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건설사들, PF 트렌드 변화 적응중…국내선 리스크 나누고 해외로 눈 돌린다
입력 24.11.21 07:00
대형 건설사도 국내 PF 규모 줄여
수주 사라지니 '입김' 세지는 건설사
"단기적으로 PF대출 시장 위축 가능성"
해외·인프라가 새로운 성장동력 전망
  •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진이 이어지며 PF 트렌드가 바뀌는 모습이다. 건설사들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금융기관과 분담하는 계약 방식이 '뉴노멀'로 자리잡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국내 신규 수주가 사실상 멈춘 가운데, 새로운 먹거리로 '해외'와 '인프라'가 꼽힌다.

    국내 PF, 사실상 영업정지 상태

    중소형 건설사의 줄도산 우려는 연초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대형 건설사도 상황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는 신규 수주가 줄었다. 특히 주택부문은 건설사 규모를 막론하고 급감했다. 진행 중인 사업도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초기 투입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더라도 더 큰 손실을 보기 전 정리하는 추세다.

    현대건설은 PF 사업장 브릿지론 보증 규모를 연말까지 절반 이상 낮출 계획이다. PF대출 사업성 심사를 강화하기 위해 리스크관리 협의체를 신설했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장은 무리하게 본PF로 전환하기 보다는 시공권을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건설도 대전 도안 35블록 오피스텔 개발사업 등 본PF 전환이 어려운 사업장의 시공권을 포기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유통·화학·호텔 등 사업이 전반적으로 부진해 자구 계획을 마련하는 가운데 PF 리스크도 관리하는 모습이다.

    건설사의 '알짜' 선호 현상은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 재정비 사업에서도 두드러진다. 서울 강북 재개발 단지는 수주 경쟁이 사라지고 줄줄이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선정하고 있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서마저 건설사의 무응찰로 유찰된 단지가 나왔다.

    새 PF 트렌드…미완공 책임은 건설사에서 금융사로?

    건설사의 신규 수주가 줄고 기존 사업도 무산되는 상황이 이어지자, 국내 PF 시장에서 건설사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PF를 주선하는 금융기관 입장에서 투자처가 줄어들다 보니, 건설사가 협상 우위에 서게 됐다는 평가다.

    현대건설은 서울 가산동 LG전자 부지 지식산업센터를 개발하며 건설공제조합에서 2000억원의 책임준공 보증상품에 가입했다. 책임준공 미이행 시 채무인수 대신 '손해배상' 조건으로 대체해 리스크를 줄였다는 평가다.

    DL이앤씨는 지난 달 천안 상성호수공원 공동주택 신축사업의 PF 대출 과정에서 책임준공 미이행 시 '채무인수'가 아닌 '지체상금 지급' 조건을 달았다.

    지체상금 지급 조건은 이례적이다. 일반적으로 시공사는 책임준공 기한까지 완공하지 못하면 시행사의 PF 채무를 인수하는 조건을 단다. 대출 원리금 전액에 대한 상환 책임을 지는 조건이다. 지체상금은 지체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총공사대금x지체상금률x지체일수'로 산정한다. 즉 지체된 일수에 대한 배상만 하면 돼 시공사에 부담이 적다.

    건설사의 리스크를 줄이는 새로운 계약 방식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PF 투자에 적극적인 일부 증권사는 지체상금 조건 등 새로운 PF 딜 구조에 대응하기 위해 내부 스터디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 국내 PF 시장 규모 축소될까

    지체상금 지급 조건 등 새로운 PF 계약 방식이 시장에 안착할 경우 국내 PF 규모는 줄어들 거란 전망이 나온다. 

    책임준공 미이행 시 시공사가 대부분의 리스크를 부담한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새 계약 방식에선 일정 부분만 책임을 진다. 결국 분양이 부진할 경우 리스크가 금융기관에 '분산'돼 금융기관의 채권도 보전하기 더 어려워진다. 부동산 업황과 별개로 사업성이 확실한 곳에서 PF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최근 PF 시장 안정을 위해 제도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PF 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현재 3~5%에 불과한 PF 사업의 자기자본비율을 선진국처럼 20% 이상으로 높여 시장의 '저자본·고보증' 구조를 개선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PF 시장의 공정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PF 대출시 사업성 평가 강화 ▲책임준공, 수수료 등 불합리한 관행 개선 등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시행사 자기자본 확충, 관리 및 모니터링 체계 개선은 장기적으로 PF 시장의 질적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다만 단기적으로는 브릿지론 시장 축소와 필요 자본 증가에 따른 PF대출 시장 위축 및 일부 업권의 수익기반 감소 가능성이 내재한다"고 분석했다.

    포트폴리오 다각화하는 대형 건설사

    대형 건설사들은 해외 사업 수주에 힘쓰고 있다. 어려운 국내 PF 상황을 감안할 때 당연한 수순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해외 사업 수주는 대외 불확실성이 크지만, 해외 진출 역량이 있는 곳은 일부 대형 건설사에 한정된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해외건설 수주 금액은 211억달러로, 최근 5년 1~3분기 누적 평균 금액인 197억달러 대비 상회했다. 지역별로는 중동 119억달러(56.6%), 아시아 30억달러(14.1%), 북미·태평양 27억달러(12.7%) 등이다.

    삼성물산은 튀르키예에서 진행되는 총 2조2000억원 규모의 고속도로 건설공사에 참여한다. 삼성물산은 지분투자를 통해 준공 후 운영에도 참여한다. 공사 수주금액 2600억원과 함께 추가적인 운영 수익을 확보할 예정이다.

    현대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조원 규모의 리야크-쿠드미 500㎸ 초고압직류(HVDC) 송전선로 건설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사우디 전력망 사업 진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아울러 현대건설은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대형 원자력발전소 설계를 수주하며 15년만에 해외 원전 사업을 재개했다.

    대우건설은 해외 사업 비중을 대폭 끌어올릴 계획이다. 정원주 회장은 대우건설의 해외 매출 비중을 5년 내 50%, 10년 내 7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올해 상반기 대우건설의 해외 매출은 전체 매출의 22.5%다.

    국내 대형 법무법인 한 관계자는 "늘어나는 건설사 해외 수주에 발맞춰 법무법인도 자문팀을 강화하고 있다"며 "국내 건설사는 해외에서 현지 법무법인과 협업하는데 이 과정에서 번역 미비 등 잡음이 생긴다. 국내 법무법인이 중간 다리 역할을 할 계획"이라 말했다.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도 건설사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거란 전망이다. AI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자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을 지원하는 데이터센터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이와 함께 소형모듈원전(SMR), 에너지저장장치(ESS), 고압직류송전(HVDC) 등 데이터센터에서 사용될 전력을 생산·저장·공급하는 인프라도 중요해졌다. AI 기술이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위한 필수 사업으로 꼽혀 관련 투자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증권은 "최근 아마존웹서비스(AWS)가 2027년까지 한국 클라우드 인프라에 약 58.8억달러를 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우는 등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 데이터센터 투자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건설사들은 단순히 데이터센터를 시공하는 것을 넘어서 개발 및 운영까지 사업영역을 확장 중이다. 가파르게 성장할 국내 데이터센터 건설 시장은 국내 건설사의 또 다른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분석했다.