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삼성전자도 옛말…재계 인사서 드러나는 리더십 재편 위기감
입력 24.11.21 07:00
초격차 상실도 한순간…인사서 드러나는 리더십 위기감
현대차 외국인 CEO…관료화 부수고 글로벌 스탠더드로
시장·고객 이해 없이는 실패…리더십 적재적소 배치 필요
세계 무대 안 먹히는 3~4세 오너경영…구조조정 압박高
삼성전자 연말 인사 재계 리더십 전환에 방점 찍을 전망
  • 삼성전자마저 휘청이며 국내 대기업 그룹사의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고조된다. 사업 전반이 성장 한계에 봉착한 가운데 선거, 전쟁, 환율 등 대외 변수까지 폭증하며 연말 인사에서 위기감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기존 리더십과 전략을 뒤바꾸는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에 예상보다 늦어지는 삼성전자 인사에 대한 주목도는 더 올라가는 분위기다.  

    올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서 새 나온 위기감은 재계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다. 삼성그룹, 그중에서도 맏형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지난 수십년 대기업 사이에서도 넘보기 힘든 위상을 차지해왔던 탓이다. 불과 수년 만에 주력인 D램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추월당하고 초격차를 상실했다는 진단이 쏟아지며 '일류' 삼성전자 이미지도 급속도로 빛이 바래는 중이다. 

    당연히 연말 인사 내용에 시선이 쏠린다. 인사를 통해 리더십을 바로 세워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비단 반도체뿐 아니라 업권을 가리지 않고 리더십 '미스매치'가 기업의 오랜 자산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올 들어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선제적으로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스페인 출신 호세 무뇨스를 현대자동차 최고경영자(CEO)로 발탁한 것이다. 

    겉으로 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회사 내부는 물론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당혹스러운 반응이 나온다. 외국인을 수장에 앉혀 기존 대기업이 고수해 온 방식에서 단숨에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부 사일로를 시작으로 사업과 무관한 안팎의 압력을 일거 차단할 수 있는 '한 수'라는 반응이 많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이 과거 선대의 가신 그룹을 정리했던 데 이어 이번에는 수십년 현대차에 종사하며 자연스럽게 구축된 내부 라인들을 긴장으로 몰아넣는 듯하다"라며 "세게 3위라는 그룹의 위상을 감안하면 리더십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게 마땅하니 할 말이 없을 것. 관가에서도 이번 행보를 예의주시한 것으로 전해진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현대차가 외부 출신, 외국인 수장을 기용한 이유가 더 잘 드러난다는 평이다. 삼성전자는 현대차보다 먼저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디스플레이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 지위를 구축한 사업을 두루 갖추고 있었지만 몸집이 커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관료조직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혁신을 주도하지 못하며 선두 지위를 내줄 상황에 처했다. 단순히 내부냐 외부냐를 떠나, 올라간 위상에 부합하는 리더십을 적기 배치하지 못한 대가라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 사례도 마찬가지다. 지난 연말 부회장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리밸런싱(사업 조정) 작업대에 올라간 사업들은 잘못 기용한 리더십의 부작용이란 평가가 쏟아진다. 시장 요구와 반도체 산업의 본질에 부합하는 방향성을 유지한 SK하이닉스만이 초월적인 성과를 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전략·기획·재무·기술통 등 특정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인재 등용이 뜨고 졌지만 결국 시장과 고객, 기술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리더십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컨설팅펌 한 관계자는 "지금 인공지능(AI) 시장을 주도하는 빅테크들을 위시한 패권 다툼이 미국 기업 중심으로 이뤄지는 건, 현지에 자본과 인재가 무더기로 몰려들기 때문"이라며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나고 손에 쥘만한 신사업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오너를 중심으로 관료조직화한 국내 대기업의 인적 구성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오너 3~4세 경영시대로 접어들면서 그룹사의 전략실, 기획실 등 컨트롤타워 시스템이 세계에서 통하지 않게 됐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롯데나 CJ, 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의 경우 내수시장에서 쿠팡과 경쟁하는 데에도 수년을 쏟아부었지만 손에 쥘 만한 성과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쿠팡마저 연초 중국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이 연달아 국내에 상륙하자 타격을 받았다. 올 한 해 유통·물류 시장의 혼란은 대기업들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입에 오르내린다.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 출범하면 혼란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관세 장벽을 활용해 중국을 봉쇄하고 계속해서 현지 투자를 종용할 경우 기존 대기업 주력 사업 전반이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사업의 경우 이미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쳤다는 경고음이 가득한데, 비슷한 처지에 놓인 철강 산업에도 먹구름이 들이닥치고 있다. 이들 사업을 영위하는 그룹사들이 대안으로 선택한 2차전지 산업은 사실상 미국에 볼모로 붙잡힌 신세로 비유된다. 

    신사업 성과는 보이지 않고 주력 사업의 발판마저 위태로운 그룹으로선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기 위한 인사 행보를 보이고 있다. CJ그룹은 이번 정기 임원인사에서 허민회 CJ CGV 대표이사를 지주사 경영지원 대표로 선임했다. 과거 그룹 내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던 이력을 감안하면 부실한 사업을 걷어내는 작업에 돌입할 것이란 분위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수년째 겉돌던 사료사업 매각 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예상보다 늦어지는 삼성전자의 인사는 이 같은 재계의 리더십 패러다임 전환에 방점을 찍게 될 것으로 보인다. 리더십 미스매치 문제로 가장 드라마틱한 기복을 보인 데다, 반도체 사업 부진이 향후 한국 자본시장 전반을 짓누를 악재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1위 맏형으로서 마땅한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