범 회장이 주주들의 지지를 앞세운만큼 주총 이전에 주주들을 만나며 설득에 나설텐데, 한번 신뢰가 무너진 상태라 어떤 카드를 꺼낼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