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發 위기에 '두산반도체' M&A 계획 접은 두산그룹
입력 24.11.19 07:00
세미파이브 등 올해 M&A 줄줄이 무산
삼전 파운드리 1.5兆 적자로 美공장 중단에
박정원號 반도체 확장 전략도 제동 걸려
장남 박상수 CSO 배치했지만 성장성 한계
인수금융 부담까지 속도조절 불가피
  • 반도체 사업 확장을 추진했던 두산그룹의 인수합병(M&A)이 잇따라 무산되고 있다. 삼성전자 비메모리 부문의 실적 악화 여파가 국내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으로 번지면서, 두산의 영토 확장 전략도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1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최근 세미파이브 인수 협상을 중단했다. 두산그룹은 반도체 후공정 계열사 두산테스나를 통해 세미파이브 대주주 지분 17.89%를 매입, 경영권을 확보하려 했으나 지난달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두산그룹은 두산테스나가 이미 보유 중인 지분 4%와 두산이 보유한 지분 3.2%를 포함, 2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이번 세미파이브 인수 무산은 최근 반복된 두산그룹 반도체 M&A 좌초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두산은 올해 초부터 패키지 업체 SFA반도체, 테스트 전문업체 ITEK 인수를 검토했으나 최종 단계에서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매그나칩반도체 구미공장 인수도 실사 단계까지 진행했지만 결국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초 이미지센서 후공정 기업 '엔지온'을 인수한 이래로 대형 M&A는 성사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의 부실화가 시장에 드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두산테스나의 중장기 실적 성장은 당연시됐다. 다만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고객사를 확보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설비투자에 나섰다가 적자가 확대되면서 두산테스나의 성장 전략도 차질을 빚게 됐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1조5000억원 규모의 적자를 냈다. 증권가에 따르면 올해 3분기에도 1조원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연이은 실적 악화에 삼성전자 주가도 지난 13일 종가 5만600원에 장을 마감하며 5만원대 초반까지 주저앉았다.

    반도체 공장(Fab)은 가동을 중단했을 때 천문학적 복구 비용이 들어가는 탓에 어떤 형태로든 가동을 유지하는 편이지만, 삼성전자는 올해 초 P5 공장 기초공사를 멈추고 P4 공장 설비 투자도 미룬 상황이다. 최근엔 P2, P3 공장 내 파운드리 생산라인 전원을 완전히 꺼버리는 '콜드 셧다운'도 들어갔다.

    오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450억달러(60조원)를 들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짓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팹도 현재 건설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두산 오너 일가의 '드림 프로젝트'였던 비메모리 반도체 패키징 사업 확장도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복수의 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정원 회장은 오래전부터 반도체 제조업을 그룹의 핵심 축으로 키우려는 구상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박정원 회장의 장남인 박상수 ㈜두산 수석이 지주 산하 CSO(Chief Strategy Officer) 신사업 전략팀에 합류해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올해 7월부터 핵심 사업을 △두산에너빌리티(원전ㆍ에너지) △두산로보틱스(스마트머신) △두산테스나(반도체ㆍ첨단 소재) 등 3대 부문으로 재편하고 있다. 업종 구분 없이 혼재된 사업들을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사업끼리 뭉치는 것이 골자로, 이중 두산테스나는 두산 반도체 부문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이 5세 경영 승계와 맞물려 진행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사업은 후계 구도의 핵심 축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두산지주 및 두산경영연구원 차원에서도 M&A 관련 시장 조사와 검토가 수년간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의 반도체 사업은 ㈜두산의 전자BG가 반도체 기판용 동박적층판(CCL)을 생산하고, 두산테스나가 비메모리 반도체 테스트를 맡는 구조다. 특히 전자BG는 세계 시장에서 FCCL 24%, PKG 29%의 점유율을 보유한 강자지만, 전방 산업인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실적이 악화되면서 양대 축의 동반 성장이 발목 잡힌 모양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생산한 비메모리 반도체를 테스트하는 회사인 두산테스나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들이 삼성전자와 거래하면 두산테스나도 수혜를 입는 구조지만, 대부분의 물량이 대만 회사 TSMC로 가면서 성장에 한계가 생겼다.

    두산테스나는 올해 상반기 매출 1915억원, 영업이익 28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은 17%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감소했다. 특히 주력 사업인 이미지센서(CIS)와 모바일 AP(Application Processor) 매출 비중이 48%까지 떨어졌다.

    재무 문제도 부담이다. 두산테스나는 지난 2022년 인수 당시 차입한 인수금융을 올해 들어 전액 상환했다. 실적이 꺾이면서 재무약정(커버넌트) 위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 M&A를 위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리스크가 크다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세미파이브의 지난해 매출은 708억원으로 전년 대비 10.8% 줄었고, 42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적자 기업을 인수해 추가 투자에 나서야 하는 부담이 있었던 셈이다.

    시장에서는 두산그룹의 반도체 사업 확장이 당분간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주를 이룬다. 두산그룹이 보유한 반도체 사업 포트폴리오가 모두 삼성전자에 의존적인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통한 외형 확장은 리스크가 크다는 판단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황 악화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며 "두산테스나의 실적도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규모 투자 집행을 재검토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